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롯이 음악으로 소통하는 시간 - 장 하오천 Piano

감각을 세심히 건드리는 피아노 연주
글 입력 2019.04.19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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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는 아마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악기가 아닐까? 통계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많이 배우는 악기도 피아노고, 각종 매체를 통해 피아노와 관련된 소재를 다룬 작품들을 많이 접할 수 있기에 친근한 악기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클래식이라 하면 어떤가? 물론 클래식도 많이 접하기는 한다. 하지만 친숙하다고 보긴 어려운데, 조금은 길고, 고전적이며 전문적이라 쉽게 다가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려운 클래식 용어들과 곡 해석은 마치 그들만의 리그 같아 보이지 않는 벽을 느끼게 한다. 음원 사이트에서도 클래식의 지분이 낮은 것은 여전히 많은 이들이 클래식을 멀게 느낀다는 방증인 셈이다.


당연히 아는 얘기를 왜 하고 있느냐 하면, 이번에 다녀온 장하오천의 피아노 독주회를 통해 클래식을 실제로 접하는 것이, 다양한 결을 느낄 수 있는 즐겁고도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장 하오천의 피아노 연주는 내 오감을 세심히 건드렸다. 그리고 가득 확장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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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하오천



처음 접하는 클래식 피아노 공연이라서, 공연을 가기 직전 연주를 듣다가 졸게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했다. 하지만 그의 연주를 듣는 내내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는데, 마치 시상을 떠올리듯 무수히 많은 이미지와 영상들이 꿈 속의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덕분에 오감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복합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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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첫 번째 곡인 클로드 드뷔시의 <피아노를 위한 3개의 영상 제2집>을 들으며 마치 청록색의 비 오는 숲에 온 듯한 경험을 했다. 원래 드뷔시 영상 제2집은 섬세한 선율과 시각미가 도드라지는 특징이 있는데, 이를 풍부하게 살려내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후에 2부의 첫 곡은 피에르 불레즈의 <피아노 소나타 제1번>인데, 어떤 스토리나 멜로디가 전혀 없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듣는 내내 알프레도 히치콕의 영화를 보는 듯 긴장감 넘치는 기이한 컬트적 분위기가 느껴져 강렬하고도 신선했다.


아마 내 경험과 무의식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이런 이미지들을 떠올리고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연주엔 오롯이 음악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자기 색깔을 듬뿍 담아 곡을 해석하고는, 본인의 해석을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내보이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관객이 각자의 세계로 도달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 세계란 관객 각자가 그려내는 공간이며 경험일 테고, 어떤 모양새든 그 공간 안에서 마음껏 떠올리고, 느끼게 해주었다.


장 하오천이 최근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언급했듯, 중국의 유자왕과 랑랑의 피아노 연주 모두 본인들의 성격, 가치관, 좋아하는 것이 연주에 다 드러난다. 하지만 그의 연주는 다르다. 온전히 곡 자체에 집중하고 본인은 뒤로한다. 오로지 음악으로 관객과 소통한다. 물론 자기를 드러내는 연주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연주의 결이 있을 뿐이다.


아마 그런 이들의 연주에서는 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장 하오천의 연주는 듣는이가 오롯이 음악을 느끼도록 만든다. 내가 그랬듯이, 듣는 사람마다 각자의 감성으로 음악을 곱씹어볼 수 있게 해주는 점은 그를 대변하는 피아니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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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그의 연주가 그다지 개성이 없거나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화려한 퍼포먼스나 불필요한 기교를 뒤로한 채, 있는 힘껏 절제하며 섬세히 읊어낸다. 마치 그의 피아노 연주는 가야금 연주를 보는듯하기도 했는데, 엄청난 힘이 필요하지만 듣기에는 응축되면서도 탄력적인 느낌이었다.


여기에 그의 짜릿한 완급 조절이 더해져 더욱 다채로운 연주였다. 내면에 가득한 굉장한 에너지를 조절하며 곡에 순수히 그 곡을 연주해내는 데 집중하는 그의 모습은 왜 그가 중국에서 최고의 피아니스트 반열에 올랐는지 알게 했다.


*


더불어 내가 그의 공연에서 전반적으로 다채로움을 느꼈던 것은 그의 선곡 역시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했던 2부 첫 곡인, 피에르 불레즈의 <피아노 소나타 제 1번>은 그가 관객들에게 설명했듯, 조성이 없는 이 곡이 얼마나 강렬한 곡인지 관객들이 꼭 알기를 원했기에 이번 공연에서 선보이는 곡이었다. 20세기에 제작된 이 곡은 굉장히 아이코닉 하지만 콘서트홀에서는 좀처럼 연주되지 않는 곡이라 어쩌면 적어도 금호아트홀에서 만큼은 이 작품이 연주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일 수도 있겠다고 덧붙였다.


또 이어지는 2부 두 번째 곡은, 리스트의 소나타인데, 낭만주의 소나타로 많이 이해하고 있는 리스트의 소나타 B 단조가 사실은 나왔을 당시에만 해도 굉장히 아방가르드하게 여겨졌으며 파격적인 작품이었기에, 관객들이 불레즈의 곡을 들은 이후 리스트의 곡을 들으며 낭만주의적 느낌보다는 파격적이고 색다른 관점에서 곡을 듣기를 바라는 의도로 구성했다고 말했다. 선곡의 배경을 들으며 관객의 경험을 세심히 고려하는 섬세함과 동시에 다양한 시도를 두려워 않는 실험적인 그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인터뷰에서도 말했듯 새로운 것을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탐구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며 본인을 하나의 키워드나 범주에 국한하지 않으려 한다는 그의 시도들이 더욱 관객으로 하여금 다채로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역시 그의 선곡들이 하나의 네러티브로 쭉 이어지는 음악과는 달리, 한 곡안에 많은 네러티브가 존재하는 음악이라고 느꼈는데 다음에 이어질 음 전개가 전혀 예상되지 않아 새로웠고, 음의 다채로운 자극에 즐거웠다.


후에 그가 준비한 곡이 끝나고 관객의 앵콜 요청에 몇 번이나 웃으며 화답해 앵콜곡을 연주했던 그의 면모에서, 음악과 피아노를 온 마음을 다해 대하는 사람임을 느꼈다. 그런 사람의 연주였기에 그와 함께 음악을 공유했던 85분의 길고도 짧은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던 소중한 경험으로 남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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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오천 ⓒ차이나랩



그러니, 나같이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도 오감이 확장되며 오롯이 곡을 느끼는 경험을 했기에, 클래식 공연을 지루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면 한 번쯤은 꼭 시도해보길 바란다. 최근 일상이 단조로워 늘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안의 세상 이외에 새로운 감각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꼭 한번은 장 하오천이 아니더라도 다른 클래식 연주회를 다녀오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이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연주자였던 장 하오천의 역량 때문이었겠지만.





[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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