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권력의 탐욕이 가져온 파국, VICE [영화]

부통령으로서 대통령에 버금가는 실권력을 누린 딕채니, 그는 누구인가?
글 입력 2019.04.18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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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서 여름으로 시간이 뒤틀린 듯 유난히 화창했던 오늘, 나는 근처 영화관을 찾았다. 은사님께서 추천하신 ‘바이스’라는 미국의 정치와 행정에 관한 영화를 보기 위함이었는데, 상영 중 딴생각이 아예 비집고 올 틈이 없을 정도로 영화의 매력이 컸던 것 같다.


바이스는 미국의 정치인이자 CEO였던 딕채니라는 인물을 조명한 실화기반 영화로, 그가 부통령으로서 미국의 권력을 휘두르게 되기까지의 과정과 함께 그 속에 투영된 미국 정부와 사회 모습, 당시 사건들을 잘 보여준다.




부부의 의미? 당시 여성의 지위는 어땠을까?



명문대에서도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생이었던 린(에이미 아담스)은 고등학생 때 만나 결혼한 남편 딕 체니(크리스찬 베일)를 예일대에 입학하게 도와주었지만 딕은 잦은 음주와 폭행으로 대학으로부터 퇴학통지를 받는다. 그 후 음주운전으로 경찰서에 가기도 하고 당시 밑바닥 일로 여겨졌던 전신고치는 일을 하던 딕에게 린은 크게 실망한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을 더 이상 실망시키지 말라며 사랑을 증명해보라 했고 이에 딕은 린에게 다시는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약조를 하고, 와이오밍 대학에 입학해 학위를 마친후 의회 인턴쉽의 기회를 얻는다. 거기서 럼스펠드의 연설에 반해 그의 밑에서 일을 배우게 되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정치계로 도약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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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반의 둘을 보면 정말 사랑스러운 부부가 아닐 수 없다. 아내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새로운 결심을 하고 그녀만을 바라보는 딕. 그리고 남편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그를 최종적으로는 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만든 린. 이 두사람 사이엔 견고한 사랑을 넘어 다른 부부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특별한 힘이 존재했는데, 이는 아마 이들의 사랑이 고등학교때부터 싹트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끈끈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딕에게 린은 자신의 인생에서 구세주와 같은 인물이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파트너였다. 그가 인생의 갈피를 잡지못하고 방황할 때마다 중심을 잡게 인도하는 것은 항상 린이었고, 심근경색으로 선거운동에 참석하지 못한 그를 대신해 직접 연설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며, 결국 와이오밍주 국회의원들 다수를 주정권으로 인도한 것 또한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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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여성의 정치계진출은 거의 없었던 터라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꼭 필요했고 자신이 이루지 못한 야망을 남편이 이뤄주길 원했다. 그런 의미에서 둘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파트너이자 부부였다. 죽음을 코앞에 둔 딕에게 그녀는 말한다. "딕채니, 당신은 아무데도 가지 않을거야." 이에 이번만큼은 그녀와의 약속을 못 지키겠다며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받아들이던 딕. 두사람의 부부애는 참 멋졌다.


 


딕채니는 선한 사람이었을까, 악한 사람이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로 단정 짓기엔 너무나 혼란스럽다. 사실 그는 가족에겐 더없이 좋은 가장이었지만, 정치인으로서 그는 분명한 악인이었기 때문이다. 아내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그는 자신의 두 딸에 대한 사랑도 지극했고 이것은 막내딸 메리사건을 통해 확실히 증명된다.


대선후보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 그가 이제까지의 노력과 정치적 야망을 접게 된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동성애자인 딸 메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지 W.부시 대통령과 부통령 자리에 대해 의논할 당시에도 그는 딸의 신변보호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딕채니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렇게 가정적인 그가 어떻게 악인이 될 수 있는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처음 럼스펠드를 보좌할 때만 해도 딕은 명령에 복종하며 윗사람의 충실한 수하 노릇을 잘해내는 선량해 보이는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럼스펠드에게서 점점 정치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배우게 되고 높은 지위를 하나둘 꿰차면서 권력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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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수석과 국방부 장관에 이어, 공화당이 위축되었을 당시 정치계를 떠나 맡았던 석유회사 할리버튼의 CEO까지. 그리고 부시의 제안에 따른 부통령을 역임하며 입법부와 사법부의 간섭없이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점을 악용했고, 자신의 측근들로 국회를 장악하며 법에 대한 과대해석, 고문제안법, 이라크침공 등 자신의 입맛대로 권력을 휘둘렀다.


자신들이 내놓은 정보에 대해 의심을 제기하는 기자의 부인인, 한 CSI 소속요원에 대해 단순 보복감정으로 신원이 유출되게 조작하고, 특히나 9.11테러 당시 누구의 소행인지에 대한 확실한 물증 없이 거짓정보를 만들어 이라크침공을 추진했다. 이 전쟁으로 인해 자국의 많은 군인들이 희생되었고 이라크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채 죽었다.


또한, 그들이 퍼뜨린 오도가 전세계로 퍼지며 이는 테러조직의 위세와 명성을 키워 IS를 탄생시키는 참사를 낳게 된다. 너무나 무능했던 허수아비 대통령과 그를 조종해 권력을 휘두른 딕채니 시절, 혼돈의 미국사회를 보며 공허한 마음이 한동안 떠나질 않았다.




제목이 가진 이중성



영화제목 VICE 는 부통령, 그리고 악이라는 두가지 뜻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중의성을 내포하고 있는 제목은 딕채니를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그가 임했던 마지막 인터뷰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인터뷰어가 국민들이 아프카니스탄 침공이 의미가 없었다고 말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는 너무나 떳떳하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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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건물을 폭격하고 테러가 일어나는 것을 눈앞에서 보았는데도 이를 방치할 수는 없다. 그런 조치를 취한 덕분에 당시 여러분의 가족이 편하게 잠들 수 있었던것이 아니냐. 당시 나는 상황에 필요한 최선의 조치를 취했던 것에 대해 사과하진 않을 것이다."



테러의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맞이했을 그 때 국민들은 그들의 적은 누구인지에 대한 진실을 원했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적을 원한다라는 명분을 앞세워 결국엔 전쟁으로 자신들의 권력과 재산을 불리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던 딕채니와 그의 추종자들. 사람이 어느정도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에 대한 마지노선조차도 그들로 인해 흐릿해진다. 자신의 가족을 그렇게나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말 한마디로 수많은 사람과 그들의 가족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에 대해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 또한 너무나 역설적이다.




배우들의 명연기와 실존 인물과의 높은 싱크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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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딕채니 / 실제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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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조지 W. 부시 / 실제인물



에이미아담스와 크리스찬 베일이라는 배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캐릭터에 대한 배우들의 이해도와 연기는 뛰어났다.



Q : 많은 사람이 체니를 악인으로 여기고 있다. 역을 맡으면서 그런 고정관념을 떠나 그를 표현하려 했나?


A : “그를 그저 악인으로 보려고 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할리우드의 진보주의자들이 좋아할 너무나 뻔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체니는 결코 악마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그가 전범으로 감옥에 가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런 것들을 떠나 나의 정치적 견해를 떨쳐버리고 그에게 접근하려고 했다. 내가 내 정치적 견해에 신경을 썼다면 영화를 망쳤을 것이다. 나는 체니를 참으로 이해하기 위해 그와 같은 마음 상태를 지니려고 노력했다.”



- 주간조선, 할리우드 통신 인터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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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채니역을 연기한 배우 크리스찬베일




뛰어난 연출효과의 독특한 매력



이 영화가 다른 영화에 비해 돋보이는 것이 있었다면 바로 연출효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굵직한 사건들의 전개를 보여주는 동안 그 사건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한 장면을 연이어 보여주며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깨어있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다.


또한 상징적인 의미라고 생각하는 요소들의 이미지를 극대화시켜 화면에 비추는 것도 참신했다. 이는 영화의 엔딩 무렵 심장기증을 받지 못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딕채니에게 영화 나레이터로 등장한 인물의 심장이 기증되는 장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탐욕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이 새로운 생명을 갈구할 자격이 있을까? 화면에 크게 비춰지는 그의 심장, 그리고 심장의 혈관을 타고 내리는 마지막 붉은 핏방울은 아마도 기증자를 비롯한 희생된 사람들의 눈물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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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인상깊었던 부분은 엔딩크레딧에 관한 것이다. 영화를 본지 한시간정도 밖에 안된것 같다고 느낄 때쯤 엔딩크레딧이 올라와 당황했었는데 이는 감독의 의도적 연출이었다. 엔딩 크레딧 전까진 동성애자인 딸을 위해 정치계를 떠나 기업인에서 가족과 평온한 삶을 즐기고 있는 딕의 모습을 보여준 것과 달리, 엔딩 크레딧 후에는 조지 W.부시와의 부통령건 의논장면이 나오며 권력을 악용하는 딕을 조명한다.


사람들은 인생에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우리 중 누구도 지금의 선택이 미래에 정확히 어떤 결과를 좌우할 지에 대해선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감내하고 선택을 해야만 하고, 어떤 선택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딕이 조지의 제안을 수락하지만 않았어도 당시 미국에서 그런 참사가 발생하진 않았을 것이고 이는 어쩌면 미국사회와 세계를 바꿨을 것이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본 영화가 내게 많은 것을 남겨준 것 같다. 미국의 역사와 정치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고, 이상적인 정치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표를 내 머릿속 한가운데 심어주었다.




"우리의 신념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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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스펠트를 도왔던 초기의 딕채니가 던졌던 이 질문에 그는 통쾌한 웃음을 참지 못한다. 정치계에 입성해 신념을 묻던 딕채니가 권력이라는 칼로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어릴때 즐겨보았던 애니메이션 이누아샤에 나오는 칼이 생각난다. 파괴력이 뛰어난 '철쇄아'로 불리는 칼과 사람을 살리는 능력을 가진 '천생아'라는 칼. 칼을 어떻게 휘두를지는 전적으로 그것을 들고있는 사람의 손에 달렸다.


수만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무기가 될수도, 수만명의 생명을 구하는 정의가 될수도 있기 때문이다. 권력이라는 칼을 휘두르기전에 사람과 가치의 무게를 고려하고 그것이 어떤 칼로서 작용하게 될지에 대해 생각해도 늦지않다.



[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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