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유리구두 없는 신데렐라

글 입력 2019.06.17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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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하면 가장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재투성이, 계모의 구박, 왕자, 무도회, 요정의 도움, 12시가 되어 풀리는 마법 등 다양할 것이다. 그중 하나의 이미지를 꼽자면 바로 유리구두가 있다.


12시가 되어 마법이 풀리자 신데렐라는 황급히 무도회장을 떠난다. 왕자는 그 뒤를 쫓지만 신데렐라는 사라지고, 남은 것은 유리구두 한 짝뿐이다. 왕자는 유리구두를 들고 신데렐라를 찾아 나서고, 왕자가 신데렐라를 찾는 것도 바로 이 유리구두를 통해서이다.


그러나 여기 유리구두 없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있다. 바로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장-크리스토프 마이요가 제작한 발레 <신데렐라>이다. 지난 6월 12~14일 예술의 전당에서는 바로 이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신데렐라> 공연이 있었다. 유리구두가 없는 신데렐라의 이야기는 과연 어떤 것일까?




1. 프로코피예프의 <신데렐라>가 태어나기까지



<신데렐라>는 프로코피예프의 여덟 번째 발레곡이다. 프로코피예프는 발레 뤼스와의 협업으로 <알라와 롤리>(1914-15), <어릿광대 이야기>(1915), <강철의 걸음>(1925-26), <탕자>(1928-29) 네 개의 발레곡을 쓰며, 그 밖에 1924년에는 <트레페즈>라는 짧은 발레곡을 작곡하기도 한다. 1929년 디아길레프의 사망으로 발레 뤼스가 해산된 이후에는 파리 오페라의 청탁을 받아  <드네프르 강가에서>(1930-31)라는 발레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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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1891-1953), 1918



프로코피예프의 일곱 번째 발레는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1934년 레닌그라드(현 상트 페테르부르크) 키로프 극장(현 마린스키 극장)의 제안으로 시작되었지만, 이후 볼쇼이 극장으로 옮겨진다. 그러나 여러 복잡한 상황들로 인해 1935년 10월 완성된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가 초연되는 것은 1938년 체코슬로바키아 국립 브루노 극장에서였다.


그리고 1940년, 레오니드 라브롭스키의 안무와 갈리나 울라노바가 줄리엣 역을 맡은 레닌그라드 키로프 극장에서의 공연으로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은 마침내 성공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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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 역의 갈리나 울라노바
로미오 역의 유리 즈다노프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의 성공 이후 프로코피예프와 키로프 극장은 다음 발레를 의논하게 된다. 그들의 선택은 <신데렐라>였다. 수많은 신데렐라 판본 중 프로코피예프가 토대로 삼은 것은 프랑스의 작가 샤를 페로의 <상드리용 Cendrillon>(1697)을 러시아의 민속학자 알렉산드르 아파나시예프가 각색한 것이었다.


1940년 11월, 프로코피예프는 키로프 극장과 발레 <신데렐라>를 계약하고, 1941년 3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발레곡의 절반 가량을 완성했다고 말한다. <신데렐라>는 키로프 극장에서 1941년 초연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1941년 6월 22일, 독일의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전쟁이 시작된다.


전쟁 발발로 발레 <신데렐라>의 초연은 무기한 연기된다. 키로프 극장은 레닌그라드에서 페름으로 옮겨가고, 프로코피예프는 처음에는 코카서스 날치크로, 그다음에는 트빌리시로 향한다. 이후 그는 영화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시테인과 <이반 뇌제>를 작업하기 위해 에이젠시테인이 있는 알마-아타로 떠난다. 전쟁 기간 동안 프로코피예프는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작품을 작업하는데, 이때 작업하고 있던 곡들이 영화 <이반 뇌제>, 오페라 <전쟁과 평화> 등이었다. 그가 미완성이었던 발레 <신데렐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은 1943년 7월에서야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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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 (구 키로프 극장)



1943년, 페름으로 피난가 있던 키로프 극장 측에서 발레 <신데렐라>의 리허설을 시작할 의향을 보이자 프로코피예프는 알마-아타에서 페름으로 이동한다. 페름에 도착하자마자 프로코피예프는 <신데렐라>의 작곡을 다시 시작하고, 1944년 2월에는 키로프 극장이 발레의 리허설에 착수한다. 그러나 1944년 1월 27일 레닌그라드 봉쇄가 풀린 이후 다시 레닌그라드로 돌아간 키로프 극장은 발레 <신데렐라>의 공연을 <백조의 호수> 공연 이후로 미룬다.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백조의 호수>는 러시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발레 중 하나로, 전쟁으로 피폐해진 레닌그라드의 문화가 살아남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연이기도 했다.


결국 발레 <신데렐라>는 1945년 11월 21일,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된다. 처음 발레의 제작이 언급되기 시작하고 5년 만이었다. 그러나 프로코피예프의 오케스트레이션은 볼쇼이에게 너무 가볍다는 이후로 1945년 볼쇼이에서 공연 당시 보리스 포그레보프라는 타악기 연주자가 오케스트레이션 한 버전으로 연주되었다. 당시 프로코피예프는 1945년 1월 발병한 뇌졸중에서 회복 중이었기에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1946년 4월 8일 레닌그라드 초연에서야 발레 <신데렐라>는 프로코피예프의 원래 오케스트레이션 버전으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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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볼쇼이 극장



2.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신데렐라>



프로코피예프의 발레곡 <신데렐라>의 전반적인 색조는 어둡다. 프로코피예프 음악의 서사성과 서정성은 대단하지만, 그의 신데렐라는 전반적으로 무겁다. 예를 들어 신데렐라에서 중요한 무도회 장면에서 연주되는 왈츠는 반짝이는 무도회장의 샹들리에보다는 한 톤 어두운 자줏빛의 벨벳이 연상되는 묵직함을 갖고 있다. 12시를 알리는 종이 치는 장면의 음악은 어떠한가. 신데렐라와 왕자의 행복한 시간이 무너짐을 묘사하는 음악은 짓궂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소 기괴한 면이 있다.


그래서일까. 프로코피예프의 또 다른 발레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에 비해서 <신데렐라>는 적은 수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음악 역시 전반적인 색채가 그다지 밝지는 않다. 그러나 <로미오와 줄리엣>의 극적인 비극 서사와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은 잘 어울리지만, <신데렐라>의 서사와 음악은 상대적으로 덜 어울린다고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그러나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신데렐라> 안무에는 프로코피예프 음악의 묵직함을 들어 올리는 무언가가 있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신데렐라>는 현대적이고 익살스럽다. 무대장치는 단순하며, 의상 역시 고전과는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이 공연에는 신데렐라의 가장 특징적인 소재 한 가지가 빠져있다. 바로 유리구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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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리구두를 대신한 것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소재가 바로 유리구두이다. 한국판 <신데렐라>로 볼 수 있는 콩쥐팥쥐전에서도 한국식 유리구두인 꽃신이 등장한다. 그러나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신데렐라>는 유리구두를 과감히 없앴다. 뿐만 아니다. 이 공연에는 신데렐라를 무도회장으로 데려다준 호박 마차도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신데렐라와 왕자를 연결해주었을까?


그 시작은 발레 첫 장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대 한 편에 엄마의 드레스를 손에 들고 그리워하는 신데렐라가 앉아있고, 다른 쪽에서는 신데렐라의 아빠와 엄마가 애틋한 사랑의 춤을 춘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곧 이별의 시간이 찾아온다. 바닥에 쓰러진 신데렐라의 엄마 위로 금가루가 떨어진다. 신데렐라의 아빠는 이렇게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지만, 신데렐라의 엄마는 요정으로 다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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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 공연에는 디즈니 만화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비비디 바비디 부 노래를 부르는 요정 대모가 없다. 대신 신데렐라를 돕는 것은 금빛 의상을 입고 나오는 매혹적인 요정이다. 그는 바로 신데렐라의 엄마이다. 신데렐라가 무도회에 갈 때 입는 옷 역시 요정, 즉 엄마의 흰 드레스이다. 이때 신데렐라의 발에는 유리구두 대신 금가루가 묻는다. 신데렐라를 두고 무도회장으로 향한 의붓언니들이 던져준 콩 그릇은 어느새 신데렐라의 발을 장식할 금가루가 담긴 그릇으로 변신한다. 무엇보다 그의 발은 맨발이다.


발은 무용수에게 중요하다. 발레를 보면 무용수들이 발끝의 움직임 하나하나 절대로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토슈즈를 신은 그들의 발은 곡선을 그리며 동작을 더욱 우아하게 만든다. 그러나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신데렐라>에서 신데렐라는 토슈즈를 신지 않은 맨발이다. 무도회장에 들어서는 신데렐라의 모습에서 가장 먼저 조명을 받는 것은 그의 금가루가 묻은 맨발이다. 왕자는 그의 발에 매혹되어 무릎을 꿇고, 왕자가 다시 신데렐라를 알아보는 것 역시 그의 맨발을 통해서이다. 이것은 멍든 의붓언니들의 발과 대비되며 신데렐라의 순수함과 자유를 부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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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신데렐라> 포스터



극 중 신데렐라와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은 계모와 의붓언니들이다. 소박하고 간편한 신데렐라의 의상과 달리 의붓언니들의 의상은 왜곡되어 있다. 무도회를 갈 때 신데렐라가 입는 옷은 만화영화 속 풍성한 드레스가 아니다. 그는 엄마가 물려주신 단순한 흰색 드레스를 입는다. 그러나 의붓언니들이 입는 옷은 반쪽 짜리 코르셋과 붉은 천으로 된 반쪽 짜리 드레스이다. 계모 역시 끝이 뾰족한 꼬리 모양의 뼈대를 입고 나온다. 무도회가 끝나고 왕자가 신데렐라의 집으로 찾아오는 장면에서의 의상은 더욱 노골적이다. 두 의붓언니는 막 성형수술을 받은 환자처럼 얼굴과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다. 신데렐라를 찾기 위해 일일이 발을 확인하는 왕자가 마주한 것은 두 언니의 검게 멍든 발이다. 그것은 토슈즈를 신지 않은 맨발의 신데렐라와 대비된다.




4. 고전 속 자유



신데렐라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고전 동화이다. 글로 기록된 신데렐라 이야기의 초기 버전은 기원전 9세기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소재면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무도회에서 도망가다가 신발 한쪽을 잃어버리고, 왕자가 그 신발의 주인을 찾아 결혼하는 큰  얼개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신데렐라>와 거의 비슷하다.


유럽에서 나타난 <신데렐라> 중 유명한 것은 그림 형제의 전래동화 모음집에 수록된 <재투성이 아가씨 Aschenputtel>이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다소 잔혹하기로 유명하다. 왕자가 구두의 주인을 찾기 위해 신데렐라의 집으로 왔을 때, 계모는 자기 딸의 발을 구두에 맞추기 위해 첫째 딸의 발가락과 둘째 딸의 발뒤꿈치를 자른다. 덕분에 왕자는 신데렐라의 의붓언니를 구두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만, 발에서 나온 피 때문에 사실이 들통난다. 결국 왕자는 구두의 진짜 주인을 찾고 신데렐라의 결혼식에서 비둘기가 의붓언니들의 눈을 쪼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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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투성이 아가씨>에서 새들이
신데렐라를 돕는 장면을 묘사한
Alexander Zick의 일러스트



이러한 잔혹한 처벌은 한국판 신데렐라 <콩쥐팥쥐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역에 따라 서사에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콩쥐, 혹은 콩쥐의 남편은 팥쥐를 죽인다. 그리고 죽은 팥쥐로 젓을 담거나 국을 끓여 팥쥐의 어머니에게 보낸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팥쥐 어머니는 그것이 자신의 딸인지 모르고 먹다가, 결국 정체를 알고 놀라 죽는다. 정말 잔인하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신데렐라 이야기는 바로 프랑스의 작가 샤를 페로의 동화집 <마더구즈>에 실린 신데렐라이다. 이를 러시아판으로 바꾼 것이 프로코피예프가 작곡한 <신데렐라>의 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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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페로의 <마더구스>에 실린 이야기들
(제일 아래쪽에 상드리용, 즉 신데렐라가 보인다.)



이처럼 고전 동화 신데렐라의 서사는 시대와 지역에 맞추어 다양하게 변화되어 왔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이 새롭게 해석한  <신데렐라> 역시 그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발레 <신데렐라>를 제작한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예술감독 장-크리스토프 마이요는 프로그램북에 게재된 서면 인터뷰에서 고전발레의 재해석 가능성이라는 이점을 말한다. 고전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인 서사를 알고 있다.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점과 맞물려 재해석한 그 작품만의 특수한 지향점이 관객들 각자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가는 것이다.


유리구두 없이 맨발로 춤추는 신데렐라의 모습은 2019년 이 발레를 보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나에게 그것은 높은 굽의 구두라는 사회적인 코르셋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이다. 이전에 신데렐라 이야기를 생각할 때마다 유리로 된 구두를 신고 춤추는 것이, 심지어 걷는 것이 과연 가능한 지에 대한 의문이 항상 있었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신데렐라>는 이 의문에 답을 주었다. 구두는 벗으면 된다. 신데렐라는 맨발로도 춤출 수 있다. 하이힐을 신고 기형적인 자세로 걷는 발이 아름다운가? 아니면 자유로운 맨발이 아름다운가?





[홍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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