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디까지가 예술인가? [시각예술]

무엇이 예술이 될 수 있고, 무엇이 예술이 될 수 없을까.
글 입력 2019.06.22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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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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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


마르셀 뒤샹, 그만큼 미술사에 혁명을 가져온 사람이 또 있을까? ‘미술은 이러이러 해야 해!’ 라는 관념을 깬 사람이다. 관념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면, 관념이라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암묵적인 약속 같은 것이고, 그것은 사람이 자라나면서 사회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학습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의식적으로 학습되었기에 그것을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회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나는 지금도 사회가 부여하는 기준에서 벗어난 행동을, 아니 심지어 기준에서 벗어난 ‘생각’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예를 들어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성의 역할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했고 사회의 관념이 변하는 지금에서야 겨우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구나 생각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뒤샹은? 그 당시 변기는 절대 예술품이 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그러한 생각을 깨고 실천에 옮겼으며 결국 그 생각이 사람들의 생각도 변화시켰다. 뒤샹은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라면 진정한 대중이 나타날 때까지 50년이고 100년이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 대중만이 제 관심사입니다.”


뒤샹의 말을 음미하고 있자니, 내가 바로 그 몇 십년 후의 진정한 대중이 된 것만 같다.



오재우 <콜랙터스 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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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진행한 <거짓말>전


과연 무엇이 예술이 될 수 있고, 무엇이 예술이 될 수 없을까? 뒤샹 이후로 미술에 대한 관념은 많이 깨졌다. 요즘에는 무엇이든지 미술이 될 수 있다. 정말 그럴까? 과연 어디까지가 예술인 걸까?

얼마 전에 본 또 다른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 한다. 오재우의 <콜렉터스 초이스>라는 작품으로 뒤샹의 샘을 오마주한 작품이었다. 영상 작업에서 6명의 콜렉터들이 나오는데, 각각 데미안 허스트, 앤디 워홀, 마르셀 뒤샹, 오형근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콜렉터들을 인터뷰하는 영상에서 이상한 점이 몇 가지 보인다. 영상 속 인물은 작품을 1유로 그리고 2달러에 구매했다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영상에 등장하는 작가는 마르셀 뒤샹의 샘의 복제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영상을 보면서 데미안 허스트나 앤디 워홀 같은 거장의 작품을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을뿐더러 그 작품들을 그러한 헐값에 소장하였다는 것은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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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뒤편에 작가는 친절하게 증거 사진까지 전시해두었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는데, 뭔가 이상하다. 앤디 워홀의 작품을 소장한 콜렉터는 인터넷에서 파는 2천원 복제품을 소장하고 있었고, 데미안 허스트 작품을 소장한 콜렉터는 데미안 허스트의 명언이 적힌 1유로 액자를 소장하고 있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게 무슨 예술이야? 저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

마치 뒤샹이 처음 <샘>을 꺼내놓았을 때 사람들의 반응과 유사한 것 같다. 아직까지 예술계가 복제품을 예술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앤디 워홀 이후에 복제품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왜 여전히 인터넷에서 파는 복제품은 예술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을까? 작가의 손맛이 없기 때문에?

또 다른 누군가는 작가가 의도가 있는 것만이 작품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인터넷에 파는 복제품이나 달력에 인쇄된 복제 그림에도 인쇄하는 사람의 의도가 반영되지 않았겠는가. 어떤 크기로 인쇄할 것인지와 같은, 디자인이나 구성에 대한 고민이 들어가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작가의 의도에도 고급 의도가 있고, 저급 의도가 있는 것일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뒤샹은 이와 같은 고민을 몇 번이나 반복한 후에야 확신을 가지고 <샘>을 낼 수 있었을까.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만큼은 나 또한 그의 생각의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새로운 것은 다시 오래된 것이 된다. 뒤샹이 가져왔던 새로움도 이제는 새로운 관념이 되어버렸다. 그것을 다시 새롭게 깨는 것이 앞으로의 미술 과제가 아닐까 싶다. 당신이 생각하는 예술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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