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튼, 비건: 당신은 연결되었나요? [도서]

나는 존엄하게 살고 싶다
글 입력 2019.02.2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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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비건: 당신은 연결되었나요?

나는 존엄하게 살고 싶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이 물음으로 오랫동안 괴로워했다. 주변의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삶, 하지만 그중 누구도 내가 원하는 걸 갖고 있지 않았다. 밝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만 내 몸에 묻은 불안은 쉽게 떨쳐낼 수 없었고, 태평하고 싶지만 욕심은 버려지질 않고,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싶지만 살이 닿는 순간 숨어버리고 싶었다. 모두와 함께이고 싶지만, 같은 사람이 되긴 싫다. 그렇다고 혼자 동떨어지는 건 더 싫다.


이 모순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어떤 가치가 네겐 중요하니?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니? 확신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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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아무튼, 비건] 텀블벅 홈페이지


최근 책 한 권을 읽었다. 제목은 '아무튼 비건'. 이 책을 집어 든 이유는 채식에 관심이 있어서도, 대단히 재미있어 보여서도 아니었다.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아무도 대출을 하지 않았길래, 그래서 빌렸다. 그때는 몰랐다. 이 책이 내 인생에 하나의 지표를 남기게 될 줄은.

'아무튼 비건'은 채식에 대한 이야기다. 왜 채식을 해야만 하는지. 왜 육식을 해선 안 되는지. 이런 문제에 관련해 아는 것이 전무했던 나는 텅 빈 화선지가 되어 먹물을 쭉쭉 빨아들였다. 글은 간결하고 명료했으며 저자는 단호하고 냉정했다. 하지만 때론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중요한 걸 모르고 사는, 별다른 고민 없이 오늘도 고기를 입에 넣고 있는 우리를 보면서. 글에선 앞서 깨달은 자가 보이는 안타까움이 곳곳에 묻어났다.

나는 아주 빠르게 읽어나갔다. 경험과 진심이 담긴 책은 마치 영혼이 실린 것처럼, 우리에게 말을 걸고 몸짓을 한다.  나를 보라고, 내 얘기를 들어보라고, 끝까지 읽어야만 한다고. 나는 마치 소설책을 넘기듯 몰입하여 읽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나는 채식을 하기로 결심했다.


어떤 문제를 자각했을 때 "최소한 나라도 저 문제에 기여하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 그래서 최소한 내가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공헌하는 습관만은 관두겠다고 결심한 사람들. 소중한 결심이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힘든 일은 아니다.


<아무튼, 비건> 中





Why Vegan?



돼지 살처분 현장을 떠올려보자. 깊게 파놓은 땅굴로 살아있는 돼지들이 밀어넣어진다. 구제역이 의심되는 수백만 마리의 돼지들. 그 위로 흙을 덮는다. 하지만 밤 사이 그 흙을 헤치고 올라온 돼지가 있다. 살아보겠다고 용을 써서 올라왔을 것이다. 담당 공무원은 그 돼지를 잡는다. 다시 묻어 죽인다. 그 애들이 죽은 이유는 딱 하나다. 우리가 육식을 하기 때문이다.


이는 [아무튼, 비건]의 저자 김한민이 육식을 끊게 된 계기라고 한다. 비인간적인 공장식 축산 환경과 도살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익히 들어왔을 것이다. 당장 유튜브에만 들어가도, 다시는 고기를 입에도 못 대게 만들어줄 영상들이 수두룩 빽빽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육식을 한다.


고기를 먹어줘야 건강하다는 믿음은 한국에서 거의 종교와 같다. '흰쌀밥 위에 고기 한 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믿음이다. 유럽과 미국에선 육식이 인간의 몸에 가져오는 재앙에 대해 말하는 전문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체에 필요한 단백질은 식물성 음식으로도 충분하다는 논문부터, 동물성 단백질이 암, 고혈압, 당뇨, 골다공증 등을 야기한다는 논문까지. (식물성은 오히려 위험을 감소시킨다.) 사실상 건강을 위해 '채식이냐 육식이냐'라는 비교 자체가 성립하질 않는 수준이다. 애초에 우리의 몸은 육식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


책은 동물 보호, 건강을 넘어 기후 변화, 기아 문제 등 인간이 육식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아주 쉽고 명료하게 설명한다. 한국까지 스멀스멀 바람이 닿고 있는, 채식. "왜 채식을 해야만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에게, 또 채식주의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아무튼 비건]은 아주 좋은 입문서가 되어줄 것이다.



Are you connected, too?


비건의 핵심은 거부가 아니라 연결에 있다. 비건이 되는 것은 산업과, 국가와, 영혼 없는 전문가들이 단절시킨 풍부한 관계성을, 어린아이였을 때 누구나 갖고 있던 직관적 연결 고리를, 시민들이 스스로의 깨우침과 힘으로 회복하는 하나의 사회 운동이다.


<아무튼, 비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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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있는 의식주


나는 왜 육식을 해왔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배고파서, 그냥 땡겨서, 맛있어서. 그동안 나는 음식을 먹으며 맛있다거나 배부르다는 생각만 해봤지, 식사의 품격이라든가 고귀함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먹는다는 행위 자체만이 중요할 때도 있었다. 허기를 가시게 하려고, 끼니를 때우려고.

자신의 삶을 소중히 대하는 첫걸음은 "의식 있는 의식주"에서 시작한다. 우리의 하루는 사소한 것들로 이뤄져 있다. 먹은 음식, 입은 옷, 내뱉은 말, 듣고 본 모든 것들.... 이런 것들이 모여 우리의 하루가 되고, 하루가 모여 우리의 인생이 된다. 의식주에 소홀해지면, 결국 우리의 삶도 소홀해지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먹은 음식, 대충 끼워 입은 옷, 어질러진 주변 환경. 그런 것들은 일종의 학대다. 삶을 방치하고 방임하는 것이다.

채식을 하겠다는 것은, 삶을 나 자신의 통제하에 두겠다는 선전포고와도 같다.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닌 의식을 가지고 사는 삶. 그 첫 단추는 바로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 아는 것'이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정성스럽게 준비하며, 식사를 맞이하는 것. 이 행위는 오늘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는 다짐과도 같다. 흘려보내지 않으리라. 충분히 즐기고 영위하리라.



좀처럼 이 단어를 쓰지 않지만, 비건이 되어서 '행복하다'라는 말까지 할 수 있다. 그 행복은 신체적인 차원을 넘어선다. 진실을 보고 깨닫고, 내가 추구하는 가치들과 나의 일상이 일치되어 거슬림 없이 살 수 있다는 것, 하루 세 끼에 죄의식이나 찝찝함이 없다는 것, 최소한 의식적/ 직접적으로는 타자의 고통에 기여하고 있지 않음을 아는 것, 음식에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알게 된다는 것. 이것들이 주는 매일의 보람과 기쁨, 깨끗한 느낌은 결코 작지 않다.


<아무튼, 비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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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해답의 실마리를 이 책 속에서 찾은 기분이다. 저자는 말한다. 귀찮음이 내 행동의 원인이 되게 하지 말자고. 타자와 연결되어야 한다고. 이건 비단 채식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다. 존엄하게 살기 위한,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존엄하게 살고 싶다. 나 홀로 건사하며 사는 데에 만족하고 싶지 않다. 더 많은 것들과 연결되고, 어울리며 살고 싶다. 지금의 내가 머무는 곳이 아닌, 더 높은 차원의 가치 속으로 편입되고 싶다. 본능과 자극에 끌려다니지 않는 삶. 신념과 가치관에 의해 움직이는 삶.

책을 읽은 후 약 보름간 비건적인 식습관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약속이 있던 하루를 제외하곤 모두 채식을 했다. 처음으로 요리를 했다. 요리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나 자신을 위해 식단을 궁리하고, 재료를 골라 요리하고, 예쁘게 담아내고.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작은 의식처럼 느껴졌다. 아주 소중한 것을 다루듯, 오늘의 하루를 정성스럽게 맞이하고 있다는 설렘. 그리고 나의 이 작은 변화가 더 나은 미래, 더 큰 가치에 기여하고 있다는 뿌듯함.

이 의식 있는, 食. 나는 그 속에서 건강하고, 깨끗한 행복을 발견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이제 내게 남은 일은, 수많은 '하고 싶다'들을 '해냈다'로 바꾸는 일이다. 나는 존엄하게 살고 싶다.


참으로 사람다운 삶은

그냥 존재함의 차원에 만족하는

조용한 삶이 아니다.


사람답게 사는 삶은

타자에 눈뜨고

거듭 깨어나는 삶이다.


- 레비나스






책과 함께, 아래 영상들을 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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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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