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겐 특별한 영화 비평의 의미 - "필로 FILO"

글 입력 2019.06.2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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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영화 비평은 영화의 부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애초에 내 영화 인생의 시작점에 평론가들의 비평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0년 전, 나는 이동진 평론가와 김태훈 칼럼니스트가 매주 한 편의 영화를 추천해주는 한 IPTV 자체 제작 프로그램의 열혈 시청자였다. 프로그램 속 영화에 대한 두 사람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 프로그램을 보기 전까지 나에게 영화는 그저 드라마 한 편보다 긴 오락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작품의 주제 의식이 명확하게 드러날 때를 좋아했었다. 예를 들어, 전쟁 영화에서는 참혹한 전쟁 장면이, 종교 영화에서는 종교를 비판하는 장면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영화 한 편에, 한 장면에, 한 컷에 그렇게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추천에 따라 본 영화 속에는 곳곳에 섬세한 비평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그들의 흔적을 발견하는 기쁨은 꽤 짜릿했다. 그 기쁨은 내가 지금까지 영화를 보면 그 영화에 대한 평론을 꼭 같이 보는 습관을 갖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나의 그 습관은 꼭 내가 본 적 있는 영화를 대상으로 한다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나에게 영화 비평은 분명 새로운 영화를 알게 해주는 창구로 시작했지만, 점점 내가 본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도구로 변하였다. 내가 비평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들도 영화를 제대로 보았는지, 놓친 의미는 무엇인지, 몰랐던 배경 지식은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대답으로 제한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본 적 없는, 혹은 완전히 모르는 영화에 대해서 다루는 비평은 일부러 골라내 읽지 않았었다.

 

<필로> 8호에서 소개되는 영화들은 모두 내가 본 적 없는 영화다. 본 적 없을 뿐만 아니라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감독의 이름도 생소했다. 평소 같았으면 당연히 고민할 것도 없이 선택의 대상에서 제외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필로>를 선택했고 읽었다. 온라인상에서의 비평만 읽어봤던 내가 전문적인 잡지에서의 영화 비평을 읽어보고 싶다는 호기심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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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O>는 '영화'를 뜻하는 'film'과 '어떤 것을 좋아하는'이란 뜻의 'philo-'를 결합한 말로 '영화와 언어와 사랑의 탐색지'라는 슬로건을 걸고 깊은 통찰의 글을 통해 영화를 비평하는 격월간 잡지다. 여러 매체의 등장으로 점점 설 곳을 잃어가는 영화 비평의 지속을 기다리고 응원하고 있을 독자들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탄생하였다.

호기롭게 선택한 <필로>가 내 앞에 놓였을 때, 뒤늦게 ‘내가 이 잡지를 잘 읽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내용으로만 가득할 것이 예상돼서 선뜻 책장을 펼치는 게 망설여졌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겨우 표지를 넘겼다. 그리고 바로 편집자의 솔직한 ‘이실직고’를 읽자 멀게만 생각되었던 이 잡지에 인간미가 느껴졌고 책장을 더 넘기자 내가 했던 걱정이 모두 기우에 불과했음을 느꼈다.

 

영화 내용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어 내가 영화를 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글에서 소외감을 느낄 일은 전혀 없었다.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잡지는 물 흐르듯이 술술 읽혔다. 단지 그 영화에 대한 해석과 감상만 읽었을 뿐인데도 그 깊이에 영화 한 편을 다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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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전주국제영화제의 여러 상영작을 간략하면서도 자세하게 다루는 글을 읽고 영화제를 직접 체험한 것 같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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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8로 대장정을 마무리한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대한 글을 읽고는 ‘대부분의 인물이 죽는다.’는 특징만 알고 있던 시리즈의 긴 여정을 함께 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런 기분이 드는 것과 실제로 감상한 것과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문장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평론가들의 깊이 있는 감상은 접해본 적 없는 그 작품과의 거리감을 사라지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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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글은 일본에서는 일 년, 한국에서는 한 달 차이를 두고 개봉한 두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아사코>의 비슷하면서 다른 마지막 두 주인공이 함께 무언가를 바라보는 장면에 대한 글이었다. 그 글을 읽고 내가 처음으로 영화 비평을 접했던, 영화 한 편에, 한 장면에, 한 컷에 담긴 의미를 처음 발견했던, 그를 통해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던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났다.

 


<도쿄>에서 가득했던 공동의 의지 같은 것은 여기 찾아볼 수 없고 대신에 다른 것이 있다. 함께 무엇을 견디려는 안간힘이 아니라 함께 있는 서로를 견디려는 안간힘이다.


p. 72



글은 오로지 함께 바라보는 그 마지막 장면만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에서의 함께 바라봄은 각각 상처를 지니고 있는 두 주인공의 연대, 삶을 향한 의지이고 <아사코>에서의 함께 바라봄은 아직 신뢰가 회복되지 않은 서로에 대한 불안과 그 불안을 잠시 외면하는 행위이다.


만약 내가 이 글을 읽지 않고 그 영화들을 보았다면 해당 장면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을 것이다. 바라보는 행위가 무언가를 외면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음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론가의 깊은 사색은 그렇게 지나쳤을 장면에 생명력을 부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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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영화 <퍼스트 리폼드>, <라스트 미션>, <유레카>에 대한 글이나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를 위한 추모글, 일본 배우 카세 료가 바라본 한국 배우 기주봉에 대한 글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평소 책을 읽는 속도가 느린 내가 순식간에 <필로>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이 잡지에서 다룬 몇몇 작품들을 감상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영화 비평은 영화의 부속품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영화 비평이 내게 얼마나 특별한 의미인지, 단지 관람한 영화에 대한 해설을 넘어서 내게 영화의 아름다움을 알려준 선생님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필로>를 읽고 그 망각에서 깨어난 나는 이제 보다 더 적극적으로 모르는 영화에 대한 비평을 향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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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 FILO NO.8
- 2019.05/06 -

펴낸곳 : 매거진 필로 편집부
분야

잡지 > 예술/대중문화/영화

규격
170 * 240 mm

쪽 수 : 144쪽

발행일
2019년 05월 10일

정가 : 16,000원

ISBN
979-11-96378-26-4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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