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 모두의 마음속 어딘가, 여전사의 섬 [공연]

남이 아닌 나를 위할 수 있는 곳
글 입력 2019.03.29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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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은 어떤 내용이야?”

‘여전사의 섬’을 보기 전 주변 사람들이 극의 내용을 물었을 때, 필자는 주저 없이 판타지 장르라고 대답했다. 현대에 아마조네스가 등장하는 설정이었기에 약자를 구하는 여성 영웅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극을 관람하면서, 생각했던 장르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여전사의 섬은 판타지가 아닌 현실이었다.



결국 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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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우리는 모두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하며 살아간다. 이에 때로는 자신의 기분을 양보하기도, 표현을 자제하기도, 욕심을 숨기기도 한다. 그리고 ‘눈치’라는 것이 점점 쌓이면서, 언제부턴가 이러한 사회생활을 당연하고 필수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극은 ‘지니’와 ‘하나’를 통해, 자신을 억누르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 대해 모순을 제기한다.

지니가 취업하기 위해 자신을 과도하게 포장하고 하나가 시부모님에게 순종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이상할 것 없는 상황들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상황들 속에서 지니와 하나는 점점 지쳐간다. 진정성 없이 자기소개서를 쓰고,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스카프임에도 시어머니가 주신 것이기에 매일 매고 다니면서 말이다. 행복하기 위해 취업하고 결혼하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그들에게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에게서 나 자신의 모습이 비친다.

돌이켜보면 나를 숨기거나 억누르는 순간들이 많았다. 누군가가 나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더라도 단순히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갑의 위치여서 종종 참고 넘어가곤 했다. 이를 참지 못한 경우엔 ‘그냥 장난이었는데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상황을 유연하게 넘어가지 못 한다’라는 반응을 얻곤 했다.

하지만 분명 우리는 어릴 적 도덕 시간에, 상대방을 배려해가며 대화해야 한다고 배우지 않았던가. 기본적인 에티켓도, 내 기분을 말할 수 있는 권리도 ‘사회생활’이라는 명목 아래에 무시되어야 했다. 그리고 결국 어느 순간에는 누구와 만나서 어떤 대화를 하든 항상 좋아해야만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처럼 연극은 지니와 하나의 삶을 차례로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나 자신이 억눌리는 존재인지 혹은 누군가를 억누르는 존재인지 생각하도록 한다. 그리고 생각 끝엔 하나의 선택권을 준다. 지금 모습 그대로 이 사회에 적응할 것인지, 아니면 개선해보려고 고민할 것인지.



여전사의 섬: 당당한 자신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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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에서 제시한 개선 방안은 ‘여전사의 섬’이었다. 지니와 하나는 각자가 겪은 부당 대우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함께 여전사의 섬으로 향할 것을 결심한다. 그리고 향하기 전에, 서로에게 질문한다. ‘너는 어떤 사람이야?’라고 말이다. 그 질문을 통해 그들은 잃어버렸던 자아를 되찾는다. 즉, 여전사의 섬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거창하고 화려하게만 느껴졌던, 자신을 아마조네스라고 말하던 엄마가 떠난 섬. 그곳을 가기 위해선 값비싼 비행기나 배가 필요 없었다. 그저 스스로가 누구인지 생각하고, 잊지 않으면 향할 수 있는 곳이었다. 지니와 하나는 그렇게, 자신을 당당하게 지키며 살아갈 것이다.

극의 초반부터 늘 의문을 가졌던 여전사의 섬은 결국 당당한 나의 모습이었다. 자유롭게 표현하고 마음껏 기분을 드러낼 수 있는, 그런 나의 모습 말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판타지의 세계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나를 지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에겐 여전사의 섬이 절실히 필요하다. 결국 ‘나’로 살아가는 것은 ‘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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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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