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런 부조리함이라니, 연극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

글 입력 2018.11.06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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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IEW ***
연극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


포스터.jpg
 

<시놉시스>

1980년, 소시민 김두관에게
'용감한 시민상'을 주기 위해서
억울하게 강도 누명을 쓰게 된 이오구.

이오구는 출소 후
자신이 '쪼다'가 아님을 증명받기 위해서
김두관을 찾아가 딱 한 번 만
칼로 배를 찌르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얼떨결에 용감한 시민상을 받은 김두관은 고민 끝에
이오구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는데...




딜레마


프리뷰에서도 언급했듯이 연극 <어쩌나, 어쩌다, 어쩌나>는 딜레마 속에 빠진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그래서일까, 인물들이 처한 상황의 모순과 갈등에 주의를 기울여 연극을 관람했던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극은 제목처럼 어쩌나! 어쩌다!를 연발하게 하는 딜레마의 연속이었다.

용감한 시민을 기리는 '용감한 시민상'은 정부에 의해 조작된다. 만들어진 강도(이오구)와 만들어진 영웅(김두관)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곳에 용기는 없었다. 이용당하는 줄 모르고 이용당한 소시민들이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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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980년, 영화를 보러 간 김두관은 칼을 들고 채권자를 위협하던 이오구의 몸에 어쩌다 쓰러지게 되면서 본의 아니게 강도를 제압하게 된다. 김두관의 협조로 경찰서에서는 사건을 마무리하고 이오구는 훈방조치로 풀려나게 된다. 그런데 이 때, 사태가 급변한다. 정부의 정치적 홍보와 국민 선동을 위해 김두관이 '용감한 시민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이오구는 감옥에 가게 된다. 이때부터 두 인물의 인생이 엮이며 본격적으로 꼬이기 시작한다.

정부의 조작은 '용감한 시민상'이 끝이 아니었다. 정부는 소시민들 몇명을 추려 조작 교육을 한 뒤 한 달 간격으로 '효도왕', '노래왕', '미소왕', '저축왕'등 온갖 보여주기식 인물을 창조해낸다. 독재정권은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일시적인 인물들을 자꾸만 등장시킨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물들은 잠시 등장하고 소모품처럼 사라진다.

연극이 그리는 1980년은 국가가 국민을 수단으로 사용했을 때의 결과이다. 국민에게 주권이 없던 사회에서 개인은 권력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독재자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다. 원치않는 '용감한 시민상'을 받은 김두관도, 감옥에 가게 된 이오구도 모두 권력의 희생양이다.

출소한 이오구는 김두관을 만나 딱 한 번 만 칼로 배를 찌르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오구가 김두관을 찌르고 싶어하는 이유는 옥살이에 대한 원망이 아니다. 자신이 국가에 의해 조종당한 '쪼다'로 살지 않기 위해 한번만 찌르겠다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이 요청에 김두관은 진지하게 고민한다. 처음에는 '뭐 저런 부탁을 저렇게 까지 고민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배우의 연기력 덕분일까. 김두관의 고민에 나도 괜시리 신중해졌다.

결국 김두관은 이오구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피를 보고 놀란 이오구는 상처입은 김두관을 두고 도망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은 귀순용사와 자수간첩 연기를 한다. 국가에 의해 또 한번 개인이 이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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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0년이 흐르고 아주 많이 변한 세상에서 김두관과 이오구는 또 다시 만난다. 꽃과 칼을 들고 김두관을 찾아온 이오구는 30년 전과 비슷한 부탁을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기가 찌르게 해달라는 부탁이 아닌, 자신을 찔러달라는 부탁이다.


국가에 의해 찍힌 낙인이 많은 이오구는 30년 동안 평탄한 삶을 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오구가 김두관에게 자신을 찔러 달라고 하는 장면은 마치 그동안 자신을 억압한 국가에 대한 외침을 김두관에게 소리치는 듯했다. 3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지만 국가는 아직도 개인에게 거대하고 위협적인 존재이다.

하지만 2016년의 국가는 1980년의 국가와는 다르다. 개인들의 합은 국가보다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무력한 줄만 알았던 개개인이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모인다. 이 때 모인 개인들은 30년 전 조작된 '용감한 시민'과는 다르다. 모두 용감하며, 모두 용감하기 때문에 이는 지도자에게 위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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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관과 이오구가 촛불을 들자 무대의 불이 꺼지고 이야기가 끝났다. 두 인물이 변화한 시대 속에서 위로를 받았을까? 라는 생각이 계속 머리에서 맴돌았다. 긴 세월 그들이 받은 상처는 치유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변화한 시대 속에서 촛불을 들었던 둘의 모습은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도 생각된다.

<어쩌다, 어쩌나, 어쩌다>는 자칫 무겁게만 다뤄질 수도 있는 소재를 블랙코미디 장르를 통해 유쾌하게 그려냈다. 하지만 너무 가볍기만 하지도 않다. 무대의 불이 꺼졌을 때 우리는 이 시대를 바르게 이끌어나가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해줬던 연극 <어쩌다, 어쩌나, 어쩌다>의 여운이 오랫동안 이어질 것 같다.


[정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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