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참호 속에서 되살아난 그리스 고전, 연극 벙커트릴로지 - 아가멤논 [공연예술]

글 입력 2019.01.0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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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2월, 지난 2016년 초연에 이어 연극 벙커 트릴로지가 돌아왔다.


벙커 트릴로지는 관객과 무대의 거리가 한 뼘도 되지 않는 초소형 연극으로, 고전을 각색한 세 개의 독립적인 에피소드 아가멤논, 모르가나, 맥베스로 이루어진 삼부작이다. 그 중 에피소드 아가멤논은 아이퀼로스의 희곡 <아가멤논>을 모티브로 하는데, 1차 대전을 배경으로 독일인 남성 알베르트와 영국인 여성 크리스틴의 사랑을 담은, 삼부작 가운데 유일하게 멜로 드라마를 다룬 작품이다. 그러나 모티브로 하고 있는 작품이 비극인 만큼, 그들 사이의 결말은 행복으로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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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나 여성 참정권을 외치던 자주적인 영국인 여성 크리스틴은 독일인 알베르트와 사랑에 빠진다. 크리스틴은 장총을 들어 직접 사냥에 나가고, 여성 참정권을 주장하는 등 여성의 전형에서 벗어나는 인물이다. 아버지의 품을 벗어나 고향을 떠나온 크리스틴은 알베르트와 결혼하고, 그의 아이를 임신함으로써 가부장제 사회에 편입된다. 잠깐의 행복한 시간이 지나고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알베르트는 임신한 아내를 두고 독일군으로 자원입대하고, 크리스틴은 영국인 여성 크리스틴이 아닌, 독일군 저격수의 알베르트의 아내로 살며 그의 가정을 꾸린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어느 순간부터 크리스틴의 이름은 지워지고 없다. 극은 솜 강 전투가 한창이던 1916년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름이 지워진 크리스틴의 모습은 현대의 기혼 여성들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남자의 아내로, 자식의 엄마로, 살다 보면 자신의 이름마저 잊게 되는 여성들.


여성을 가부장제로 편입시키는 것이 남편의 역할이었다면 여성을 가부장제 속에 묶어두는 것은 자식의 역할이다. 남성의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여성은 가부장제 속에서 철저하게 고립된다. 전쟁 중인 독일 땅 한복판에서 영국인 여성 크리스틴은 스스로의 정체성마저 숨긴 채 그렇게 자신의 존재가 지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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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멤논>의 원전에서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이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첫째 딸 이피게네이아를 아르테미스의 재물로 바친 것을 알고 복수를 다짐한다. 패전국의 노예로 끌려와 아가멤논의 왕비로 평생을 살았지만, 자식의 죽음 앞에서 아가멤논의 세계에 반기를 들게 된 것이다. 맥락은 다르지만 크리스틴 역시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되는데, 영국군의 총에 동생을 잃은 독일 청년이 난입해 알베르트와 크리스틴의 아이를 살해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크리스틴은 남성 세계가 정의한 어머니의 지위를 잃게 되면서 가부장제로부터의 해방을 이루게 된다. 자신을 가부장제 속에 묶어두는 인질이 사라짐으로써, 여성은 비로소 그 편협한 세계를 깨고 나갈 반동을 얻는다. 알베르트의 부탁으로 크리스틴을 보살피는 알베르트의 먼 친척 요한은 크리스틴을 사랑하게 되고, 집에 틀어박혀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그에게 작전명 아가멤논을 제안한다.

 

아가멤논이 트로이전쟁에서 승전하고 돌아올 때,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딸의 복수를 위해 정부 아이기스토스와 손을 잡고 목욕 중이던 아가멤논을 살해했다. 아가멤논이 알베르트, 크리스틴이 클리타임네스트라, 그리고 요한이 아이기스토스의 역을 맡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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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크리스틴과 전쟁에 몰두하며 승승장구하는 알베르트. 크리스틴과 알베르트가 시공간이 다른 탁자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하는 장면은 기묘하다. 식사라는 행위는 인간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행위로, 혹자는 식사를 한다는 것은 전쟁 속에서 상실된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본다. 이때 크리스틴은 요한이 건넨 사과 반쪽을, 알베르트는 연락병이 포상으로 전달한 고기와 술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사과는 성경 속에서 선악을 구별하게 하는 금단의 열매로 나타난다. 이브와 아담은 선악과를 먹는 원죄를 짓고 하나님의 정원에서 쫓겨난다. 그들이 선악과를 먹고 얻은 것은 자신을 바로 볼 줄 아는 능력이다. 벗은 몸에 대한 수치, 하나님이 주신 태초의 상태에 대한 반발이다. 인간을 중심으로 성경을 다소 불경하게 비틀어본다면, 선악과는 하나님으로 나타나는 지배계층의 부조리함을 깨닫는 열쇠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피지배계층의 깨달음이란 언제나 죄악시되기 마련이다.


동일선상에서, 크리스틴이 사과를 먹어치우면서 남성세계에 대해 원죄를 짓게 된다면 너무 과장된 해석일까. 가부장제에서 여성에게 금지하는 시선; 인간으로서의 여성, 주체적인 자아를 회복하려는 욕망이 사과를 먹는 행위로 나타났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 끝에 여자는 집안의 주축인 남자를 살해함으로써 남성이 설계한 세계를 무너뜨린다.


반면 남편 알베르트가 먹는 것은 술과 고기다. 이것들은 타락한 인간의 음식이다. 살아 숨쉬는 이를 살해해 그 살을 씹어 삼키는 죄의식은 술이 주는 쾌락에 무뎌지고 만다. 전쟁이란 이런 것이다. 도덕이나 양심은 먼지와 함께 날아가버리고, 생명의 고귀함 따위는 쓰러진 병사의 눈에서 생기가 얼마나 빠르게 스러지는지를 목도한 순간 설득력을 잃는다. 군인으로 태어나고 만들어졌다며 당당하게 입대한 알베르트가 처음 사람을 죽이고 나서 얻은 공포는 고기를 씹으면서 삼켜진다. 그렇게 그의 인간성은 파괴되고 만다. 자아를 잃은 크리스틴이 식사라는 행위로 다시 자아를 회복한다면, 짐승처럼 고기를 물어뜯는 알베르트의 식사는 반대로 그가 인간성을 상실했음을, 인간으로서의 알베르트가 전쟁 속에서 이미 학살당했음을 보여주는 장치와도 같다.

 

포상 휴가를 얻어 돌아온 알베르트는 이미 크리스틴이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다. 사냥개의 얼굴. 그는 자신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전쟁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알베르트가 전쟁터에 익숙해질 무렵부터, 그는 더 이상 크리스틴이 보내오는 편지를 읽지 않는다. 알베르트가 남긴 가정에서 자아를 잃고 하루 하루 죽어가던 크리스틴은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다. 작전명 아가멤논, 요한과 꾸민 계략을 적어 그에게 부쳤던 것이다. 왜 편지를 읽지 않았냐고 울부짖는 크리스틴에게, 알베르트는 죽어가면서 대답한다. 수십 명을 죽일 수는 있어도, 편지 한 장 뜯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크리스틴은 그를 가장 인간적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사랑, 이타심, 동정, 연민, 두려움, 죄의식의 감정을 생생하게 일깨우는 사람. 모순적이게도 전쟁터는 인간임을 포기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공간이다. 크리스틴의 편지를 통해 참호 바깥의 세계와 연결되는 것은 사냥개 알베르트에게는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살해당하고 만다. 편지를 읽지 않음으로써, 인간성을 파괴 당한 죄를 짓고 죽는다.



나는 내가 사냥개인 줄 알았는데,

사슴이었나봐.



그가 죽어가면서 남긴 한 마디는 전쟁의 본질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전쟁이라는 사냥터에서, 사냥감을 쫓는 개는 없다. 오로지 사슴들만이 한데 뒤엉켜 '전쟁'이라는 것에 쫓기면서 서로의 살을 물어뜯고 죽어갈 뿐이다.

 

아가멤논은 죽고,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았다. 크리스틴은 그의 눈을 감겨주고 떠난다. 영국군으로 자원입대 해, 독일군의 손에 목숨을 잃은 오빠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아가멤논이 사랑했던 전쟁을 끝내버리기 위해. 그러나 남겨진 역사를 통해 관객들은 쓰라린 절망감을 안고 돌아가게 된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전쟁터에서, 공장에서, 가정에서 삶을 바친 여자들의 이름은 가장 먼저 지워졌기 때문에. 크리스틴의 이름은 그 여자들의 이름과 함께 지워졌을 것을 알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독일군 저격수였던 남편 알베르트를 살해함으로써 크리스틴은 영국군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역사에 따르면 솜 강 전투가 있고 2년 뒤 1918년 11월, 1차 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그러나 역사의 다음 장을 슬쩍 들춰주면서, 연극은 일말의 카타르시스도 허용하지 않는다. 알베르트 덕에 목숨을 건진,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열렬한 애국심과 순혈주의 사상을 키워나가며 살아남은 독일인 소년병, 전쟁이 낳은 괴물, 아돌프 히틀러 무대 위에 남겨놓은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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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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