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직장 내 나만의 방이 있다면?, 한 시간만 그 방에 [문학]

글 입력 2018.12.31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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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내에 나만 보이고, 나만 들어갈 수 있는 방이 있다. 그 방은 너무도 이상향에 가까운 공간이라서,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한다. 게다가 그 방에 들어가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기고, 일의 능률이 놀랍도록 올라간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벽을 보고 멍하니 서 있는 것처럼 이상하게 보인다. 회사 내에 그런 방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은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무시할 것인가?



나에게만 존재하는 그 방


‘한 시간만 그 방에’ 이 작품은 바로 이런 방의 존재를 두고 개인과 집단의 설전이 벌어지는 내용이다. 관공서로 직장을 이전한 30대 남성이자 작품의 화자인 ‘비에른’은 독특한 인물로 취급된다. 모든 시간을 완벽하게 쪼개서 일과표를 세우고, 그에 맞게 행동하려는 편집증적 성향이 강한 인물이다. 직장 내에서도 55분 노동, 5분 휴식이라는 자기만의 규칙을 세우고 이에 따라 행동한다. 또한, 자신이 타인보다 항상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이고 있어, 직장 동료들을 멸시하고 불필요하게 어울리는 것을 피한다.

그런데 어느 날, 비에른은 어느 한 방에 이끌리듯이 들어가게 된다. 그 방은 모든 게 완벽하게 정렬되어있고 정리되어있어 비에른의 취향을 저격했다. 심지어 비에른은 그 방에서 묘한 자신감을 얻는다. 놀랍도록 생각이 차분해지고, 몸의 긴장이 편안하게 풀어지며, 그 방안에서의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은 평소의 모습보다 훨씬 잘생겨 보이기까지 한 것이다. 완벽한 휴식과 재충전을 얻은 경험으로, 그 이후 비에른은 자신의 쉬는 시간을 그 방에서 보내기로 한다.


한 시간만 그 방에 가 있어야겠다. 나는 복도로 몰래 빠져나가 커다란 재활용 폐지 수거함을 지나쳐 밖에 붙어있는 스위치를 켜고 일곱 번째로 그 방의 문을 열었다. 깨끗하고 하얀 벽이 등에 느껴졌다. 벽지에 손바닥을 대자 부드러운 질감이 느껴졌다. 서류 캐비닛에 머리를 기댔을 때 쇠의 감촉이 느껴졌다. 잠시 후에 나는 실내가 더 밝아진 것을 느꼈다.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상태가 완전히 회복된 것을 확인했다. 내 모습은 과분할 정도로 맑아졌다.

요나스 칼손, 「한시간만 그방에」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비에른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방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에른이 그저 벽 앞에 서서 멍하니 벽만 바라보는 것처럼 보였다. 동료들은 그런 비에른을 보고 무서워하며, 업무에 지장을 준다며 상사에게 항의를 한다. 결국 상사의 지시로 비에른은 정신과 상담까지 받고 다시는 그 방에 들어가지 않는 약속을 하지만 몰래 그 방에 다시 들어가고야 만다. 남들이 다 퇴근하고 난 후, 밤에 그 방에 들어가 업무를 처리하면서 놀라운 생산성을 발휘한다. 그러나 동료에게 들켜버리고, 여전히 그 방의 존재를 용납 못하는 동료들과 또다시 부딪치게 된다.


유일하게 비에른만 들어갈 수 있는 방이 있다는 게 기분 나빠요.


요나스 칼손, 「한시간만 그방에」





개인의 절규, 혹은 모두의 절규


그렇다면 그 방은 진짜로 존재하는 걸까?
 
방이 진짜로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그것은 알 수 없다. 작품은 화자인 비에른조차 받아들이기 힘든 자기중심적 인물로 그림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비에른을 완벽하게 신뢰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그러나 작품이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개인만이 가지고 있는 그 방은 결코 집단 내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행동을 해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시각이 짙게 깔려있는 조직 내에서 독특한 개인인 비에른은 철저히 소외당하고 배척된다는 것이다.

비에른이 그 방에 들어가서 아무리 생산적인 결과를 내도 말이다. 비에른은 이에 끝까지 절규한다. 그 방은 존재한다고! 한 시간만이라도 그 방에 머물게 해달라고 말이다. 놀라운 점은 어느새 그런 비에른을 옹호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별개의 인물로 취급되던 비에른의 절규가, 집단의 억압과 강요에 시달리는 현대인이 해방을 갈구하는 절규로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작품을 읽고 나면 남는 찝찝함이 있다. 그것은 비에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도 비에른이 묘사하는 직장동료들에게서도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는 점. 그 애매모호함. 개인으로서 자유와 존중을 보장받기를 원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개인이 비에른과 같이 그런다면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러므로 이 작품은 두 개의 질문을 던진다고 생각한다.

"만약 비에른이 들어간 방처럼, 회사 내에 나만 보이는 그런 방이 있다면 들어갈 것인가 안 들어갈 것인가?"

"만약 회사 내에 비에른과 같은 개인이 있으면 받아들일 수 있는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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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량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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