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함께'를 이루는 마법으로 존재하는 예술

그림은 사람과 세상을 하나로 묶어준다
글 입력 2019.01.2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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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키스 해링 전시회에는 다 놓고 갈 예정이다. 어떻게 이해하고, 이렇게 느껴보면 되겠다는 지식에 기반한 가이드 같은 것 말이다. 한번 충분히 느껴보고 싶다. 가만히 바라볼 때 다가오는 것을 희미하더라도 느껴보고 싶다. 그리고 내가 모르던 키스 해링도 알고 싶다. 같은 결이지만 다른 모습을 담는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은 한 예술가를 이해할 때 가장 즐거운 지점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리고 동시에 키스 해링이 남긴 말들처럼 그의 예술을 기꺼이 즐기고 올 것이다. 두근거린다. 예전에도 큰 규모의 팝아트 전시회를 다녀왔지만, 그때와는 또 다른 새로운 시선을 정리하고 나니 이번에는 그 예술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올지 정말 기대된다. 모든 새로운 것들은 다녀오고 나서 선명해질 것이다. 프리뷰 끝에서 키스 해링 전시회를 다녀온 후 남길 나의 리뷰를 기대해본다.


[Preview] 키스 해링의 예술과 나, 그 사이에서

마지막 문단



키스 해링 전을 다녀오기 전, 프리뷰에서는 그의 예술을 마음껏 충분히 즐기겠다고 글의 끝에서 남겼었고, 전시에 입장하기 전까지도 그 마음을 다시 기억하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었다. 팝아트 예술가들 중에서 유독 즐거운 예술가. 그리고 그의 생명력 넘치는 듯한 작품들. 전시회에 입장하기 전까지도 내가 가진 키스 해링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변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었다.


전시를 보면서 내가 키스 해링에 대해 너무 표면적으로만, 내 감각에 의존한 감상으로만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막상 직접 그의 예술 세계를 대면하니 전에는 몰랐던 이미지 그 너머의 메시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드러난 표면에서는 질문이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더 들어갈 수록, 드러나지 않은 것에 시선이 쏠릴 수록 질문이 쏟아지는 법. 그래서 이전의 다짐과 달리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나의 생각하려는 습관이 튀어나온 걸까, 그러기에는 이런 나의 행동을 일으킨 주체는 다름 아닌 키스 해링의 작품들이었다.


한 존재가 세상을 살며 당연하게 취하려 하는 이성적인 논리 따위보다는 그 존재가 지닌 생명의 역동성을 경계없이 마음껏 드러내며 모여있는 키스 해링의 존재들을 보면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키스 해링의 작품 세계와

‘나’라는 세계가 대면한 사이에서

일어난 질문은 이것이었다



“함께 존재한다는 건 정말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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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함께’를 이루는 마법으로 존재하는 예술



“나는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살아간다.

나는 삶을 사랑한다.

나는 아기를, 어린아이를 사랑한다.

몇몇 사람, 대부분의 사람,

아니, 대부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키스 해링



예술은 결코 그냥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존재가 그러하듯 예술 또한 존재하는 이유와 의미가 무수하다. 그리고 그 예술을 이뤄내는 예술가들은 저마다의 시선과 감각을 통해 이어지는 시각 언어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다. 이로써 역동하는 ‘미술’의 세계 사이에서 당연한 것, 익숙한 것, 혹은 피하려는 것, 그 결과 존재하면서도 외면당하고 잊히는 것에 남다른 의미와 시선을 가지고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으로 세상에 드러내는 예술가들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 내가 새롭게 기억하게 된 키스 해링이 바로 그런 예술가였다.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의 말은 지금껏 들어온 “모든 사람”과는 다른 범위로 다가왔다. 다른 이들이 모두라 말하는 사이에서도 무의식적으로 외면당하는 존재들에게까지도 그의 예술이 맞닿아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시선은 존재가 지닌

그 자체의 것에 향한다. 



우리는 이미 너무 익숙하다. 옳고 옳지 않고를 떠나서 어떤 조건으로 존재한다는 이유로, 이렇다는 이유로, 저런 사람이라는 이유로, 심지어 이렇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한 사람이 아닌 외부에서 덧씌운 조건들로 시선을 받는 사람들과 동시에 그런 시선으로 모든 이들을 바라보는 상황에 너무 익숙하다. 이렇게 조금 대놓고 말하니 거칠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사실상 우리의 시선은 늘 그런 모습이지 않았는가. 드러났든, 은연중에 일어났든, 큰 이유든 아주 사소한 이유든 말이다. 이미 나를 포함한 “어떤 사람”은 수십 개의 정의할 수 있고도 정의 할 수 없는 조건들로 감춰져 버린 것이 지금 세상을 사는 사람들과 존재들의 모습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시선을 가지는 것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확언할 수 없는 게 현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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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예술 작품 안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키스 해링은 어쩌면 이것을 느끼거나 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선으로 세상은 정말 함께 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그리고 모두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하여. 나는 키스 해링이야 말로 존재를 뒤덮은 무수한 껍데기들을 벗겨내고 오롯이 남은 그 자체에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이해한 키스 해링은 존재의 자체를 이루는 근원인 “생명”에 주목했고 이는 이어서 존재를 바라보는 “순수한” 시선으로 이어지며, 이런 그의 시선은 아직 껍데기에 마구 뒤덮이지 않은 그러니까 생명 자체의 가치를 어른보다 더 발하고 있는 어린아이로 이어졌다. 이런 맥락에서 키스 해링이 사인으로까지 여기며 더 의미를 부여한 도상 “빛나는 아기”가 그에게 얼마나 소중한 기호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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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사랑, 죽음"



키스 해링은 그런 존재의 근원인 “생명”에서 세 가지 가치에 주목했다. “탄생, 사랑, 죽음”이 그것이다. 즐거움과 생명력이 넘치는 작품의 뒤에는 이 가치에 대한 시선이 잠재하고 있었고 생명에 주목한 그의 시선으로 완성된 작품 앞에서 우리는 남다른 끌림을 느낄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탄생, 사랑, 죽음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원초적이기도 하면서도 그래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탄생은 생명의 시작을 의미하며, 사랑은 생명이 존재함으로 할 수 있는 것이자 함께 할 수 있는 큰 힘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은 생명의 끝이라고만 할 수 있으나 이조차도 생명이 존재해야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이 세 단어는 늘 어떤 방식으로든지 항상 우리에게 어떤 무게와 의미로 다가오는 것들이며,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내용과 가치이기도 하다 . 그렇다면 왜 키스 해링의 작품들이 우리에게 전혀 어렵지 않게 다가오는지에 대해서 말할 때, 그냥 단순하고 쉬운 도상들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에서 더 나아가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성립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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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머물러서 이 단어들을 생각해보면 존재와 그 자체가 지닌 가치인 탄생, 사랑, 죽음이 이루는 것은 바로 ‘삶’이란 것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예술가가 예술로서 세상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 그에겐 많은 이들에게 잊힌 ‘삶’이 지닌 그 자체의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는 정말 예술이 삶이고, 삶이 예술인 예술가였다.



“예술은 삶, 삶은 곧 예술이다”

Art is Life. Life is 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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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수단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아는 예술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내가 아는 삶이란 그런 것이다”


- 키스 해링, 1978년 10월 14일



그의 작품 속, 사람 형상을 한 존재들은 아무런 조건을 달고 있지 않다. 생김새, 나이, 성별, 국가, 인종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 그들은 충분하게 존재하며, 우리에게도 어떤 느낌을 안겨준다. 사실 키스 해링의 작품 속 사람 형상들이 어떤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지 살펴보고 이성적으로 이해하려는 것조차 무의미한 것 같다. 팔과 다리가 어떻게 있는지, 몸에 구멍은 왜 뚫려서 서로 꼬여있는지, 어떤 이유로 손가락 형상으로 매달려 움직이고 있는지, 작품 속 그들에게도 서로 그런 것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한 것 같다. 그들도 사실 키스 해링의 손길로 태어나서 충분히 존재하고 있을 뿐이고 그저 존재하는 것 자체로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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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작품 속 존재들의 모습은 오히려 스스로가 아닌 외부적인 것으로 정의를 당하고 그렇게 시선을 주고 받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듯했다. 뭔가 그래서 나는 작품 속 그들이 더 자유로워 보였고, 서로 어떤 모습이든 정말 함께 즐거워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저마다의 몸짓은 해방감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자유와 즐거움은 늘 우리가 꿈꾸고 끌리는 단어들이었다. 그렇다면 키스 해링의 작품은 모두가 망설임보다는 끌릴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많은 질문이 나를 툭 치고 지나갔다. 작품 속 그들은 서로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시선을 가지고 무수한 사람들을 마주하고 있을까, ‘시선’이라는 것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것은 어떻게 서로와 서로가 무수히 덧대어진 채 우리를 감싸고 있는 것일까, 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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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해링은 작품 속 존재와 그들의 “함께”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모두를 위한 작품을 위해 움직였다. 결국 모든 사람들은 생명을 지니고 있으며 결국 같은 가치를 삶 속에 품고 있다면, 몇 개의 껍데기를 겉에 드러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잊혀서는 안될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들이 사회에 내는 목소리에 기꺼이 함께했다. 동성애자, 인종 차별, 에이즈, 폭력이라는 사회 이슈에 기꺼이 예술가로서 함께했다. 다른 이들은 쉽사리 함께하지 못하는 것에 그는 예술가로서 함께할 뿐만 아니라 작품으로 그 메시지들을 담으며 다른 사람들까지도 불러모았다. 사회에 쉽게 함께하지 못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키스 해링의 작품을 통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전해진 것이다. 그의 예술 세계는 그렇게 “함께”이자 “모두”를 이뤄내고 있었다. 하나로 묶일 수 있는 세상, 그의 예술은 그 가치를 위해 사람들 사이에서 빛을 발했다.



“그림은 사람과 세상을 하나로 묶어준다.

그림은 마법처럼 존재한다.”


-키스 해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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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모든 내용을 담지는 않았지만, 이번 키스 해링의 전시회는 여러 이유로 나에게 크게 와닿았던 시간이었다. 작품 자체가 전해준 내용뿐 만 아니라 어떤 지점에서 한 예술가를 이해하는 결을 지어가는 과정 자체를 가졌다는 점에서도. 그의 작품 세계를 직접 만나기 전에는 그저 단순하고 유쾌하며 즐거운 이미지를 그리던 예술가로 기억했던 키스 해링,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는 그가 작품을 통해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영향을 주었는지,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예술가의 작품은 마법처럼 존재한다는 그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모두를 사랑하고 함께하고자 했던 그의 마음이 응축된 작품들, 그런 마법은 지금의 우리와도 함께해야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의 10년이라는 짧은 시간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프리뷰에서 남긴 마지막 문단은 정말 막연하기만 한 글이었는데 지금은 묵직한 덩어리를 한 품 가득 얻어온 기분이다. 한 층 깊이 들어간 키스 해링의 시선이 지닌 결을 나름대로 이해해보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세상과 결부 지어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것은 다른 전시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었고 예술가의 목소리와 작품이 온전한 하나로서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래서 이후에도 아마 키스 해링은 내게 여러 의미로 기억에 남을 예술가가 될 것 같다.



“나는 많은 이들이

경험하고 탐구할 수 있는 예술 작품,

주어진 작품에 대해

개인별로 수많은 해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예술 작품을 만들고 싶다.


어떤 작품도 정해진 의미는 없다.

작품의 현실, 의미, 개념을 창조하는 것은

바로 관객이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생각들을 하나로 모으는

중개자일 뿐이다”


- 키스 해링



매번 작품 앞에서, 그리고 글에서 스스로 이해한 것을 자신 있게 이야기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리뷰는 조금 더 확신을 가지고 써 내려갔다. 더 정확히는 키스 해링이 자신의 예술에 대해 남긴 말에 힘을 얻어 써 내려 갔다. 이 리뷰에 남겨진 키스 해링의 작품들과 함께한 나의 생각의 결은, 키스 해링의 언어가 지지해주고 있다. 다르게 보면 나는 그의 작품 앞에서 나의 해석을 발언하고 의미를 창조하며 이를 나눌 기회를 선물로 받은 것이고, 그것으로써 나 또한 그의 예술에 망설임 없이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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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다른 이들의 삶에 감동을 주고

그들의 삶에 살아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나는 죽어도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살아있을 테니까’


- 키스해링



키스 해링이 남긴 말은 지금까지도 증명되고 있다. 그의 예술은 여전히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있으며, 많은 사람이 그의 예술에 기꺼이 찾아가 자기 삶의 일부에 키스 해링을 남기고 있다. 그의 말대로 키스 해링은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살아있으며, 아마 키스 해링도 자신이 꿈꾸던 “모두”가 그렇게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그가 그런 꿈을 꾸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마음 속 어딘가에서 계속 맴돈다. 그의 작품 속 존재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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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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