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테이데 봉(El Teide)에서의 꿈같았던 시간 [여행]

마이너에 대한 고찰 09
글 입력 2019.05.01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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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리페섬으로 떠났던 지난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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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유럽을 여행하면서 내가 가장 기대했던 것은 역시 테네리페섬 여행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윤식당>이 방영되면서 ‘가라치코’로 유명해진 섬이지만, 사실 유럽인들에게는 이미 꽤 유명한 휴양지이다. 유럽 대륙보다는 아프리카 대륙에 가깝지만, 스페인령인 테네리페는 1년 내내 날씨가 좋아서 관광객들에게 언제나 사랑받는 여행지이다.

그러나 테네리페는 뚜벅이들이 여행하기는 까다롭다는 평이 많았고, 그마저도 한국인들이 쓴 리뷰가 별로 없어서 여행 정보를 영어로 검색해야 할 때도 있었지만, 버스를 타고 걸어 다니면서 1주일 동안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했던 기억은 역시 ‘테이데 봉’에서의 시간일 것이다. 테네리페섬 중앙에 솟아있는 이 화산은 대서양의 섬 중에서도 가장 높은 3,781m를 자랑한다. 숫자로만 봤을 땐 감이 잘 오지 않지만,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이 산의 봉우리를 볼 수 있었을 정도로 아주 높은 산이었다. 실제로 비행기를 타고 테네리페섬으로 들어갈 때 비행기가 떠 있는 비슷한 위치에 테이데 봉이 있어서 기장님이 비행기 안에서 소개해주시기도 했다.

이곳을 여행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여전히 이곳에서 보았던 경이로운 자연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테네리페섬의 모든 곳이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던 테이데 봉에서의 기억을 더듬어 오늘의 글을 써보려고 한다.



우당탕 테이데 봉으로 향하기까지


테이데 봉으로 가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우선, 테이데 봉에 차 없이 갔다는 사람들의 후기가 거의 없었고, 그렇다면 어떤 투어를 신청해야 하는지에 대한 후기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영어로 구글링을 하면서 투어를 신청할 회사를 추리고, 어떤 곳을 선택해야 할지 대략적인 결정을 했을 때 이미 테네리페섬에 도착해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운 나쁘게도 1년 내내 날씨가 좋은 테네리페섬의 날씨가 우리가 머무르는 1주일 내내 흐릴 것이라고 되어 있었고 심지어는 비가 올 수도 있다는 예보가 있었다. 테이데 봉으로 향할 방법도, 그곳의 날씨도, 그 어떤 것도 불확실했던 상황에서 정말 못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테네리페섬에 며칠 머무르면서 날씨를 지켜보기로 했고, 상황이 좋아지면 생각해뒀던 투어를 바로 신청하기로 했다. 그렇게 6일 중 4일이 흘렀고, 애매한 날씨 속에서 떠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저질러보자는 마음으로 ‘sunset tour’를 신청했다.



다른 행성의 풍경 같았던 해발 25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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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2500m쯤까지는 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그것도 꽤 높아서 버스로 1시간 좀 넘게 달렸던 것 같다. 올라가는 길에 구름이 내려 앉아있어서 사방이 뿌옇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높은 나무들 사이로 뿌연 구름이 칠해져 있는데, 꼭 다른 세상으로 워프하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니 거짓말처럼 하늘이 맑아졌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식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저렇게 형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을지 감조차 오지 않는 바위들이 널려있었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면서 이 모든 것들을 밝히는데, 선명하면서도 황량한 풍경이 다른 행성에 와있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The best sunset I’ve ever s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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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 풍경을 둘러보다가 버스를 타고 해가 지는 풍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지점으로 향했다. 원래대로라면 케이블카를 타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선셋을 보는 일정이었지만, 바람이 많이 불었던 탓에 결국 취소되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가이드가 말한 지점에 도착했을 때, ‘말이 필요 없는 광경’이라는 표현에 걸맞은 모습을 봤다.

끓어오르는 거품처럼 빽빽한 구름 위로 동그란 태양이 떠 있는 광경. 내 발아래에는 구름이 있고, 나와 같은 위치에는 해가 있는 광경. 그리고 지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색감들이 어우러진 광경.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자연을 감상하면서 내내 떠들어댔던 우리였는데 이 일몰 앞에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그곳에 있던 할아버지 한 분이 이 한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The best sunset I’ve ever seen!”



정말로 ‘쏟아질 것 같았던’ 별을 바라보면서


해가 다 진 뒤에는 다시 버스를 타고 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지대로 향했다. 완전히 깜깜해진 뒤에 별을 보기 위함이었다. 사실 앞서 봤던 일몰이 너무 강렬하고 아름다워서 그다음의 무언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느껴질 때였는데, 인공적인 불은 하나도 없는 그곳에 나갔을 때, 단 몇 시간 안에 이렇게 거대한 황홀함으로 가득 찰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예정된 지점에 도착했을 때, 쉼터 같은 곳에서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안내를 따라 밖으로 향했을 때, 모든 불빛은 사라져있었고 오직 별들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한참을 목을 꺾어 별을 바라보는데, 아마 내 인생에서 봤던 모든 별을 합친 게 그날 봤던 별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많은 별이 쏟아질 듯 하늘에 흩뿌려져 있었다. 너무 많아서 ‘저게 별이 맞나?’라고 했을 정도니까, 얼마나 많은 별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더 설명하는 게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이런저런 별자리나 성운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천체 망원경을 통해서 별들을 보기도 했지만, 솔직히 지금 그 모든 게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그렇게 많은 별이 나를 향하고 있는 기분, 그래서 느껴진 전율, 그리고 더 많은 나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뒤섞였던 그때의 감정이 또렷이 남아있을 뿐이다.



3000m를 내려가면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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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정이 끝나고 깜깜해진 산을 다시 버스를 타고 천천히 내려갔다. 하루 종일 모든 일정을 소화했으니 버스에서 졸았을 법도 한데, 이상하게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고요한 산, 여전히 보이는 별들. 이 풍경에 드뷔시의 ‘달빛’이 어울릴 것 같아 이어폰으로 그 노래를 들으며 창밖을 쳐다봤다. 테네리페섬은 내가 6개월 동안의 교환학생 생활을 끝내고 거의 마지막 여행으로 왔던 곳이었다.

교환학생 생활의 마무리, 2019년의 시작, 한국으로 돌아가기 직전, 그리고 유럽에서 지내는 동안 바뀐 내 생각으로 다시 시작할 한국에서의 생활. 수많은 마무리와 시작이 공존하는 시점에서 내가 느꼈던 황홀함 직후에는 오히려 차분함이 찾아왔다. 지금껏 느꼈던 것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앞으로의 시작을 다짐하면서 어쩌면 터닝 포인트가 될지도 모르는 지금을 잘 기억해두기로 했다.




[김윤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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