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현대미술과 공존하는 이유

도서 1:1 다이어그램
글 입력 2019.03.11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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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작품을, 한 작가를,

나아가 동시대 한국 미술을

바라보는 데 적절한 거리는 어느 정도 인가.

‘1:1 다이어그램’은

하나로 고정된 거리가 아닌

그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지칭하는 말이다.


- 보도자료




『1:1 다이어그램』

_ 현시원



HSW_cover.jpg
 


[PRESS]

현대미술과 공존하는 이유






Prologue.



"태도"


태도. 단어가 인상적이었다. 작품을 바라보는 태도. 작품이라는 객체와 작품을 보는 감상자라는 주체에서 ‘태도’라는 표현은 조금 더 작품과 사람 사이를 서로 대면하는 관계로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태도’라는 표현은 작품에 기꺼이 따라오는 언어다. 그만큼 작품은 물리적으로 창조된 어떤 것 이상의 세계를 지니고 있으며 사람이 태도를 지니고 바라보는 대상이자 존재인 것이다.



“하나로 고정된 거리가 아닌

그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지칭하는 말”



고정된 거리가 아닌 바라보는 태도. 고정된 거리는 무엇이고, 이것이 바라보는 태도와 달리 불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인용한 문장을 다시 읽어보며 떠올린 질문이었다. 그리고 거리와 태도라는 말은 어떤 관계를 가지는 걸까.


"공존"


‘시간’이라는 것과 시간 때문에 계속 나아가는 한 시점을 중심으로 계속 거리가 형성되는 ‘시대’. 이렇게 단어가 이어진 이유는 ‘동시대’라는 말 때문이었다. 우리는 당연하게도 동시대를 살고 있으며, 저 멀리 혹은 아주 가까이 이미 지난 시대가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지난 시대에도 분명히 지금 시대에 존재하던 것들이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고 있다.


수많은 시대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존재하는 시대이기에 그 시간을 이루는 모든 것에 바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동시대에 사는 한 사람, 현상, 사물, 공간 시대를 이루는 모든 목소리는 그 크기에 상관없이 지금이라는 시대를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공존하기에 충분히 그 소리에 귀 기울일 가치가 있는 것이 우리 곁에 무수히 존재하고 있다. ‘동시대’라는 것은 당장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자 매 순간 닥쳐오는 것으로서 생각보다 거대한 것일지도, 너무 익숙해서 그 크기를 가늠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흐름에서 한국의 현대미술계가 담긴 도서 <1:1 다이어그램> 소개와 함께 프레스 리뷰를 시작하려 한다. 현대미술이라는 언어로 이야기하는 작품들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우리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너무나 익숙한 것을 어떻게 자신만의 언어로 해석하고 있을까. 아니면, 우리가 보지 못한 삶의 이면을 기어코 발견하고 그만의 시선으로 그 이면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많은 질문을 미리 꺼내 놓아도 좋을 것 같다.



2010년대 한국 미술계를 논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단어인 신생공간, 이 책은 그 흐름을 이끄는 데 주요 역할을 한 전시 공간 시청각의 공동 디렉터 현시원이 지난 7년간 기록한 한국 미술의 현장이 담겨 있다. (중략) 독자적인 방법론을 구축하며 한국미술 씬을 빛내온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근접 촬영하듯 내밀하게, 암막에 가려진 수수께끼를 풀 듯 파헤친다.


- 보도자료






『1:1 다이어그램』



사실 고민이 많다. <1:1 다이어그램>을 단순히 현대미술에 관련된 책이라고 소개하기에는 (적어도 내가 만나온) 다른 현대미술 도서와는 달랐으며, 이 표현이 도서가 가진 내용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동안 관습적인 미술 전시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전시를 여럿 기획해온 큐레이터답게, 그의 글쓰기는 때론 아직 창작되지도 않은 작품에 대한 비평문으로, 때론 얼핏 보기에 미술과 상관없어 보이는 한국의 정신사적 풍경을 조망하는 시야를 확보하는 데로 나아간다. 저자가 말하듯 엄밀한 작가론도, 전시론도 아닌, 그렇다고 2010년대 한국 미술을 논하려는 야심을 드러내지도 않는 이 책은 이 모두가 분절할 수 없는 하나의 덩어리로 뒤엉킨 동시대 한국 미술의 단면들을 독자 눈앞에 그려낸다.


- 보도자료



<1:1 다이어그램>은 작품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그 예술가를 이야기하며, 저자가 만난 작품과 전시 현장에 대한 에세이 모습과 닮아있기도 하고, 현대미술을 둘러싼 혹은 그 속에 담긴 공존하는 것들에 대한 서술이자 책을 읽는 독자와 함께 작품을 두고 함께 질문하고 생각하는 장이 되기도 한다. 이런 설명만 본다면 한 도서 안에 너무 다양한 방식과 글이 담겨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놀랍게도 <1:1 다이어그램> 안에서는 이 글들이 모두 저만의 태도와 거리를 가지고 한데 모여 어떤 흐름을 이루는 느낌을 준다. 마치 저마다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존재하나 함께 불리는 현대미술처럼 말이다.



책의 제목 ‘1:1 다이어그램’은 말하자면 그 전시 도면의 축척이다. 하나의 대상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데 필요한 조건으로서의 거리. 너무 가까이 다가서면 전체를 놓칠 것이고 너무 멀리서 바라보면 세부를 놓칠 것이다. 그렇다면 한 작품을, 한 작가를, 나아가 동시대 한국 미술을 바라보는 데 적절한 거리는 어느 정도인가. ‘1:1 다이어그램’은 하나로 고정된 거리가 아닌, 그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지칭하는 말이다.


저자에게 도면은 어떤 작품이 일정 기간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물리적인 증거를 훌쩍 뛰어넘는다. “비가시적이거나 가시적인, 순간적이거나 영속적인 아이디어가 종이 형태로 물질화된” 도면은 한편으론 덧없지만 한편으론 결정적이다. (중략) 저자에게 도면은 “작가가 만들어낸 작품과 전시를 경험하는 시간을 전시가 끝난 이후에도 확보하고 또 어느 시간대 이상으로 확대하려는 의지”를 구현하는 상징적인 매체이자 도구로서 기능한다. 어쩌면 이 책 자체가 2010년대 한국 미술이라는 거대한 전시 도면의 일부라 할 것이다.


- 보도자료


"큐레이터의 도면함"


처음에는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읽다 보니 이 도서야말로 (책의 제목 의도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도면’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도면은 전시 공간을 다이어그램으로 단순히 드러내는 정보가 담긴 그림이지만(혹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그렇게 인식해왔지만), 그 도면이 대변하는 것은 결국 작품이 있는 전시 공간이다. 그곳에선 수많은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일’이라는 것은 가시화되지 않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 드러나지 않은 과정이 더 가치 있을 때가 많으며, 그것들은 우리가 현실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회같은 공간에서는 발견하지 못하는 것들이 대다수이다. 작품이 있는 공간이라서 일어나는 무수한 일들. <1:1 다이어그램>은 이미 겉으로 드러난 것에서 더 나아가 그 작품이 있던 전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신중하게 파고 들어간다. 즉 작품과 공간에 대한 사색이 일어나고 있는 도서이자 기록인 것이다.


 

이 책은 2010년대 한국 미술을 현장에서 체험하며 자신이 마주한 작품과 작가, 전시를 현재의 상황과 조건에서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저자가 맞선 “글을 쓰는 대상과 나 사이의 관계에 대한 긴장과 고민”의 결과물이다.


- 보도자료



<1:1 다이어그램>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혹은 고정관념적인) 작품과 전시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미뤄두고 독자적인 방식으로 존재하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작품마다, 전시마다의 미술 현장을 고정되지 않은 거리와 태도로 바라보고 그 현장을 기록했다. 작품, 작가, 공간, 시대, 글을 쓴 저자 그리고 어쩌면 책을 읽는 우리까지 일정한 요소와 고정된 거리로는 정의 할 수 없는 관계를 중심에 두고 이어지는 한국의 현대미술 이야기, 공존하고 있는 존재들이 이야기가 고정된 방식에서 벗어나 저마다의 이루어진 거리 속에서 완성되어 <1:1 다이어그램>에 들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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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언급해보는 리뷰의 제목은 이 글을 쓰는 내게 어울리지 않을 만큼 다소 거창하다. 가끔 ‘이유’라는 말은 이성적이고 확실한 것을 요구하는 세상에서 모든 행위에 뒤따라오기를 바라는 충족 요건인 것만 같아서 내게 너무나 버거운 말이다. 특히 당연한 것으로 드러나지 않는 존재들에게는 더욱이나 어려운 말이다.


아마 이 글을 읽고자 제목을 클릭한 여러분도 그 이유를 얻기를 바라며 눌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리뷰에서는 대신  <1:1 다이어그램>을 읽으며 얻은 생각의 몇 가지를 분리된 글로 올려놓으려 한다. 첫째, 둘째, 셋째라는 단검같이 이유가 날렵하게 정리된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두루뭉술하고 질문만 하고 훌쩍 떠나버릴지도 모르는 글들의 나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유라는 것을 알려면 그 대상의 이야기에 먼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런 제목을 달고 이런 리뷰를 쓰기로 했다.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것 같은 리뷰의 소개가 탄생하게 된 이유는 나의 작은 확신 때문이다. 아마 이번 독서를 통해 얻은 현대미술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읊다 보면 그 '이유'라는 것이 글에 조금씩 스며들어 있을 것이라는 확신. 함께 그 스며든 지점을 찾고 머물러보는 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리뷰 글이 하나의 단단한 벽이 되고 이 글을 읽어주시는 많은 분들의 시선이 이 글에 그저 향하는 것에서 벗어나 함께 마주 앉아 생각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왜 현대미술과 공존하는 걸까. 왜 과거의 예술을 지금까지 가치 있는 것으로 데려와 함께하는 걸까. 예술과 함께 공존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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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대상을 세우거나 눞히거나에 따라서

세상은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날마다 작전을 세우고 부대끼지만

다가오는 변화는 없다.

변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변화하는 것.

변하고 싶지만 변할 수 없는 것.

어디에서 어디까지 변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꼬리를 문다.


옥인 콜렉티브는 이 피켓으로

2011년 1월 밤 눈 덮인 땅을 쓸었다.


-160쪽


미술이 우리에게 주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저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는 감각은 한 예술가의 경험으로 불려와 그만의 시각 언어의 코드와 손길, 그리고 사색이 가득 담긴 창조물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앞에서 낯선 감각을 경험하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던 감각마저도 예술가의 시각 언어를 통해 새로운 것이 되어 우리에게 낯선 것이 된다.


왜 일상적인 감각이 낯선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사람은 그래야 지나치지 않고 머물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비유해보자면 우리는 바쁘게 걸어 다니면서 바람이 분다고 멈춰서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머물 수 있는 공간 속에 그 바람이 우리에게 주는 감각을 붙잡아 응축한 작품을 마주한다면, 우리는 그 순간 우리에게 바람이 어떤 감각을 주는지 생각하기 시작한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중요하듯이 예술가는 무엇보다 자신이 가진 시각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를 시각화, 감각화 하여 우리에게 보여주며 소통하는 이들이었다.


우린 모두 사람으로서 세상을 경험하고 느낀다. 그리고 예술가의 작품도 그렇게 시작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미술이 난해하다고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어려운 이야기를 하려는 것으로 시작했다는 생각은 조금 어긋난 것일지도 모른다. 미술을 말하는 언어가 어려운 이유는, 어렵게 하려는 게 아닌, 하나의 작품이 담으려는 것이 결코 가볍게만 다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무게를 존중하기 위해 이런 언어로 미술을 이야기하게 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 모든 장르의 예술이 그럴 것이고, 사람들은 유독 정적으로 응축되어 가만히 있는 현대미술에 더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천천히 그들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결국 현대미술도 우리, 즉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에 겪는 것들에 대한 경험에서 시작하는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1:1 다이어그램>과의 만남을 통해 그 지점을 얻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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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으로는 잡히지 않을, 무수히 많은 대한민국의 시공간에 영향을 주고받은 현대미술 작업들이 소장품이라는 행성 안에 살아 있다. 공공미술 기관의 승인을 통해 영원히 살아 있을 권리를 획득한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들은 수천 개의 눈알을 반짝이며 하루하루를 갱신한다. 이 살아 있음은 어디서부터 연유한 것일까, 혹시 죽지 않고 계속 살아 있는 게 지루하지는 않을까?


- 292~293쪽



“혹시 죽지 않고 계속 살아 있는 게

지루하지는 않을까?”


가벼운 듯 아닌 듯 문단 끝에 달린 질문. 작품이 지루함을 느낄까? 그렇다면 몇백 년 전에 태어난 작품이 느끼는 지루함은 어느 정도일까. 동시에 내가 그린 그림들이 떠올랐다. 나의 그림들은 하루종일 종이 사이에 갇혀있으니 지루하려나. 문득 장난스러운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질문이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해온 작품들의 존재 방식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내 작품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태어나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방식으로 보존되어야 하는가.


지금껏 상상해보지 못한 질문이었다. 작품이라고 칭해진 것은 반드시 보존되어 존재할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믿음. 작품으로서 보존된다는 건 어떤 걸까. 작품도 결국 보존되지 않으면 사라지고 변질될 것이었다. 소장품으로서 영원히 살아 있을 권리를 획득한 것이 있으면, 언젠가 보존되지 못해 사라질 작품도 있을 것이며(분명 알려지지 않은 많은 작품들이 있을 것이다), 태어나야 했지만 여건이 갖춰지지 못해 태어나지 못했을 작품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존재와 소멸의 여부와 그에 대한 방식이 작품마다 모두 다를 것이 분명했다. 작품의 존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처음으로 질문했다. 우리는 작품이란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그리고 그 일부만이 전체라고 생각하며 바라봐 온 것이 아닌가. 다시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여전히 생각보다 너무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관람객들이 간혹 간과하는 것은, 미술품이 비록 생명체가 아닌 사물이지만, 인간들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아남고 보존되는 주체라는 사실이다. ‘시민들’보다 긴 수명을 살아가게 될 소장품들은 특권적 지위에서, 때로 작품이 비치는 관람객의 눈동자를 통해 세계의 몰락과 탄생을 지켜보고 있다.


- 298~299쪽




3.


현대미술을 난해하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걸까?


요즘 나를 따라다니는 질문이다. <1:1 다이어그램>을 읽으면서도 이 질문을 안 떠올릴 수가 없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맞는 말도 아니다. 작품은 스스로 난해해지려고 한 것도 아니고 예술가가 작품을 난해하게 만들겠다고 작정한 것도(작정한 예술가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니다. 단순하게 창조된 것도 아니다. 작품의 내용을 보다 보면 어려운 언어로 느껴질 수 있으나 결국 이 내용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작품이 창조된 형상은 엄격한 방식으로 분류해보려 한다면 난해하다고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 겉모습들을 보면 정말 남들과 소통하려는 방식보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만 같다. 아마 대중은 그래서 난해하다는 특징을 현대미술에 대한 벽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그 진입할 수 없는 벽처럼 작동하는 '난해하다'는 표현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애매한 중간 지점에 있는 나는 현대미술이 난해하다는 수식어를 자주 쓰곤 하면서도 자꾸만 이 표현이 맞는지 망설이게 된 것이고. 이 리뷰를 쓰면서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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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과 물감의 운동으로 인해 어린 시절의 생경한 마주침들이 빛과 어둠처럼 모습을 바꿔가며 나타난다. 세계는 꿈틀거리며 항시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사람들은 웃고 울며 늙어가다 옆에 왔다가 멀리 떠나며 기억을 남긴다. 이것이 문성식 그림의 현실, 작가가 리얼리티를 겹쳐가는 방식이다. 낮과 밤이 서로를 스쳐가며 하루를 이루듯 풍경은 세계의 초상과 맞물리며 겹쳐진다. 이 세계의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에 작가에겐 그림이라는 공간이 필요하다.
- 114-115쪽

나의 고민은 미술을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이해해보려는 것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렇게 하면 조금 더 쉬워지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서. 우리 주변에는 완벽하게 닯은 기준을 가지고 모을 수 없는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다. 좋은 사람, 안 좋은 사람으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이유를 알 수 없이 계속 시선이 가는 사람, 정말 도통 이해를 할 수 없지만 다른 이들과는 잘 어울리는 사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래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 저런 사람 ... 등등 모두 나열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다. 나는 작품도 그렇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아무리 대다수에게 이해되지 않은 작품이더라도 분명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인연으로 다가오는 작품이 있다. 그 작품이 끌리는 이유가 분명한 사람도 있고,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지만 작품이 계속 시선에 밟히는 사람이 있다. 그 작품이 싫은 사람이 있고, 그 작품을 더 알고 싶은 사람도 있고, 이해가 되지 않지만 계속 머무르며 바라보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로 발걸음을 옮겨 버리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상황이 펼쳐진다. 모두 한 작품에서 말이다.


‘나’라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나를 좋아해 주는 이가 있으며, 이유를 모르겠으나 싫어하는 이가 있고, 나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주는 이가 있으며, 쉽게 지나가 버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처음부터 관심이 없는 이들이 있다. 현대미술 작품도 사람도 정해진 방식 없이 주변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에서 닮은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다.


작품 각각은 정말 독자적이며 자신만의 문법과 언어를 탐구하고 그만의 방식으로 완성하며 세상에 탄생하며 존재하고 있다. 사람은 어떠한가. ‘나’ 또한 나만의 방식을 찾기 위해 지금 시간을 밟아오고 있지 않은가. ‘방식’이라는 것이 하나의 방식 혹은 정해진 몇 가지의 방식으로만 정의되어야 하는가. 모든 사람을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공식이 있는가. 현대는 오히려 그런 방식을 거부하지 않았나, 제도가 가진 틀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었나. 질문을 해본다. '나'의 것, '나'의 방식을 찾아가려는 것. 현대에 공존하고 있는 작품도 사람도 그런 모습을 띠고 있었다. 공존하기에 다가갈 수 있는 코드가 분명 있지 않을까. 종종 이런 비유로 현대미술이 난해하다는 표현이 벽이 아닌 조금 더 이해되는 것으로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해보기도 했다.


우리는 여전히 ‘나’를 모르며, 내가 모르는 ‘나’를 ‘타인’이 알기도 하며, 그 ‘타인’도 자신을 모른다. 결국 존재 자체는 스스로가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라는 세계에서 정의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은 어쩌면 항상 존재해왔다. 하지만 존재는 그 미지의 상태를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이 집중할 것을, 가치를 만들어낼 것을 찾아간다. 지금의 우리는 그런 모습일 테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그래야 공존하는 모두가 여전히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며 타인의 이야기를 가치 있게 바라보는 시선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오늘날 정크 정보가 넘쳐나는 인터넷 이후를 다룬다거나, 서울의 공간들에 반응한다거나, 혹은 조각이나 회화에 대해 발언한다거나 하는 비평을 두껍게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개인’의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집중력을 살펴보는 일이다. 여전히 각자의 현실은 ‘알 수 없다’고 믿고 싶다. 모르는 것이 더 많고 누구와도 쉽게 공유되지 않는 각자의 ‘외부’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 327~328쪽






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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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리뷰였다. 특히 현대미술에 대한 도서를 읽고 리뷰를 쓸 때마다 느끼지만, 책 내용 리뷰보다는 줄줄 쏟아지는 질문이 더 많아서 글이 이상한 곳을 향해 흘러가지는 않았는지 조마조마하다(이미 많은 곳으로 흘러가 버린 것 같지만). 하지만 이 모든 생각이 리뷰 속에서 선명해질 수 있던 이유는 정말로 <1:1 다이어그램> 때문이었다. 반면 이 책의 내용을을 모두 이해했다기엔 나 스스로가 여젼히 부족한 걸 알기에 글이 더 내용보다는 질문하려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현대미술이 공존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나의 생각을 힐끔힐끔 글 사이사이에 두고 온 것 같기도 하고. 리뷰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여전히 크든 작든 현대미술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이 배회하고 있는 책과의 만남인 것 같다.


여담이지만 책을 잡자마자 앞표지를 뒤표지로 생각해서 책을 반대로 잡았던 기억이 난다. 이름이 없고 바코드가 있으면 무조건 뒷면이라는 소소한 고정관념부터 살짝 건드리고 시작하는 도서 <1:1 다이어그램>과의 만남. 책을 읽고 나서 무엇인가가 내 손에 확연하게 쥐어진 것은 아니다. 어떤 선명한 덩어리를 쥐었다기보다는 ‘나’를 중심으로 두고 일어나고, 공존하는 것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확장된 기분이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번 글을 쓰며 유독 ‘공존한다’라는 말이 많이 언급되었는데 그 말은 그만큼 내게 새로운 인상을 남긴 표현이었다. 공존한다. 공존한다는 감각은 이번 <1:1 다이어그램>을 읽는 과정 동안 얻은 것이자 동시에 한국의 현대미술을 만나며 얻은 감각이기도 했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지금을 살고 있지 않은가. 공존한다는 말이야말로 너무 가까워서 인식하지 못하는 사실인 것 같았다.


무엇보다 작품 자체를 향한 시선에서 나아가 작품 주변을 이루는 모든 것들에 대해 바라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 시대, 미술관이라는 공간, 작품을 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과 같이 작품 주변을 배회하는 것들. 단순히 미술 이야기를 하면 당연하게도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 작품과 함께 공존하는 모든 것들의 상호 작용을 <1:1 다이어그램>을 읽으며 처음으로 깊이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작품 그리고 우리가 발걸음을 옮기고 돌아다니는 미술관의 작품 전시 공간뿐만 아니라, 미술 그것도 한국의 미술 현장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 공간들과 그리고 그 공간에 있는 작품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to,


어째서 현대미술이 이런 모습이 되어야 했는가, 라고 묻는다면 이 책을 잡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은 현대미술 자체를 이해하려는 목적으로 잡기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모든 현대미술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답은 이미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답만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 사람의 이야기를 읽게 될 때, 전체 인류에 대한 답보다는 그 사람만의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는 것처럼 이 도서도 현대미술 자체를 이해하겠다는 마음보다 그 작품만의 이야기를 읽기를 기대하며 잡았으면 한다. 그런 마음을 가진다면 작품과 저자 사이에 놓인 관계에 대한 고민과 함께 바라본 시선으로 이루어진 글들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동시대, 즉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작품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현대미술의 난해함과, 미술이라는 우리와 다른 언어와 방식으로 존재하는 작품의 세계를 엿보고 싶다고 한다면, 나는 <1:1 다이어그램>은 그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도서라고 말하고 싶다. 현대미술, 그것도 한국이라는 범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술에 대한 내용을 좀 더 깊이 있는 범위에서 만나고 싶다면 <1:1 다이어그램>은 좋은 도서가 되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저항할 대상을 찾지 못할 때 현실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가지는 작가는 무엇을 하는가? 총체적 인식이 불가능한 파편과 부스러기들이 난무할 때 작가는 현실에서 무엇을 밝혀내는가? 현실은 더 이상 붙박이장이 아니며 매순간 변화한다. 스마트폰에서 유통되는 수많은 정보들,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이곳저곳 떠다니는 평평해진 정보와 가치들은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킨다. 고정된 현실 인식이 불가능한 시대에서 현실은 파편처럼 분해된다. 사회는 한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고 첨예한 정치적 문제들은 더욱더 퇴행과 모습을 반복한다. 개인이 모여 있는 형상을 한꺼번에 부르는 이름이 없다고 선언하는 것이 속 편하겠지만 사실 적절한 이름의 탐구, 즉 ‘어떤 움직임과 사태를 무어라 부를까’ 고민하는 것은 예견된 실패의 자리에 흥미로운 일을 가능하제 하는 의외의 이벤트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누군가 끈 불로 인한 어둠이든, 인공조명으로는 어찌할 바 없는 암흑의 어둠이든, 이 어둠을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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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 이 현실에서 벗어난 범위의 감각과 사색의 영역을 시각적으로 불러와서 보고 경험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저마다의 존재 방식과 시각 언어로 그것들을 기꺼이 해내고 있다. 그래서 현대미술은 우리와 존재해야 하며 지난 시대의 작품들은 지금 우리 시대의 시각 언어가 이르게 된 과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과거의 시대를 품은 시각 언어로서 계속 함께 존재해야 할 것이다.


익숙한 것에서 조금만 더 나아가보면,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할 수 있다. 정해지지 않은 미지의 범위 속에선 낯선 것을 만날 수도 있으며 난해한 것을 만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우리가 전에 생각지 못한 범위를 선물해줄지도 모른다. 일상과 그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여 온 현실에서 보거나 느끼지 못한 것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줄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난해함에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그 말이 벽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보는 것을 단번에 내 사고의 틀 안으로 맞춰서 정리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갈망한다. 꼭 작품을 완벽하게. 아니 어떤 방식으로든 완성된 어떤 감각으로 완성해야 할 것만 같다.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익숙해진 사고에서 우리는 이미 단단하게 고정된 거리를 현대미술과 유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히려 현대미술은 우리에게 미처 보지 못한 것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대미술을 두고 설렌다는 말이 어색하다면 대신 이를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온갖 덩어리가 뒤덮인 땅을 걷다가 발에 톡하고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에 고개 숙여보았을 때 유독 내 눈에 반짝이는 무엇인가와 같다고. 혹시 모른다 <1:1 다이어그램>이 그리고 거기서 만나는 현대미술에 대한 내용이, 아니 한 권의 책을 벗어나서 당신이 만날 '난해한' 작품이 당신에게 그런 반짝이는 세계를 볼 수 있는 시선을 선물해줄지.






[도서 정보]


"2010년대 한국 미술의 단면들을 담은
큐레이터의 도면함"


『1:1 다이어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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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현시원

쪽 수
336쪽

가격
17,000원

출판사
워크룸 프레스

발행
2018년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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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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