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맘대로 쓰는 강아지 단편선 "행복한 세상의 강아지" [문화 전반]

글 입력 2019.06.1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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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쓰는 강아지 단편선]

* 아래 강아지들은 일면식도 없으나, 초상권을 나눠준 감사한 대형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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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야 누리야

방년 10살이 된 우리 집 강아지 누리. 주말인데 나를 두고 나간다고? 테니스공을 입에 물고 ‘할 말 없냐? 실화냐?’ 싶은 듯 말없이 쳐다본다. 눈빛을 피해 도망치듯 나왔다. 꼭 집에 와서 산책 가려고 했는데 비까지 내리니 할 말이 없다. 그래도 누리는 여전히 집에 돌아온 나를 귀를 젖히고 반겨준다. 미안함은 나의 몫이다. 나를 이렇게 반겨주고 잘해주는 존재가 있었던가. 내가 몰골이 어떻든, 무슨 옷을 입고, 무슨 일을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늘 나를 좋아하는 존재가 있다는 건 든든하고 감사한 일이다.

여태까지 두 마리의 강아지를 길렀다. 둘 다 이름은 누리다. 귀찮아서 겹친 건 아니고 미안하고, 고맙고, 그리워서라고 하자. 하얀 백구인데도 처음 강아지의 이름이 누리였던 건 초등학교 때 읽었던 <누리야 누리야>라는 책이 인상 깊었기 때문이었다. 의미 있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그 주인공 누리도 어린 나이에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던 점이 특히 비슷했고 그 친구처럼 멋지게 자랐으면 했다. 주인공 이름을 따라 누리가 되었다.

첫째 누리는 조금은 차갑고 도도한 친구였다. 태어난 지 벌써 3개월째 되어 어느 정도 큰 상태로 와서 우리가 어색했던 모양이다. 주말 아침 갑자기 상자 속에서 꼬물거리는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의 기분은 신비로웠다. 정말 강아지가 우리 집에 계속 있게 된다니! 누리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무 영문도 모르고 온 여기가 새 집이 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누리 덕분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시절이 외롭지 않았다. 누리 옆에서 책을 읽고, 수학 문제를 풀고, 땅을 파고 벌레를 구경하며 놀았다. 어머니께 혼나면 누리한테 가서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우리 둘 다 자주 혼났고 찬밥 데기 같은 동질감이 있었다.

누리가 9살이 되던 해 갑자기 무거운 표정의 어머니가 누리를 지방으로 보내야 하는 사정이 생겼다고 말씀해주셨다. 마음 아픈 것보다 누리에게 미안해서 계속 미안하다고 얘기를 했다. 다른 곳에 가는데 그리 싫어하지도 않고 차에 올라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누리가 의젓해서 더 슬펐다. 못해준 것들이 미안했다. 강아지를 좋아하기만 했지 함께 하는 건 처음이었다. 산책도 많이 못 갔는데 더 잘해줄 걸 싶었다. 하얀 속눈썹으로 쌍꺼풀이 예쁜 눈이 아른거렸다.

빈자리가 컸고 견디기 힘들었다. 다른 강아지를 찾다가 어느 날 엄마가 동네 목욕탕에서 새끼를 낳았다며 황구 한 마리를 데려오셨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이었다. 황구는 누런 줄 알았는데 까만색이어서 충격이었다. 알고 보니 황구는 어렸을 때 까맣고 점점 색이 노랗게 변한다고. 이름을 뭐로 지을까 고민하던 차에 엄마가 먼저 누리라고 부르자고 하셨다. 저번 누리에 대한 미안함을 이번 친구한테는 만회해보자는 마음도 있었으려나. 수건 반 쪽에서 잠을 청하는, 두 손 가득 들어차는 까만 강아지는 둘째 누리가 되었다. 어릴 때 와서 오븐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꽁알거리는 게 귀여우면서도 안됐더라. 떨어진 가족인 줄 착각한 모양이다.

둘째 누리가 10살이 되었다. 계단이 무서워 내려오지 못해서 같이 연습하던 꼬맹이 강아지는 이제 옛 말론 쌀 한 말쯤 되는 덩치로 성큼성큼 계단을 두 세 개씩 오르내린다. 장족의 발전이다. 첫째 누리와 성격이 많이 다르다. 다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애교는 넘친다. 퇴근시간이 되면 어떻게 아는지 계단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배를 보이면서 발라당거리기도 하고 몸을 비비적거린다. 마음에 안 들면 뭐라고 구시렁거린다. 으르렁보다는 칭얼거리며 흥, 쳇, 이런 느낌이다. 눈빛으로 말하는 걸 보니 사람 다 됐다. 사고는 또 얼마나 쳤는지. 집도 꽤 많이 나가서 붙잡느라 동네를 뛰어다닌 적도 많고 도로로 나갔다 차에 스친 적도 있다. 정말 잘못되는 줄 알고 마음이 쿵 떨어졌다. 덕분에 심각한 건 아니지만 수술을 하느라 입사 초 월급이 털렸다.

그러나 노르스름한 밀밭을 닮은 듯 쓰다듬지 않을 수 없는 뒤통수, 부드러운 털, 달리며 스치는 바람이 좋아 한껏 뒤로 젖혀진 귀에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을 수 없다. 나에겐 강아지지만 당연히 크기 상 남들에겐 개다. 좋아하는 게 확실하고 변하지 않아서 좋다. 산책, 테니스공, 수박, 참외, 고구마, 깔개 위에 앉아있는 걸 좋아한다.

강아지가 죽고 나면 무지개다리를 건넌다고 표현하더라.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회사 동료가 산책을 좀 더 많이 다닐 걸 그랬다는 말을 했다. 남은 간식을 나에게 나눠주면서 말이다. 누리에게는 잘 주지 못했던 통조림이었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우리의 시간보다 강아지의 시간은 훨씬 짧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덜 미안하고 아쉬우려고 어스름한 저녁 혹은 모두가 잠든 주말 새벽 누리와 산책 나가려고 몸을 일으킨다. 철부지마냥 매번 가는 길에도 뭐가 좋다고 신나 하는 누리를 보고, 막상 길을 나서면 오히려 내가 잘 오고 있나 뒤를 돌아보거나 기다리는 누리를 보고(누가 누굴 걱정하는지 원), 나와 함께 걷는 길에 의심하지 않는 누리를 본다.

목련나무 밑에 기품 있게 앉아 있는 누리를 보면 이게 누구네 강아지야, 우리 강아지야 하면서 뿌듯함에 사로잡히는 철딱서니 없는 주인이 되었다. 오래도록 부르고 싶다. 우리 누리, 누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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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세상의 강아지

15kg 대형견과 산책하는 길은 험난하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면 세상에 나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나쁘지 않아도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가 쌓이면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TV에서 강아지들이 사람을 물었다고 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가볍게 다치는 경우부터 목숨을 잃기도 하는 걸 보면 순하고 착해 보이던 친구가 맞다, 늑대와 동족,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짐승이었지 싶다. 사람이 다쳤으니 시선이 고울 수 없다. 대형견은 잠재적인 범죄자가 된다. 입마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왔을 때는 입마개를 해도 풀어헤치는 누리라서 바깥 산책을 하기 어렵겠다 싶어 고민이 많았다. 나는 누리를 알지만 사람들은 누리를 모른다. 개를 키우는 사람에겐 강아지는 가족이고 친구이지만 사람들 앞에는 지나가는 커다란 개일뿐이다.

우리 개는 착해요, 사람을 물지 않을 거라고 말할 생각도 자신도 없다. 산책을 하다 보면 유독 누리를 무서워하는 몇몇 분들이 보인다. 큰 개라 무서워하거나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분들에겐 존재만으로도 누리가 좋게 보이기 어렵고 좀 더 배려가 필요하다. 사람이 지나갈 수 있도록 우리는 안 보이는 곳이나 혹은 거리를 둔 채 기다리고 있다. 처음엔 한국사람 빨리빨리 산책 안 하고 뭐하나 싶었을 누리도 이제는 사람이 지나가면 보채지 않고 얌전히 있다. 같이 사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사람 많은 시간을 피하고, 적당한 거리를 두는 방법으로. 큰 개가 얌전하단 말을 들으면 뿌듯하다.

물론 사람이 무서운 순간도 있다. 갑자기 만지려고 할 땐 혹시나 누리가 놀라서 물진 않을까 마음이 철렁한다. 모르는 사람이 예쁘다고 머리나 몸을 만지면 얼마나 깜짝 놀라겠는가! 애초에 누리는 사람들의 휘파람이나 칭찬이나, 손길 같은 건 별로 관심이 없다. ‘산책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예뻐도 눈으로만 봐주세요’라는 표식이라도 달고 다녀야 하나.

또 누리에게 똥개라며 놀리고 가는 말에는 상처 받는다. 믹스견이 어때서! 아이라인이 되어있는 고운 눈, 멋진 꼬리와 탄탄한 다리를 가진 멍멍이를 봤냐 말이야. 이건 마치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말포이가 마법사와 머글 혼혈이라서 별 볼일 없고 역겹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나의 반응도 예상할 수 있겠지? “입 닥쳐 말포이!” 속으로만 말하고 현실에선 아직까진 무시 중이다. 누리와 나는 쓸데없는 소리에 대답해줄 만큼 한가하지 않다. 물론 해줄 말은 많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유전자 안 섞인 사람 있나. 해외교류에 크고 작은 전쟁이 몇 번이며 심지어 다문화시대에 말이야. 순종 잡종 따질 입장은 아니지 않나? 누리가 못 알아들었길 바랄 뿐이다.

소형견들은 다른 세상 같다. 앙알거리는 목소리에 작은 몸집, 귀여운 외모로 사람들은 마음을 놓는다. 반대로 나는 막상 그 친구들을 마주칠 때 가장 걱정스럽다. 무서우니 기선제압을 해야겠다는 건지 누리에게 먼저 얼굴을 찡그리며 짖기 때문이다. 누리는 무척 어이없어서인지 성질이 나는지 씩씩거리다 나를 쳐다본다. 저 쪼끄만한 게 나한테 시비 거는 게 보이냐는 듯. 달래고 다시 길을 나서지만 정말 무서울 땐 줄을 하지 않은 소형견이 무슨 배짱인지 누리에게 짖으며 가까이 올 때다. 시비를 누가 걸었든, 줄이 풀렸든 안 풀렸든 누리가 물거나 상처라도 내면 전적으로 불리하다. 치료비라도 물면 큰일이라는 필사적인 마음으로 늘 조마조마하듯 넘어간다. 대형견은 덩치 때문에 감수해야 할 게 많다. 사람도, 작은 강아지들도 조심해야 하는 숙명이 있다.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것에 감사해야 할 수도 있겠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도 개 나름이다. 산책하는 강아지의 배부른 한탄일 수도 있다. 어떤 강아지는 늘 줄에 묶여 거의 평생을 보내기도 하니까. 주인이 데려왔다 버리거나 학대하고, 새 주인을 찾지 못해 빠르게 생을 마감해야만 하는 상처 많은 강아지도 많다. 버려진 개들은 주인을 기다리거나, 자기 탓을 하곤 한다지. 키우던 개를 잡아먹는 건 복잡하다. 키우던 닭이나 돼지나 소도 잡아먹는데 개만 예외냐, 그렇게 따지고 들면 고기는 먹을 거 하나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할 말은 없다. 인간과 동물 사이엔 애초에 종족을 뛰어넘는 친구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유전자에 정보를 남겨야 하는 건 아닐까. 인간이란 종족은 따뜻한 친구가 될 수도 있지만 무서운 올무가 될 수도 있음. 염두에 두고 확인 바람!

사람과 강아지의 역사가 유독 복잡하게 느껴지는 건 우리가 그래도 꽤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마음을 나눈 어떤 사이가 그렇지 않겠냐만은. 상처를 주고받는 사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함께 하고 있는 걸 보면. 행복한 세상이 오면 좋겠다. 미워하거나 탓하지만 말고. 정말 세상에 나쁜 사람도, 개도 없다면 말이다.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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