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 [도서]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리뷰
글 입력 2019.02.11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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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나는 위화 작가를 알지 못한다. <허삼관 매혈기>나 <인생> 등 소설의 제목은 들어봤지만 읽어본 적은 없다. 국문학이나 다른 외국 문학에 비해 중국 소설을 크게 즐기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제목에 이끌려 홀린 듯이 신청하고 말았다. 글쓰기의 감옥이라니, 최근의 내가 느꼈던 것을 글로 그대로 옮긴 말이었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_표1.jpg


 


글쓰기라는 ‘감옥’


 

초등학교 시절부터 난 ‘책 많이 읽는 애’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친척 집에 가면 그곳에 있는 책을 읽었고(덕분에 의도치 않은 칭찬을 많이 받았다), 학교나 시립 도서관은 최고의 놀이터였다. 그 덕인지 자연스레 쓰기도 좋아했다. 독서왕이나 백일장 상장 등은 조금 과장해서 숨 쉬듯이 받았고, 학창시절 받은 마지막 상도 고3 때 받았던 교내 논술대회 상이었다.

 

읽기와 쓰기는 이렇게 실과 바늘처럼 한 몸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있었다. 내게 도서관이 더 이상 책 읽는 곳이 아닌 공부하는 곳이 되어버린 것처럼, 정신 차려보니 읽기는 사라지고 쓰기만 남아 있었다. 자유로운 글쓰기를 하고 싶었는데, 현실은 매 수업마다 지겹도록 따라다니는 산더미 같은 리포트였다. 기본 분량이 A4 5~10매 혹은 그 이상이었기에,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트북을 켜고, 문서를 연 다음 우선 한숨을 쉰다. 하기 싫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소장한 채 꾸역꾸역 쓰기 시작한다. 어느덧 글쓰기가 ‘감옥’이 되어버린 것이다.

 

위화는 말한다. 글쓰기의 기본은 ‘독서’로부터 시작된다고. 최근 1~2년간 내가 달고 살았던 말이 번뜩 떠올랐다. “난 요즘 단어가 안 떠올라!” 단순히 독서의 부재 탓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뻔하지만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읽기를 하지 않으니 말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고, 당연히 말을 종이에 옮겨 넣은 쓰기는 속 빈 강정이다.

 

뭐, 그렇다고 수십 수백 장 적었던 리포트를 폄하하는 건 아니다.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조사해서 완성한 쓰기 중 하나일 테니. 다만 원하는 글쓰기, 자유로운 글쓰기가 아니었을 뿐이다.

 


 

글쓰기라는 ‘해방’


 


글이란 쓰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저의 글쓰기는 해방되었고, 그 뒤로는 쓰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쓸 수 있었습니다. p.43


 

어쩌면 내 글도 ‘해방’이 필요할 것이다. 자소서, 리포트 등 언제나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글만 쓰다 보니 자연스레 글쓰기는 억압되었고, 스스로 갇혀 있었다. ‘운이 좋아서’ 작가가 되었다는 위화의 말처럼, 나도 ‘운이 좋아서’ 자유가 보장되는 시대에 태어났다. 기회가 왔을 때 잡으라고들 하니까, 타고난 운도 마음껏 누려야겠다. 자유로운 글쓰기를 통해서.

 


“쓰세요.” 이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글을 쓴다는 건 인생을 경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경험하지 않고서는 인생이 채워지지 않아요. p.62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지원 당시 지원서에 적었던 말이 떠올랐다. 막힐 때마다 일단 쓰고 봤다고. 그랬더니 의외로 결과물이 괜찮게 나오기도 했다고.

 

무언가를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엄청나다. 단순히 노트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는 시간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구상, 정리, 집필 등을 모두 합하면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다. 그래도 마음대로 되지 않고, 하면서도 막히는 게 글쓰기다. 그래서 글쓰기는 인생과 닮았다. 글을 쓴다는 건 곧 인생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닐 것이다.


 

글쓰기-유형.jpg
 


위화의 이야기를 읽다 문득 거실에 있는 책장을 훑어보았다. 책의 수에 비해 칸이 모자라 몇몇 책들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배회하고 있었다. 손도 잘 닿지 않는 윗칸을 개척하고 쌓아둔 책을 정리하는 과정 속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위화가 읽었던, 그에게 가르침을 제공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 스탕달 등의 작가가 이미 내 곁에 있었던 것이다.

   

쓰기만큼 읽기도 많은 시간과 품이 드는 일이라, 한 번에 그 모두를 만나기는 힘들 것이다. ‘일단 쓰자’는 말처럼 ‘일단 읽자’를 할 뿐이다. 타인의 글을 많이 읽고 배우며, 그와 함께 내 글을 해방시켜야겠다. 감옥에서 벗어나 드넓은 들판으로 향하게끔.



 

[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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