[Opinion] 여행의 이유 [도서]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글 입력 2019.07.01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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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건 재밌다. MBC예능, 나 혼자 산다가 인기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곳에서 우리와 공통점을 발견하면 왠지 모를 동질감도 느껴지고, 다른 점을 보면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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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곳에서 우린 재미를 느낀다. 알지 못 했던 걸 뭔가 아는 기분. 어릴 적 친구들이 "이건 비밀인데..."라고 말의 서문을 시작하면, 왠지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리고 더 듣고 싶고 알고 싶어진다.

그렇기에 이런 종류의 산문집이 많이 나오고,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끄는 게 아닐까 싶다. 본의 아니게 한 사람의 생각과 인생이 담긴 글말이다. 그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하고 나한테 적용해보기도 하고, 양아치 같지만 너무 멋진 생각들을 훔쳐 다듬어 내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내 것인 마냥 쓴다. 표절이라기 보단, 한 사람의 멋진 생각,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관점들과 마주하면 나도 그것들을 내 삶에 녹여내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의 머릿속 이 모든 생각들은 무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듣고 보고 읽은 모든 것들의 혼합체기에 그 분도 그랬을지 모를 일이다.

김영하 작가의 새로운 산문집이 나왔다. 따끈한 신작이다. 역시나 서점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그의 책들은 왜 이리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는 것일까? tvn 알쓸신잡 예능 프로와, 그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이 영화화한 턱택도 있겠지만, 그 전에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나도 잘 모르겠지만, 제각기 다른 이유로 좋아하실 거라 생각 한다. 과한 정보제공이지만, 개인적으론 그의 산문집은 그냥 솔직 담백한 글이라 느껴져서 좋다. 독자들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답이라 채근하지도 않고, 번드르르한 말을 하지도 않는다. 정말 말 그대로 작가의 삶을 '허용된 범위 달리 말해 책 안'에서 몰래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책 제목은 ‘여행의 이유’다. 앉은 자리에서 후루룩 다 읽을 정도로 숙숙 읽혔다. 그렇지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기도 했다.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 여행을 좋아하시는 분들, 여행을 안 좋아하시는 분들도, 올 여름 바닷가로 여행가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선 베드에 앉아 혹은 모래사장에 누워 또는 기차 안에서.. 어쨌든 여행을 하고 있는 모든 공간에서 한 번쯤 읽으면 좋을 거 같다. (여행을 안 떠나신다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 혹은 선풍기 바람 앞에 누워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 읽어도 좋으실 거다.)

***

우리는 왜 여행하는가?  누구나 그러듯 책 제목을 보는 순간, 나름대로 책 속 이야기를 상상한다. 음..여행의 이유라.. 당연히 여행에 관련된 이야기일 것이고, 김영하 작가가 생각하기에 여행은 이런 것이고 저런 것이다란 이야기겠지.. 맞았다. 그는 여행은 일상의 부재라고 말한다. 나의 모든 것과 얼기설기 엮여있는 속세에서 떠나 온전히 ‘노바디(Nobody)’로 존재하는 속세 아닌 속세로 여정을 떠나는 것.

그곳에선 우린 어떤 사람들일까?

그의 산문집엔 9가지 제목의 9가지 챕터가 구성돼있지만, 그 중 8번째 챕터. ‘노바디(Nobody)의 여행’을 소개하려 한다.



노바디의 여행: Nobody(노바디)와 Somebody(섬바디)


영어사전에 따르면 ‘노바디(Nobody)’의 첫 번째 뜻은 'No one'(아무도~없다)이다. 여기엔 특정한 누군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아무도 아니다. 그 누군가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섬바디(Somebody)'는 다르다. 여기에선 그 누군가는 지정돼 있다. 어떤 사람이다.

여행지에서 우린 그 누구도 아닌, 그림자와 같은 ‘노바디’일까, 아님 누군가이기라도 한 ‘섬바디’일까. (노바디와 섬바디를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다.) 혹 우린 그곳에서 노바디이길 원할까 아님 섬바디가 되고 싶어 할까. 사실 이게 뭐가 중요하랴. 짬 내고 돈 모아 간 여행인데 말이다. 가서 각자만의 방식대로 즐기고 재밌게 놀다오면 그만이지 않나.

그런데도 내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를 포함해 모든 이들은 여행지에 가서조차 본의아니게 우리 스스로를 어떤 것으로 규정짓기도 하고, 규정지어지기도 한단 것이다. 김영하 작가는 실뱅 테송의 [여행의 기쁨],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빌어 이를 설명한다.


나의 인종이나 국적에 따라 ‘특별하게’ 분류되고, 일단 분류된 이후에는 사실상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경험은 그전까지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여행자는 낮선 존재이며, 그러므로 더 자주 명백하게 분류되고 기호화 된다. 국적, 성별, 피부색, 나이에 따른 스테레오타입이 정체성을 대체한다. 즉 특별한 존재(Somebody)가 되는 게 아니라 그저 개별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여행자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자’, 노바디(Nobody)일 뿐이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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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오디세이아'


사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읽어본 적이 없어 이해하는데 좀 오래걸렸다. 앞뒤로 책장을 몇 번이나 넘겼다. 김영하 작가가 이야기 해준 오디세이아 이야기를 또 다시 내가 이해해 요약한 바로는 이렇다.

오디세이아 이야기는 큰 틀에선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여행기다.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가는 여행길에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를 만난다. 오디세우스와 그의 부하들은 어떤 섬에 상륙하게 되는데 그 곳은 키를롭스들의 나라에서 멀지도 가깝지고 않은 데이다. 굳이 딴 곳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웬만한 것들이 있는 섬이었다. 그럼에도 오디세우스는 키클롭스들이 있는 섬으로 가고자 한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단지 키클롭스들이 어떤 이들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야만적인지 혹은 손님을 환대하고 신을 두려워하는 이들인지)

그리하여 오디세우스는 키클롭스의 섬에 도착해 주인이 비어있는 동굴에 들어가는데, 거기엔 키클롭스가 키우고 있는 양과 염소, 치즈, 유장등이 있었다.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은 여기에 있는 물건들만 조금 훔쳐 빨리 나가자고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무슨 배짱인지 '내게 선물을 주는지 보고 싶었'다고 말하며  양과 염소를 구워 먹고, 치즈도 가져다 먹는다.

집(동굴)으로 온 키클롭스는 이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 너희들은 누구인가? 어디로 부터 물결을 따라 흘러 들어 왔느냐? 무역을 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해적들처럼 목숨을 걸고 파도를 타고 다니며 약탈을 일삼는 자들인가?"

그러자 트로이의 영웅, 오디세우스는 자존심이 상해 이리 말한다. "아가벰논의 백성인 우리로 말하면 혹시 그대가 환대해 주거나 아니면 손님의 당연한 권리인 그 밖에 다른 선물을 줄까 해서 이리로 와서 그대의 무릎을 잡는 것이오. 가장 강력한 분이여! 그대는 신들을 두려워하시오. 우리는 그대의 탄원자들이오. 제우스께서는 탄원자들과 나그네들의 보호자시며  존중받아 마땅한 손님들과 동행하시는 손님의 신이시오" (호메로스, 오뒷세아아 도서출판 숲)

다시 말해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사는 세상과 아주 동 떨어져 사는 키클롭스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트로이의 영웅으로서 대우받길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상대로 키클롭스는 그에 말에 코웃음을 치며 그의 일행 중 두 명을 토막 쳐 저녁식사로 먹었다고 한다. 가볍게 말하자면 씨알도 안 먹힌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키클롭스는 그가 누군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안다한들 별다른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쉬울 것이 없는 무인도에 도착했지만 오디세우스의 마음은 어딘가 허전했던 것이다. 그의 마음속에 다른 욕구가 고개를 들었다. 인정의 욕구 낮선 땅에 사는 존재로부터 찬사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고향 이타케에서는 왕이었고, 트로이에선 영웅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언제나 섬바디였다.

- P163


여행자들도 마찬가지다. 삶의 터전에서 우린 어느 식으로든 '섬바디(Somebody)'이다. 물론 대게 오디세우스처럼 여행지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야! 라고 인정의 욕구가 뿜뿜하진 않는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와 같이 여행지에서 우리들은 철저하게 타자화, 노바디가 된단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좁겐 '코리안(Koean)' 더 크겐 '아시안(Asian)'일 뿐이다. 거대한 관광명소에서 현지인들에게 우리는 '관광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모국에서 가지고 있던 복잡한 정체성은 남한 출신의 여행자라는 간단한 스테레오타입으로 대체된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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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뱅 테송 '여행의 기쁨'


그리고 작가는 독자들에게 말한다. 바로 이 점이 어쩌면 여행하는 이유일 수 있겠다고. 일상에서 우리를 옥좨고, 나에게 부여된 모든 것들을 벗어던지고 본의 아니게 '아무것도 아닌 자(노바디)'가 되 잠시동안만이라도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리는 것. 이를 위해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실버 태송의 말처럼 여행이 약탈이라면 여행은 일상에서 결핍된 어떤 것을 찾으려 떠나는 것이다. 우리가 늘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면 뭐하러 그 먼길을 떠나겠는가.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 P180

여행은 여행자가 외부 세계에 감행하는 습격이며, 여행자는 언젠가 노획물을 잔뜩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약탈자다 - 실뱅 테송, 여행의 기쁨 중 P155




'노바디'의 이중성



아무것으로도 덮여 있지 않은, 나를 누르고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거의 벗어난 여행자로서 우리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리고 때론 이를 위해서 여행하기도 한다. 간단히 말해 일상의 찌듬을 잠시 잊는 시간이 바로 여행이다. 그 곳에선 모국에서 내가 갖고 있는 역할, 의무 다 벗어던지고 그냥 한 여행자로써 맛난 것 먹고, 아름다운 풍경 보고 다니면 그 뿐이다.

그러나 삶의 터전에서의  '섬바디(Somebody)인 나' 는 없어졌지만 '아무것도 아닌 나(노바디)'에 갖가지 스테레오타입(Stereotype: 편견)이 붙어버려, 말이 이상하지만 노바디는 노바디인데, 특정한 노바디가 된다면?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인데 '~한 특징을 지닌 한국 사람' 혹은 '~한 특징을 지닌 한국 여성 혹은 남성'으로만 인식된다면? (물론 각각 나라별, 국민들이 가지는 성향 차이는 분명 있다. 이는 절대 부정할 수 없다)

모국에서 나를 나라고 규정짓는 외부요인들이 없어졌지만, 또 다시 여행지에서 우리는 현지인들과 다른 사람들로 규정된다 혹은 우리 스스로 그들을 우리와 다른 이들이라 규정짓기도 한다. 이런 나가 과연 아무것도 아닌 나(Nobody)가 맞긴 맞을까? 과연 그곳에서 우린 진정으로 '노바디의 여행'을 행할 수 있을까?

힘들 것이다. 우리 모두 또 다른 울타리 안에 걷혀 버리게 된 것이다. 가장 큰 예가 바로 '중국인들'이란 말이 아닐까 싶다. 나는 벌써 앞 문장에서 '중국인들'이란 말을 사용해 그들을 한 데 묶어버렸다. 이제 그 안에 엄청나게 많은 개개인들의 정체성들은 없어졌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중국인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사실 그들의 이미지는 그닥 좋지 않다. '여행지에서 대게 그들은 공공장소에서 언성 높여 수다를 피우고, 잘 씻지 않고, 새치기를 일삼는 사람들이라 인식 된다'. 그들에 대한 이런 선입견이 그들의 행동들이 어느정돈 기여했을 것이다. 한 때 뉴스에서까지 보도된 적이 있었다.

허나 모든 중국인들이 이런 편견에 부합하는 건 절대 아니다.

대게 우리들은 어떤 나라 사람을 보면, 그 한 사람을 보고 가지게 된 생각, 혹은 들려오는 말들을 기준으로 그 나라에 대한 이미지를 규정짓고, 그들의 행동을 예상한다. 일치하면 '역시나'가 되고, 불일치되면 '의외네'란 말이 나온다. 가지고 있던 스테레오타입이 마치 기정사실인 것 마냥 말이다.

여행자란 수식어와는 별개이나, '난민'또한 이런 맥락으로 그들의 정체성이 형성된다. 세계엔 난민을 보호하고, 그들의 인권을 우리 모두가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몇몇 난민들의 범죄를 전체 난민의 이미지로 덮어 '난민은 위험하고, 배척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상당하다. 우리나라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스테레오타입 또한 이와 같다.

이들 모두, 개개인 하나 하나가 아닌, 자신들이 속한 집단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이 이들의 정체성을 대체한 것이다.

그렇기에 진정한 '노바디 여행'은, '어떤 한 사람' '어떤 한 여행자'로서 내가 존재할 때 가능하지 않을까.


[이선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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