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사는 사람들] 그림 앞에 가슴이 뛰는 순간

#3 폴 고갱, '두 번 다시는' 그리고 새뮤얼 코톨드
글 입력 2018.12.15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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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품을 보는 것을 참 좋아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작품을 보며 정서적 교감을 느껴본 적은 손에 꼽는다. 모든 미술 작품을 느껴야 한다고, 혹은 느낄 수 있다고 믿지도 않을뿐더러 보는 이에게 정서적인 즐거움과 감흥을 주는 작품만이 좋은 작품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미술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전시를 다니고, 수많은 작품의 이름을 외우고 배우는 과정에서, 내 마음을 ‘덜컹’하게 만드는 작품을 마주칠 때가 분명 있다. 그런 경우가 흔치 않음을 알기에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바로 작년 여름, 한 갤러리에서 어떤 작품을 보자마자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그 앞에 서있던 기억이 있다. 내게 잊지 못할 경험을 안겨준 그 갤러리는 바로 런던의 ‘코톨드 갤러리(Courtauld Gallery)’였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형 갤러리, 코톨드 갤러리


 

꽤 오래 전부터 영국에 가고 싶어 했다. 당시 유행했던 영국 드라마의 영향이기도 했고, 영국 특유의 분위기와 문화, 영어발음도 무척 좋아했지만 영국에 대해 가장 기대했던 것은 그 나라가 가진 예술적 유산이었다. 유럽에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같은 쟁쟁한 예술의 나라들이 있지만 영국은 특히 국가적 차원에서 예술 산업에 공을 많이 들인 나라다. 대영박물관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미술관과 박물관이 대중에게 무료로 개방되어있고, ‘쿨 브리타니아’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젊은 예술인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패션, 디자인, 현대미술에 관한 여러 제도적 지원을 시도했다. 전세계의 예술 유학생들이 해마다 런던을 찾는 이유다. 그리고 어린 나의 눈에도 그 모습이 참 멋져보였던 것 같다. 예술을 일상 속에서 받아들이고,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 곳, 영국.

 

그래서 드디어 여행하게 된 영국 런던에서 마치 갈증을 해소하듯 여러 미술관을 돌아다녔다. 대영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테이트 브리튼, 테이트 모던 등… 지금 돌이켜보아도 참 좋았던, 그리운 시간이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곳 하나만을 꼽자면 역시, 코톨드 갤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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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tlondon.com

 


코톨드 갤러리는 ‘서머셋 하우스’라는 큰 귀족 저택에 부속 기관처럼 있는 작은 갤러리로,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입구를 찾기도 힘들 뿐 아니라 무료로 개방된 영국의 많은 미술관과는 달리 입장료를 받기 때문에 일반 여행객들은 잘 찾아가지 않는 곳이다(내가 방문했던 당시 국제학생증을 제시하니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갤러리야말로 미술과 친하지 않은 일반 여행객들에게 권하고 싶은 곳인데, 그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숙하게 느끼는 19세기 말 ~ 20세기 초 ‘인상주의’ 화파의 수많은 걸작이 한 자리에 모인 곳이기 때문이다. 마네, 모네, 세잔, 피카소, 고흐, 고갱, 르누아르, 쇠라 등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화가들의 작품이,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의 갤러리 안에 그야말로 알차게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새뮤얼 코톨드, 인상주의를 알아본 또 한 명의 컬렉터



마네의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고흐의 <귀를 자른 자화상>과 같은 유명한 작품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걸려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인(심지어 관람객도 별로 없다!) 이 엄청난 갤러리의 컬렉션을 만든 사람은 바로 새뮤얼 코톨드(Samuel Courtauld, 1876-1947). 영국의 섬유산업으로 부를 축적한 재력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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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uel Courtauld
   


여담이지만, 바로 전 글에서 소개했던 러시아의 컬렉터 세르게이 슈킨 또한 아버지의 섬유 사업을 물려받아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묘하게 겹친다. 슈킨 역시 일찍이 프랑스 모던아트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적극적인 후원과 수집을 통해 대단한 컬렉션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다른 사업에 비해 ‘섬유’ 사업은 확실히 다양한 직물의 색감과 패턴을 감별해내는 미감이 필요한 만큼, 슈킨과 코톨드가 당시 누구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모던 아트를 알아보는 선구적인 미감을 갖추게 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아무튼 영국에서 온 이 코톨드라는 컬렉터 역시 1917년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열린 파리 인상파 화가전을 보고 그들의 진가를 단번에 알아본 모양이다. 이후 몇 년에 걸쳐, 프랑스 현지는 물론이고 영국에서도 거의 인정받지 못했던 화가들의 작품을 수집하였고, 몇 명의 지인들의 컬렉션을 합쳐 갤러리와 미술 연구소를 세웠다. 이 미술 연구소는 현재 코톨드 인스티튜트라는 미술교육전문기관이 되어, 영국 내에서 미술사 분야로는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두 번 다시는(Nevermore)>


 

다시 1년 전의 영국 이야기로 돌아가서, 황홀한 기분으로 코톨드 갤러리의 걸작들을 눈에 담고 있던 나는, 인상주의 컬렉션으로 가득 차 있던 어느 방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그 방에는 마네와 세잔의 유명한 작품들도 많았는데 이전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던 폴 고갱(1848-1903)의 <두 번 다시는(Nevermore)>이라는 작품이 왜 그렇게 마음에 걸렸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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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Gauguin, Nevermore, 1897 ⓒCourtauld Institute of Art

 


고갱의 유명한 타히티 작품 중 하나인 이 그림 속에는, 이국적인 분위기의 방 안에 누드의 여인이 길게 누워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여타의 다른 누드화와는 달리 그 여인은 어쩐지 불편하고 불안해 보인다. 얼굴에 팔을 괴고, 고심과 짜증이 섞인 듯한 시선을 보내는 여인은 배경에 앉아있는 까마귀를 경계하는 것 같기도, 여인의 뒤에 있는 두 명의 또 다른 여인들을 의식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저 여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궁금함에 앞서 그림을 보자마자 놀랄 수밖에 없었던 건 그 전날 밤의 나도 바로 저 모습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오랫동안 바라왔던 런던 여행의 꿈을 드디어 이루었는데도 느껴지는 허망함, 외로움…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여행을 온다고 모든 것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았다. 오히려 한국에 있을 때 억누르고 있던 고민들이 여행지에서의 여유 사이로 불쑥 삐져나와 당혹스럽게 할 뿐.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경험을 해도 채워지지 않은 어떤 것이 있었다. 많이 우울했고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웠다. 그래서 그날 밤 딱 이 그림 속 여인처럼 누워 눈물을 줄줄 흘렸더란다.

 

고갱도 이 그림을 그릴 때 나와 비슷한 감정이었을까? 35세에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화가의 길로 돌아섰을 만큼, 문명 세계에 환멸을 느끼고 가족과 친구들을 다 뒤로 한 채 태평양의 타히티섬으로 왔을 만큼 용기 있던 그도 허망함에 휩싸일 때가 있었겠지. 세계로부터 멀어지는 듯한 고립감, 지상 낙원이라 불리는 낯선 섬에서도 채워지지 못한 갈망, 잊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국적이고 화려한 문양이 아름답지만 동시에 무겁고 음울한 그림 속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한 귀퉁이에 적힌 작품의 제목마저도, “두 번 다시는(Nevermore).” 무엇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걸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걸까, 다시는 이러한 생을 살지 않겠다는 걸까.


작품 앞에 서서 그 속의 모든 것을 오랜 시간 바라보았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작품과, 그 안의 작가와 교감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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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Gauguin, Self Portrait with Portrait of Emile Boernard (Les Miserables), 1888


 




코톨드 갤러리 속 보석 같은 작품들을 수집한 새뮤얼 코톨드는 컬렉팅에 있어서 전문가의 자문을 구한 적이 없다. 그가 자문을 구한 사람은 사랑하는 아내 엘리자베스와 딸 시드니뿐이었고, 오로지 자신이 보았을 때 마음을 움직인 그림을 걸어두고 오랜 시간 보면서 작품과 진정한 교감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들면 그제서야 구입을 결정했다고 한다. 이성적이고 냉철한 분석보다 개인의 선호와 감정적 교감을 중시한 그의 컬렉팅 방식이 꼭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개인적 선호의 결과가 결국 역사가 선호하는 컬렉션이 되었음에 감탄할 뿐). 그러나 코톨드 갤러리의 작품을 보면, 그의 로맨틱한 컬렉팅 방식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하였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게 된다. 그가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고갱의 <두 번 다시는>을 구입하기로 결정하였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 그림 앞에 처음 섰던 나와 비슷한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감히 추측해본다.

 

한때 왕성했던 그의 미술품 수집에 대한 열정도 그의 재정적 파산과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멈추어 버렸다. 작품이 얼마나 명작이고 어떤 역사적 가치가 있는지를 떠올리기 전에 마음의 소리에 먼저 기울인 사람인데, 그 소리를 함께 나눌 동반자가 없다면 모든 것이 다 무슨 소용이었겠는가? 그의 컬렉팅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낭만적이라 그저 굴복할 수밖에 없게 한다. 도심 속에 조용히 빛나며 잔잔한 감동을 주는 코톨드 갤러리가 주인을 그대로 빼닮은 것 같다. 그곳에 가면 당신도 어떤 작품 속에서 작가를, 수집가를, 그리고 자신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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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o Cruciatti

 


참고

전원경, <런던 미술관 산책>, 시공아트, 2010

Wikipedia - Samuel Courtauld

시사IN 허태우 - '간판 없는 박물관의 '위엄'' 201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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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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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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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하는스누피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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