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내 역할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전시]

모두를 위한 아티스트, 키스 해링.
글 입력 2019.01.07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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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홀로 유럽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이십 대 초반 동양인 여성이 혼자 유럽을 배회하고 있으면 하루에 적어도 다섯 명 이상이 말을 걸어온다. 그 중엔 한국인도 꽤 많다. 혼자 온 사람끼리 적적하지 않게 같이 구경도 하고 밥도 먹자는 것이다. 전혀 모르는 두 사람이 같이 여행을 하려면 타협이 필요하다.


나는 그 지역의 유명한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꼭 방문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그들은 대부분 ‘꼭 거기 가야 해? 더 재밌는 게 이렇게 많은데!’라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식사를 제외하고는 거의 혼자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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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도 소위 ‘핫플’에 가서 ‘힙한’사람들을 만나고 ‘인생샷’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동시에, 햇빛이 살짝 비치는 미술관에서 고흐를 만나고 렘브란트를 느끼는 것도 좋아한다.


내가 하루 다섯 시간씩 미술관에서 살았던 건 엘리트주의에 빠진 교양인이라서가 아니다. 미술사 다큐멘터리에 빠지고 미술사학 서적들을 읽었던 학창시절의 영향이다. 또한, 대학에 와서도 인문학을 전공해 문화학, 문화사, 서양미술사 등을 끊임없이 공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내 또래들은 나와 같은 학창시절을 보냈을 경우가 드물다. 내 가장 친한 친구들만 해도 그렇다. 모든 것을 터놓고 얘기하는 친구들이지만, 함께 렘브란트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건 상상조차 해본 적도 없다. 어느 날 내가 “이거 좀 에곤 실레 같다.”라고 말한다면, ‘무슨 헛소리냐’고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혼자 조용히 책을 읽고, 인터넷으로 그 느낌을 공유할 때가 많다. 굳이 내 취향을 강요하고 싶지 않고, 그런 엘리트주의를 혐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키스 해링은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을 나처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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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예술이란 무엇일까? 그는 거듭된 고민 끝에 ‘모두를 위한 예술’을 고안해냈다. 단순하고 명쾌한 굵은 선, 무겁지만 밝은 메시지, 즉흥적이고 경계심 없는 그의 예술은 그렇게 ‘모두를 위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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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지하철 광고판에 그의 첫 예술이 시작되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렸다. 자유롭고 거침없는 그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항상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 단순한 선과 색채, 가볍고 경쾌한 그림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예술’이었다. 그의 짧고 굵은 생애 동안 끊임없이 탐구했던 ‘모두를 위한 예술’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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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술가로 타고났고, 따라서 예술가답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그 책임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무척 애를 썼다.

다른 예술가들의 삶을 연구하고, 세상을 연구하면서 배웠다.

내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나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살면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위해 그림을 그릴 생각이다.

그림은 사람과 세상을 하나로 묶어준다.

그림은 마법처럼 존재한다.


- 키스 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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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7일까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키스 해링의 전시가 열린다. 그의 초기 작품부터 타계 직전까지의 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대규모 전시다. 어쩌면 이번엔 친구와 ‘키스 해링의 빛나는 아기’에 대해 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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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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