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포선라이즈>: 대화, 그리고 대화가 잘통하는 너 [영화]

글 입력 2019.01.0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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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말을 참 재미있게 하는 친구가 있었다. 같은 이야기도 그 친구의 입에서 나오면 더욱 맛깔 나는 터라 그 친구와의 대화는 항상 즐거웠다. 때때로 그 친구가 부럽기도 했는데 나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말재주를 가진 부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편도 아닌 데다가 개인적인 일을 꺼내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 난 자연스럽게 대화할 때 주로 듣는 쪽을 맡게 되었다.

내가 대화에서 ‘듣는 쪽’에 서게 된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바로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입 밖에 나온 말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은 나를 곧잘 우울하게 만들었다. 왜,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분위기에 휩쓸려서 한없이 가볍고, 맘에도 없는 말을 지껄일 때가. 하루를 곱씹을 때 그런 대화가 떠오르는 날이면, 나는 항상 나를 자책하였다. 그 실없는 말로 내가 정의될까 두려웠고, 그런 말을 한 나 자신이 못 견디게 싫었다. 그래서 조금 비겁하지만, 듣는 쪽을 택했다. 내가 했던 말을 취소할 수 없다면 취소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나으니까.
 
이렇게 대화에 소극적인 가치관을 가진 나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대화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대화가 항상 나에게 부정적으로만 다가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는 양면이 존재하듯, 대화도 때로는 나를 우울하게 하지만, 때로는 나를 기쁘게 한다. 특히 ‘대화의 주파수’가 잘 맞는 사람과의 대화는 언제나 유쾌하다. 생각이 잘 통하는 타인과 생각을 공유하고 그를 공감받는 것은 정말 신기하고도 기분 좋은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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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대화의 주파수’가 잘 맞는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이다. 영화의 주인공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줄리 델피)의 인연은 기차 안에서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된다. 기차 안에서 대화를 하며 서로 대화가 잘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된 두 남녀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내려 하루를 함께하기로 한다. 영화의 제목이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인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들이 함께하는 시간은 다음 날 해가 뜨기 전까지이므로. 단 하루, 우연한 만남, 여행, 낯설지만 무언가 통하는 남녀, 청춘. 모두 이 영화를 나타내는 말이다. 낭만적이다. 누구나 한 번쯤을 꿈꿔 볼 만큼. 이것만으로도 영화는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지만 이 영화가 가진 진정한 무기는 따로 있다. 바로 ‘대화’이다.

제시와 셀린이 서로 호감을 느낀 계기가 ‘대화’인 만큼 이들은 영화 내내 참 많은 대화를 나눈다. 길을 걸을 때도, 버스에 타서도, 게임을 할 때도 이들은 대화한다. 영화의 모든 장소가 대화의 장소이다. 이토록 많은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대화의 주제도 다양하다. 어릴 때 일어난 일부터 자기 전에 할법한 공상까지. 이들은 자신 안에 있는 다양한 생각, 경험 그리고 가치관을 나눈다. 대화의 상대방이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라고 한다면 허무맹랑한 공상 정도로 치부될 이야기도 상대방의 경청과 공감이 함께 하니 하나의 의미 있는 대화가 된다. 이들의 대화가 꾸밈없고 솔직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에게 귀 기울여 줄 거라 믿음이 가는 상대가 있다면 나 자신을 보여주는 것에 용기를 얻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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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와 셀린의 이런 진솔하고 깊이 있는 대화는 그들 서로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는 이도 매혹한다. 관객은 철학적이고 때로는 엉뚱하기도 한 대화 속에서 제시와 셀린이라는 인물을 이해하고, 그들의 사랑에 공감하며 설렘과 애틋함을 느끼게 된다. 사실 이들의 사랑은 자칫하면 많은 이들이 공감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이 사랑에 빠지고 그 마음을 키워나간 것은 전부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이지 않은가. 그러나 영화에서 이들의 사랑은 철없는 시절의 불같은 사랑같지 않고 오히려 더없이 진중해보인다. 그 이유는 점차 커지는 이들의 사랑이 억지스럽게 반복되는 우연에 의해서가 아닌 대화를 통한 정서적인 교류로 이루어짐에 있다.

*

<비포 선라이즈>에는 명장면보다 명대사가 많다는 말이 있을 만큼(실제로 정말 그렇다) 좋은 대사들이 많다. 그중 내가 공감이 갔던 대사와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옮겨보고자 한다. 제시와 셀린이라면 나의 이 뚱딴지같은 생각도 경청해줬으리라 믿으면서.



셀린: 난 나 자신이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노파라고 생각돼. 내 인생은 그 노파의 기억 같은 거지.


제시: 정말 이상해. 난 늘 내가 13살짜리 꼬마라고 생각하거든. 어떻게 해야 어른이 되는지 잘 모르는 꼬마 말이야. 그래서 인생을 사는 척하면서 어른이 되어야 할 때를 대비해 메모를 해두는 거지.



나도 성인이 된 후부터 줄곧 난 아직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법적으로 성인이 되면 당연히 어른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난 여전히 유치했고 미성숙했다. 재밌는 건, 내 주위의 많은 사람도 이렇게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른’이라는 것에 너무 많은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어른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거움이 두려워 회피하는 것일까? 이 질문의 답은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스스로 깨달을 것이다. 아직도 내가 어린아이 같은 난 아직 그 답을 알 길이 없다.


 
셀린: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모든 일이 좀 더 사랑받기 위한 거 아냐?

제시: 모르겠어. 난 가끔 꿈을 꿔.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는 꿈 말이야. 가끔은 가능하게 느껴져. 반면 어떤 때는... 어리석게 느껴지지. 그게 내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속박되는 게 두렵다거나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는 존재여서가 아니야. 그건 자신 있거든. 다만 솔직한 심정으로 고백하자면, 난 내가 정말 잘하는 게 뭔지 아는 상태에서 죽길 원하는 것 같아. 그냥 좋은 가장이 되는 것보다 내가 남들보다 월등히 잘하는 게 있다는 걸 알고 싶은 거지.

셀린: 어떤 할아버지 밑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그분 말이, 자신은 평생 일이나 출세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살았대. 그런데 52세가 되고 보니 문득 자신은 아무것도 베풀지 않고 살았다는 게 느껴진 거야. 그분 인생에 타인을 위한 시간은 없었어. 울먹거리면서 그 얘길 하시더라.

있잖아,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너나 나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어. 이 세상에 마술이란 게 있다면 그건 상대를 이해하고 함께 나누려는 시도 안에 존재할 거야. 그 시도가 성공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알게 뭐야 안 그래? 대답은 그런 시도 안에 존재해.



나를 사랑하는 것과 타인을 사랑하는 것.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택해야 할까? 누군가가 나에게 이게 정답이라고 속삭여주면 좋겠지만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나중에 덜 후회할 만한 길을 선택하는 것뿐이다. 이처럼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의 선택은 언제나 힘들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타인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보다는 나를 사랑하는 것에 조금 더 무게중심을 두고 있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사는 거란 믿음을 마음 한편에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러나 셀린의 말을 듣고 나니 그 마음이 조금은 흔들렸다. 나 또한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건 명백한 사실이니까. 상대를 이해하는 기적 같은 순간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문제는 셀린의 말처럼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데 있지만 말이다.

*

개봉한 지 24년이 흐른 영화지만, 촌스럽지 않았다. 지금 보아도 설레고 낭만적이었으며 아름다웠다. 이 영화가 긴 세월에도 빛바래지 않은 이유에는 제시와 셀린의 아름다운 대화가 있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이들의 깊이 있는 고민은 지금 공감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이 영화를 10년 후에도 보아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좋은 시는 수십 년이 흘러도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처럼.


[정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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