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맞이했던 계절의 조각들 (1) [기타]

글 입력 2019.03.16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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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춥지 않던 겨울이 지나고 이제 봄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사계절을 맞이하고 떠나보내다 보면 1년이 금방이다. 야속할 정도로 빠르다. 한 계절과의 이별에서 필연적으로 따르는 것은 옷장 정리이다. 일 년에 4번 치르는 이 의식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그래도 미룰 수 없다. 옷장이 계절에 맞게 채워졌을 때 비로소 그 계절을 제대로 맞았다고 할 수 있다. 두꺼운 니트로 채워진 옷장은 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계절에 어울리는 옷이 다른 것처럼 계절마다 매력도 제각각이다. 옷장 정리를 잠시 미뤄두고 이 개성 있는 친구들 이야기나 해볼까 한다. 우선, 봄부터 시작하자.





 

"봄이다" 이 말을 할 때면, 얼굴에 자연스레 미소가 그려진다. 괜히 마음이 설레고 들뜬다. 콧노래가 흥얼흥얼 나올 정도로.

봄 하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것들이 잔뜩 떠오른다. 손끝에 걸리는 따사로운 햇살과 은은히 풍기는 꽃내음. 선선한 바람에 머리카락이 얼굴을 간질이고 눈앞엔 꽃잎이 흩날린다. 이 꽃잎 때문인지 봄은 옅은 분홍색과 노란색이 잘 어울린다. 대학을 갓 입학한 풋풋한 이들과 아이의 말간 웃음도 떠오른다. 아, 역시 봄은 설레는 계절이다.

 

봄이 오면, 겨우내 무겁게 짓누르던 겉옷을 한 꺼풀 벗어낸다. 누에고치에서 빠져나오는 것 같다. 덕분에 발걸음이 나비처럼 살랑살랑 가벼워진다. 물론, 방심하고 두꺼운 옷을 전부 옷장에 넣어버려선 안 된다. 아직 꽃샘추위가 남아있다. 반기는 이도 없는데 눈치도 없이 매번 찾아온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겨울이 떠나기 아쉬워서 부리는 투정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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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재생 목록에도 봄바람이 분다. 1년 동안 묵혀두었던 ‘봄 노래’ 카테고리를 다시 찾아간다. 그 안엔 경쾌함과 잔잔함 그 사이에 있는 곡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 대표가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다. 나온 지 7년이 되었는데, 봄만 되면 위풍당당하게 차트에 등장한다. 올해도 어김없다. 누가 붙였는지 벚꽃 좀비, 벚꽃 연금이라는 별명이 아주 제격이다.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기타 소리와 장범준 특유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이 노래는 듣고만 있어도 엉덩이가 들썩인다. 당장 벚꽃 구경을 가야 할 것 같다. 왜 벚꽃이 필 때쯤은 중간고사 기간이었던 건지. 시험 기간엔 항상 날씨도 좋다. 창밖으로 보이는 쾌청한 하늘과 귓가에 울리는 <벚꽃엔딩>. 고문이 따로 없다. 마음이 뜨니 공부는 안 되고 그렇다고 나갈 수도 없고. 이래서 중간고사 성적이 형편없던 것이라고 핑계를 대본다.

 

벚꽃은 참 예쁘다. 매년 보는데 매번 시선을 뗄 수 없다. 여느 노랫말처럼 팝콘 같기도 하고 소복이 쌓인 눈송이 같기도 하다. 벚꽃에 둘러싸여 길을 걸으면, 행복하다. 너무 거창하고 진부한 표현인가? 그렇지만 역시 이게 적당한 것 같다. 그 순간에는 행복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벚꽃은 너무나 빨리, 쉽게 진다. 바람 한 번, 봄비 한 번이면 금세 사라지고 만다. 봄도 그렇다.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성급하게 사라진다. 조금만 더 있다 가지.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임을 안다. 대개 아름다운 것은 금방 사라지고 마니까. 아니, 금방 사라지기에 아름다운 것인가.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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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름의 동의어로 생명력을 꼽는다. 여름만큼 생명력이 넘실거리는 계절이 있을까. 자연의 고동이 강하게 느껴진다. 모든 생명체가 힘차게 움직인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절로 기운을 얻게 된다. 그래서 좋다. 여름은 푸른색, 초록색, 노란색이 떠오른다. 봄이 옅은 색이었다면 여름은 눈이 시릴 정도로 강렬한 색이다.

 

초여름의 주말 오후, 베란다에 기대어 밖을 내다보면 푸른빛이 가득한 나무가 보인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아주 잘 어울린다. 바람이 나무를 스치자 나뭇잎이 출렁인다. 쏴아아. 파도 소리 같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목덜미에 습기가 배어 나온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온 것이다. 옷은 가벼워진 지 오래다. 조금이라도 살갗에 닿는 것을 줄이고자는 욕망이 점점 커진다. “덥다”라는 말이 습관처럼 터져 나온다. 매미가 저리 요란스레 울어대는 것은 매미도 더워서가 아닐까. 차가운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 실없는 생각을 해본다. 이럴 땐 아주 시원한 수박이 제격이다. 아니면 팥빙수. 집 근처에 과일과 팥을 아낌없이 넣은 팥빙수를 파는 곳이 있다. 꽤 행운인 셈이다. 저녁에 가족끼리 모여 그 팥빙수를 먹는 것이 별미다. 여름엔 이만한 후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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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이야기를 하는데 바다를 빼놓을 순 없다. 여름하면 바다고, 바다하면 여름이다. 바다에 도착하면 코끝에 비린내가 감돈다. 바다 냄새다. 눈을 감고 있어도 바다가 근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린내를 못 견뎌 하지만 바다의 비린내는 어쩐지 싫지 않다. 그래도 괜히 비린내가 난다며 유난을 떨어본다.

 

푸른 바다는 뜨거운 태양 빛을 받아 보석처럼 빛난다.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더위가 한결 가시는 것 같다. 모래사장에 들어가기 전, 신발부터 벗는다. 신발을 벗지 않으면 신발과 발이 모두 더러워진다. 발만 더러워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모래는 한낮의 열기를 머금어 뜨끈하다. 그러나 물놀이를 하고 나면 그 열기가 따뜻하게 느껴질 것이다. 부드러운 모래를 발로 꾹 눌러본다. 내 발 모양을 따라 움푹 파이는 모습이 퍽 재밌다. 이내 파도가 발 모양을 매정하게 지워버린다. 한참 발장난을 하고 나면 발가락 사이에 잔뜩 모래가 끼고 만다. 거슬리지만 어쩔 수 없다. 바닷물로 씻어내도 어차피 다시 묻을 것이다. 해변을 벗어나기 전까지 참는 수밖에.

 

이제 와 밝히자면 바다보다는 계곡을 더 좋아한다. 바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물이 짜서 꺼려진다. 바닷물이 눈에 들어가면 여간 고역이 아니다. 게다가 바다에선 살갗이 금방 타고 탄 피부에 짠 물이 닿으면 따갑다. 그에 반해 계곡물은 맑고 깨끗하다. 당연히 짜지도 않고 주변에 나무도 많아 시원하다. 다만 물이 너무 차서 오래 놀 수는 없다. 그러나 바위에 걸터앉아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것만으로도 더위가 가시니 상관없다.

 

여름은 봄에 비해 길다. 그러나 영원하진 않다. 짓궂게 괴롭히던 더위도 8월이 끝날 무렵 한풀 꺾인다. 인간은 정말이지 적응의 동물이다. 초여름엔 덥게 느껴지던 온도가 선선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엔 덥다고 투덜거린 온도였는데 이젠 이렇게 말한다. “아, 이 정도면 좀 살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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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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