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 [시각예술]

글 입력 2019.04.12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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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장래희망은 화가였다.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4살이 되던 해, 엄마의 손을 잡고 갔던 동네 미술 학원을 시작으로 나의 일상에는 언제나 그림이 있었다. 그리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였고 내 삶의 일부였다. 그러나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붓을 쥐고 살았던 나는, 한순간 붓을 내려놓았다.


입시미술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정물화와 소묘 등을 연습하기 시작했고, 하루가 멀다 하고 “거기는 더 어둡게 칠해야지!”, “그렇게 칠하면 안 돼.”, “이렇게 그리는 게 맞는 거야.”라는 말을 들었다. 어느 순간 그림은 나에게 정답을 강요했고, 나의 상상세계는 무너져갔다. 5분이면 그림을 뚝딱 그려내던 어린 화가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그림을 그리려 붓을 쥐면, 어디선가 무서움이 생겨났다. 붓을 쥐고 몇 시간씩 고민만 했다. 어떻게 그려야 진짜처럼 그릴 수 있을지, 과연 잘 그린 그림을 완성할 수 있을지. 그렇게 점점 그리기가 두려워진 나는 미술을 그만두었고, 그림이라고는 종종 가는 전시회에서나 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날이 좋은 어느 날 I draw전시회를 보러 갔다. ‘그리는 것보다 멋진 건 없어’라는 전시회의 부제가 나의 발을 이끌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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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의 처음은 임유정 작가의 그림들로 채워졌다. 사실 나는 여러 작가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전시회를 보면 작가들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림의 느낌과 이미지만 기억하는 편인데, 임유정 작가는 이름이 저절로 외워졌다. 그의 작품이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고, 마음에 들고, 오래 기억에 남는 그림들이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고민도 없이 슥슥 그린 것만 같은 그림의 선들과 단순하지만 충분히 느낌을 살린 채색이 참 좋았다. 무심한 듯 하나의 색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어느 부분은 채색을 안 하기도 한 그림이 정말 멋졌다. 그의 작품 중에는 내가 학창시절 교과서의 한 귀퉁이에 친구들과 그렸던 낙서와 정말 비슷한 그림도 있었다. 그때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경험한 대상을 직접 보고 그리기보다는, 경험한 세계를 토대로 익명의 인물을 통하여 특정한 상황을 새롭게 구성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그래서 드로잉 속 인물들은 실존하는 구체적 대상이 아닌 어떠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몸짓, 표정, 상태를 그린 것에 가깝다.


-엄유정



그림은 최대한 실제와 같게 그리는 것이 가장 잘 그리는 것이라 배웠다. 그림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한참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림엔 정답이 없고, 어떠한 방식이든 어떠한 재료를 사용하든, 어떠한 형태이든 그리기는 멋진 것이다. 그림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만 있다면, 혹은 어떠한 말도 전하지 않더라도 그리는 것은 멋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멋진 그리기를 다시 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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