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마워, 살기로 결심해줬던 거 [영화]

죽기 직전에 생각날 대사 한 마디를 알았다.
글 입력 2019.05.16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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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달링(Breathe) _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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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건 모르겠지만

이 사람이란 느낌이 왔어”


“혹시나 해서…

누구도 나만큼 당신을

사랑하진 못 했을 거야”


“고마워.

살기로 결심해줬던 거”



대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눈물이 나는 영화가 있다. 영화[달링]이 내겐 그렇다. 제목만 보면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 혹은 아무리 봐줘도 '500일의 썸머'같은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다.


원제는 'Breathe', '숨을 쉬다'라는 뜻인데 이 영화를 한국에 수입해오면서 제작진이 범한 가장 큰 실수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왜 원제를 두고 한국어 번역도 아닌 또 다른 영어 단어 '달링'을 붙였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숨 그리고 숨 쉰다는 것의 의미가 이 영화 속에서 얼마나 빛이 나는지, 또 그것이 주는 새로운 삶의 시각이 얼마나 큰 파도로 내 마음을 덮쳤는지 안다면 누구나 제목에서 아쉬움을 느낄 것이다.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1950년대 영국, 스스로 몸을 제어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운명은 컨트롤할 수 있었던 로빈 캐번디시, 그리고 그의 운명을 바꾸게 해준 아내 다이애나. 이들의 인생은 너무나도 기구하고 아름답고 어찌 보면 가장 인간 다웠다.


군인 출신에 누구보다 건강한 신체와 운동신경을 가지고 태어난 로빈은 아내와 함께 떠난 아프리카 나이로비에서 폴리오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목 아래로는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중증 장애를 가지게 된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환자들이 즐비한 병실에서 이전과 다르게 하루하루 무의미하고 무기력한 삶을 보내며 막 태어난 자신의 아들 조나단도 외면한 채 어서 이 삶이 끝나기를 바라면서도 스스로 호흡기조차 떼어낼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한다.


"망할 놈의 기계가.. 날 계속 숨 쉬게 해"

"그러니까, 일단은 좀 더 살아야겠다. 그치?"


죽음을 무릅쓰더라도 집에서 평범하게 살다가 죽겠다는 다짐을 한 로빈은 호흡기 없이는 2분도 채 살 수 없다는 한계를 알고서도 다이애나와 함께 병원 탈출을 감행한다. 기술자인 친구 테디의 도움으로 이동 가능한 침대에 호흡기를 연결하고 다이애나의 옆 침대에서 평소처럼 함께 눈을 감고 함께 아침을 맞았다. 이후 로빈의 삶은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는 아찔함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행복과 성취가 뒤따랐다.


조나단이 커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고 친구들과 티 파티를 가질 수도 있었으며 침대를 차에 싣고 조금씩 멀리 여행하더니 침대째로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으로 떠나기도 했다. 로빈은 다이애나가 곁에 있었기에 무엇도 두렵지 않아 보였다. 그녀가 더 살아달라고 해서 살기로 결심했기에 그녀가 곁에 있는 삶은 죽음이 늘 가까이 있어도 살아볼 만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로빈의 인생은 빈 악보에 그녀의 노랫말과 그의 음표가 함께 만들어 낸 음악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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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use I don't want to just survive, I want to truly live. Set them free.



로빈은 장애인으로 살면서 중증 장애 환자들을 자신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주장하며 영국 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킨 인물이 되었다. 장애인은 병원에만 있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비장애인들처럼 내 집에 살 권리가 있으며 가족,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밥을 먹을 권리, 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여행할 권리, 여름엔 맑은 하늘 아래서 시원한 주스를 마시며 누워있을 권리와 겨울엔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맞으러 나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 처음 세상에 일깨워준 것이다. 자신의 생각대로 휠체어를 만들어준 친구 테디와 함께 장애인들을 위해 더 효율적이고 활동적인 휠체어를 만들어 공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수단을 로빈과 테디가 해결한 셈이었다.


그렇게 로빈은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 속에서 30년을 더 숨 쉬며 살아간다. 그 당시 영국에서 가장 오래 생존한 후천성 전신마비 환자로 기록에 남아있을 정도니 그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만하다. 곁에 있는 아내와 함께 늙어가고 아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 로빈은 30년간 그를 숨 쉴 수 있게 해줬던 기계에 대한 부작용으로 점점 호흡기 질환이 심해졌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힘겹게 옆에서 지켜보는 다이애나에게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몸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었지만,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던 로빈은 친구들과 송별회를 할 만큼 미련 없이 혹은 미련 없는 척을 하며 무덤덤하게 다이애나의 곁을 떠났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 죽음의 문턱에서 무던한 표정을 지을 수 있겠는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 더욱 현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우리는 숨 쉬는 한, 심장이 쉬지 않고 펌프질을 하고 온몸에 뜨거운 피를 공급하는 한, 살아있다. 살아있음에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가 있고 그 위에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있다. 로빈을 숨 쉬게 하는 것은 기계였지만 그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다이애나와 그녀의 사랑이었다.


“고마워.

살기로 결심해줬던 거


그의 죽음 앞에서 그녀가 이렇게 덤덤히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처음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살기로 결심해준, 그리고 어쩔 수 없었던 그 삶을 누구보다 활기차게 살아내 준 로빈의 지난 30년에 대한 고마움 때문일 것이다. 이 대사는 아마도 계속해서 삶이 힘들 때마다 다이애나의 목소리로 내게 들려올 것만 같다. 지치고 힘겨운 삶을 이겨내고 그 끝에 다다랐을 때 누군가 나에게 이 말을 건네는 날을 상상하며 나는 또 그 하루를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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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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