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뜻밖에 솔플 - 2019 레인보우 페스티벌 [공연]

축제 혼자 못 가시는 분? 그게 바로 접니다.
글 입력 2019.06.07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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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초대를 받고 고대하던 그 6월 1일, 뜻밖에 여정이 시작되었다. 앞에 '뜻밖에'라는 부사를 넣은 것은 당초 계획했던 것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솔플'을 하게 된 것이다! 솔로 플레이의 준말인 솔플은 일행 없이 혼자 공연이나 문화생활을 즐길 때 주로 쓰이는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의도치 않은 '솔플'을 하게 되었다. 함께 가기로 했던 친구가 중요한 면접이 잡혀서 오후 늦게야 합류했기 때문이다.

원래 무언갈 치밀하게 계획하고 떠나는 스타일은 아니나, 이건 조금 다른 차원의 변수였다. 혼자 콘서트를 다니거나 전시회를 가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니 별로 대수롭진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기 위해 가는 콘서트가 아닌 축제 현장이다

수많은 연인과 친구들 사이에 홀로 있을 나를 상상하니 정말 끔찍했다. 원체 남 시선 신경 쓰지 않고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뛰어놀 만큼 쿨하지도 못했으니 걱정이 태산이었다. 남들은 혼자 축제가는 게 뭐 별거냐 하겠지만, 내게는 엄청 별거였다. 어찌 됐든 일단 출발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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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을 타고 한 시간 정도를 달려 가평에 도착했다. 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자라섬으로 이동했는데 사방에 오손도손 이야기꽃을 피우며 지나가는 일행들이 많았다. 역시 혼자 온 사람은 별로 없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눅 들지 않기 위해 괜히 어깨를 꼿꼿이 폈다.

저 멀리서 신나는 음악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함성, 노래를 따라부르는 소리가 들려와 발걸음에 힘을 실었다. 공연장까지 가는 길목이 참 예뻐서 중간중간 자꾸 걸음을 멈춰야 했다. 그날따라 공기도 맑고 하늘이 푸르렀다. 강물과 산의 색까지 예뻐서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았다.

걸음을 재촉할수록 사람들의 함성이 커지고 내 마음도 부풀었다. 혼자 오느라 머뭇댄 시간 동안 오전 행사는 끝이 난 상태였다. 많은 사람이 돗자리를 펴고 미소를 흘리고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같이 온 친구나 연인의 팔짱을 끼고 즐겁게 춤을 추는 사람도 있었다.

내 빈자리가 너무 허전해서 일단 술로 이 허함을 달래야겠다는 생각에 칵테일을 샀다. 맨 정신엔 상황을 받아드리기 힘들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걸 바란 것일까, 마셔도 마셔도 긴장이 풀리지 않는 거다. 분명 직원분이 알코올이 들어 있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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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친구에게 전송하면서 '제발 빨리 와' 하고 덧붙였다. 보이는가, 저 어색하고 어정쩡한 손 위치. 카메라를 제대로 들고 찍지도 못한 것 같다. 사람이 많은 곳에 혼자 있으면 어딘가 붕 뜨고 불안한 게 내가 솔플로 축제를 다니지 못하는 이유였다. 차라리 좌석이라도 나뉘어 있는 공연장이면 그 불안함이 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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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런 페스티벌의 솔플은 처음이라 어색했다. 이 현장에서 아무도 나에게 관심 갖지 않는다는 걸 아주 잘,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래도 위축됐다. 나만 빼고 모두 아는 사람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군중 속 고독을 느낀 셈이다. 내겐 좀 더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한 가수의 공연이 끝나고 관객 대부분이 우르르 자리를 떴다. 옆 스테이지에 인기가 좋은 가수가 나오나 보다, 하며 나는 본격적으로 자리를 탐색했다. 사람이 거의 없는 스테이지에서 중앙 바에 몸을 기대고 칵테일을 홀짝였다. 저는 솔플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입니다. 저는 괜찮아요. 그런 생각을 되뇌면서. 물론 전혀 괜찮지 않았다.

다음 가수가 등장했다. 케이윌이었다. 그가 노래를 시작하고 사람들이 천천히 모여들기 시작했고 나는 갈수록 긴장이 풀렸다. 내가 무대에 서는 것도 아닌데 왜 긴장하고 난리였는지 아직도 모를 일이다. 점차 근육이 이완되고 주변에 시선이 덜 가자, 비로소 공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케이윌의 열창에 맞춰 팔을 좌우로 크게 흔들기도 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그제서야 내 주변으로 포진된 솔플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혼자서도 무척 잘 놀았다. 어딘가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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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드디어 친구가 왔다! 생각보다 늦게 도착한 친구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이산가족 상봉처럼 달려가 껴안았다. 우리는 갖은 음식을 파는 푸드트럭으로 향했다. 퀸즈 스마일로 음식을 주문하면 푸드트럭에서 음식을 받는 방식이었다. 시간대별로 주문할 수 있는 음식과 여기저기 줄을 설 필요 없이 다양한 음식을 한꺼번에 시킬 수 있는 게 장점이었다. 다만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아서 치킨과 감자튀김, 생맥주를 시켰다.

맛있는 냄새가 솔솔 올라오는 도시락을 펼친 채 타이거 JK와 윤미래, 비지의 공연을 보았다. 하지만 금세 앉아 있던 돗자리를 박차고 당장 뛰어나갈뻔 했다. 너무 신이 나서였다. 음식을 시킨 걸 후회했던 순간이었다. 그들의 무대가 끝나기 직전에 스탠딩으로 향한 친구와 나는 짧게나마 달아오른 분위기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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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힘은 대단했다. 아니지, 음악의 힘은 위대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친구가 와서 의지가 되었는진 몰라도 전에 없던 힘이 샘솟았다. 스탠딩 한 가닥에서 방방 뛰며 손을 흔드는데 주변 누구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누군가 소리를 지르고 누구는 손을 휘젓고 어떤 이는 방방 뛰고. 그 모든 게 용납되는 곳이 바로 페스티벌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자유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그 분위기를 온몸으로 깨달았다. 조금만 더 일찍 느꼈다면 솔플로도 훨씬 신나게 놀았을 텐데. 그때는 그것이 나의 최선이었음을 아는데도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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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B는 엄청났다. 한껏 달아오른 공연장 분위기를 순식간에 점령했다. 윤도현의 등장부터 확성기 퍼포먼스까지 어느 하나 시선이 빼앗기지 않는 게 없었다. 그는 무대를 다룰 줄 아는 뮤지션이자 유머를 지닌 프로였다. 오십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이렇게 섹시할 수가 있나? 친구와 연신 '진짜 섹시해'를 남발했다. 우리끼리 정말 매력적인 사람에게 찬사를 보낼 때 쓰는 감탄사였다.

그는 무대를 휘젓고 다니다 못해 급기야 관중석을 들썩이게 했다. 정말 들썩이게. 그가 파도 퍼포먼스를 주문하자 전 관중이 홀린 듯 앉았다가 신호에 맞춰 한꺼번에 일어나는 진풍경이었다. 하나둘 셋, 그 신호에 맞춰 땅을 박차고 일어나는데 모든 스트레스가 내 안에서 터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능숙한 공연 매너와 멋진 실력, 그를 뒷받침하는 밴드의 거침없는 연주까지. 역시 로큰롤 베이비. It's Rock 'n' roll, Baby.

활활 타오르는 무대 위 불꽃처럼, 하늘을 수놓는 폭죽처럼 화려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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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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