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은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다. 부르는 이와 듣는 이. 그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으며 화자(話者)가 될 수 있다. 짝사랑하던 당신으로 인해 밤 잠 설치던 날들과, 당신과의 이별을 결심하던 순간. 비 내리던, 혹은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봄바람이 불어오던 날은 물론이고, 어처구니없이 사소한 순간들도 음악과 함께라면 특별한 추억이 되곤 한다. 음악을 들을 때 과거의 순간들이 기억나곤 하는 것처럼, 음악을 향유하는 모든 이들의 감정과 추억들은 음악 속에 녹아내려 기억된다. 그렇기에 음악은 이야기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여과 없이 털어놓을 때, 그리고 그것이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 감정의 깊이는 배가 된다. 그리고 이는 음악을 만나 더욱 아름다운 방식으로 변주된다. 이를 탁월하게 보여주는 아티스트가 있다. 음악을 통해 자신의 서사를 이야기하는 아티스트 지바노프(jeebanoff)이다.

jeebanoff 지바노프 - We(OUI) (Feat.sogumm) MV 중
2016년 싱글앨범 [Hide]로 데뷔한 지바노프는 꾸준히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앨범을 발매해왔다. 중성적인 미성을 통해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 지바노프는 아직 대중적인 스타덤에는 오르진 못했으나, ‘R&B 좀 듣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명성이 자자하다. 2016년 발매한 ‘삼선동 사거리’를 통해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소울 부분'에서 수상하기도 했으며, 그 해 대한민국 대표 힙합/알앤비 전문 미디어 ‘리드머’가 선정한 ‘국내 알앤비/소울 앨범 베스트 10’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음악에 자신의 이야기를 녹여내는 아티스트 '지바노프'. 그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so fed up

절대 머물지 말고 나와 함께 가줘여기 네가 다녀간 침대방 안에서또 니 생각을 해종이컵에 눌린 네 이빨 자국과네 입술이 선명해jeebanoff [so fed up]track.01 soft 中
지바노프 - 삼선동 사거리
[영상 출처 - 유희열의 스케치북]
그땐 몰랐을 걸 내 사람들
펼쳐질 일들과 바라볼
꿈과 내가 함께 묵던 지하방
더 묶인 내 꿈과 시간도
jeebanoff [so fed up]
track.08 삼선동 사거리 中
‘삼선동 사거리’는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던 시절, 삼선동 사거리 지하방에서 음악을 하며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과거를 다룬 곡이다. 반복되는 ‘난 믿어’라는 가사에는 그가 자신의 음악에 대해 갖고 있는 확신이 느껴진다. 확신에 대한 대답처럼 많은 사람들이 '삼선동 사거리'라는 곡과 그의 음악에 주목하기 시작했으며, 이 곡을 통해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소울 부문’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다. 그 믿음을 토대로 지바노프는 계속해서 자신만의 음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내겐 진심이 없나요
그대는 어떤 가요
내 말이 거짓일까요
그대가 거짓일까요
이 말도 진실 되지 않나요
그럼 어떡하죠
jeebanoff [KARMA]
track. 03 진심 中
꽤나 소심한 사람이 돼있어
왜 난 무늬만 착한 놈이 됐어
매 순간하나 양보하고
달래준 게 난데
매 순간하나
맘에 안 든단 건 다 왜 넌데
jeebanoff [KARMA]
track. 05 Timid 中

지바노프 네 번째 EP 앨범 [주마등 : 走馬燈]
다시 마주쳤을 때엔 글뿐이었다. “녀석들과 함께 그 곳에선 함께일까” 담담한 말투는 여전했고, 흔들림은 없었다.어디 즈음 미련을 남긴 걸까, 세월은 아직 멈춰 있었다.
jeebanoff [주마등 : 走馬燈]
앨범 소개 글 中

먼 훗날을 다시또 너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내게 주어진다면그럼 그때는 꼭 말할 수 있기를너를 혼자 두고 와서 미안해jeebanoff [주마등 : 走馬燈]track. 03 마지막 아침 中
모두가 그날의 차갑던 바다를기억하긴 할까요이곳에 세월은 빨리도 흐르죠그대는 뭔 미련이 남아서 일까요그날의 세월은 아직 멈춰있네요지바노프 [주마등 : 走馬燈]track. 05 The Ferry 中
jeebanoff (지바노프) - B.T.N (Better Than Now) Official M/V
[영상 출처 - GENIE MUSIC]
너와 지새던 수많은 밤들이
어느새부터였나
새삼 가장 길게 느껴지곤 해
난 널 놓은 것 같아
더 이상은 기대하지 마
jeebanoff – B.T.N 中
올해 지바노프는 두 곡의 싱글을 발매했다. 2월 1일 발매된 ‘B.T.N(Better Than Now)’은 권태기의 끝에 다다라 끝을 고하고 마는 이의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몽환적인 사운드에 더해지는 ‘늦었어도 여기서 끝을 내는 게 난 맞는 것 같아’와 같은 노래 말들은 너무도 사실적이어서 곧 그 감정에 동화되도록 만든다. 그간 경험해온 권태 속 혼란스러운 감정과 실연의 아픔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느껴진다. 이별의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한 이가 이 노래를 듣는다면 눈물부터 왈칵 쏟아져버릴 것만 같다.
혼란스러우면서도 공허한, 관계의 끝에 다다른 이의 모습을 잘 표현해낸 뮤직비디오의 끝에는 행복했던 시간들을 회상하는 듯 전혀 다른 분위기의 영상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이야기는 4월 12일에 발매된 ‘We(OUI)’에서 이어진다.
jeebanoff(지바노프) - We (OUI) (feat. sogumm) official M/V
[영상 출처 - GENIE MUSIC]
If we 우리가 조금만
서로 선을 그었다면 좋을까
If I 그랬다면 내가 널 이렇게
좋아하진 않았을까 싶어
jeebanoff – We(OUI) 中
‘We(OUI)(Feat. sogumm)’은 이별을 결심한 후의 ‘B.T.N(Better Than Now)’보다 앞선, 서로의 마음에 의심을 갖기 시작하는 권태의 시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얼핏 급하게만 느껴졌던 '하룻밤'에 대한 후회를 드러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당신과 함께한 모든 순간에서 권태의 원인을 되짚어보며 돌이킬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회의감과 상실감, 그리고 그에 대한 후회를 드러내고 있다.
B.T.N의 프리퀄인 만큼, 홍콩의 밤거리를 배경으로 하는 두 뮤직비디오는 연결성을 지니고 있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듯 올해 그는 두 곡의 음악으로 권태와 이별이라는 또 다른 서사를 풀어냈다.

그가 들려주는 음악은 이야기다. 자신의 순간들을 그러모아 음악에 담아낸 이유도 있지만, 현실적인 표현에 결국 우리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를 건넨다. 음악 속에 가득히 들어찬 서사는 단순한 멜로디와 비트를 넘어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본 듯한 진한 여운을 남긴다.
그만의 음악적 스타일을 통해 ‘말’과 ‘감정’을 퍽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그의 음악이 지니는 가치이자, 넘쳐나는 가요들 사이에서 그가 갖는 차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일기장과 같은 음악을 선보이는 그에게는 끝없는 이야기들이 내재되어 있을 것 같다. 여전히 그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 그가 들려줄 수많은 이야기들이 더욱 기대가 된다.
[이미지 출처] 지니뮤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