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꿈을 버리는 연습

지금과 마주하다
글 입력 2018.11.01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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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습관처럼 생각난 것은 공연예술이었다.

 

고등학교 때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내 취미는 줄곧 공연 관람이었다. 서먹한 대학 동기들도 나를 뮤지컬 좋아하는 애로 알고 있는 경우가 허다했고, 4달간의 아트인사이트도 돌아보니 공연 예술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막상 ‘공연예술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으니 문득 의문이 생겼다. 나는 진짜 공연 예술을 좋아하는가.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30살 넘는 배우들이 15살 역할을 하며 복잡하고 귀찮은 문제들이 없는 꿈과 희망의 세계를 노래하는데, 그 누가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웃었지만 나는 왠지 정곡을 찔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공연을 공연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서 사랑해 온 것은 아닐까, 귀찮고 복잡한 현실 속에서 티켓값만 지불하면 언제나 빠질 수 있는 달콤한 환상을 사랑한 것은 아니었을까.


언제나 나는 내 주관 없이 살아왔다. 남의 눈치를 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아무것도 혼자 결정하지 못했다. 제일 무서웠던 것은 남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과 인정 같은 것들이었다. 남들의 시선에서 얻는 얄팍한 우월감은 중독성이 강했다. 한 번 그것들에 길들고 나니, 남들의 칭찬과 인정 없이는 나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의심해야만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항상 남들이 좋아하고 부러워하며 ‘너 정말 대단하다’ 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으로만 열심히 나아갔다. 그때는 그게 안전한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남들의 인정과 칭찬으로 이루어진 부실한 절벽 위를 걸어오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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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의 시선으로 이루어진 절벽 위를 걷는 삶은 언제나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다. 인정과 칭찬에서 얻는 만족감은 분명 컸지만, 나는 그 순간 이후의 삶을 내가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은 채로 내린 결정을 책임지는 삶은 언제나 힘들고 의미 없었다. 그때부터 ‘꿈을 찾아야 한다’ 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던 것 같다. 삶의 이유를 현재에 둘 수 없으니 미래에 두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도피적인 결정을 진로 시간에 몇 번 들어보았던 불안하고 무책임한 단어로 어설프지만 예쁘장하게 포장했다.


그 과정에서 접한 공연 예술 분야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무대 위에는 다른 세상이 있는 것처럼 보였고, 나는 그 세상을 향해 손을 뻗고 싶었다. 지루하고 무의미한 일상에서 벗어나 멋지고 화려한 공연 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멋진 세계에서 살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었다. 그러다 보니 현재의 보잘것없는 일상은 별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라는 말은 기약 없었고, 일상은 계속되었다.

 



지금과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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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예술인이 되겠다는 꿈은 진로를 고민한 결과라기보다는 종교적인 환상에 가까웠다. 주관 없는 선택에 관한 책임을 지는 삶으로부터 도피하고 삶의 의미를 되찾기 위한, 말 그대로 부질없는 꿈. 공연 예술 분야에 대한 동경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환상은 계속되는 일상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이었다.

 

아트인사이트는 내가 이러한 환상과 동경에서 벗어나 현재의 일상을 똑바로 바라보는 연습의 과정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물론 공연 예술 분야에 대한 동경이 일상을 괴롭게 만들었다고 해서, 공연을 보며 느꼈던 가슴 벅찬 감정들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빈약한 환상보다는 그 설렘과 감동, 슬픔, 행복감 같은 순간의 감정들이 훨씬 의미 있는 것이었다.

 

아트인사이트에 일주일에 한 번씩 글을 기고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모든 글에 최선을 다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공연 예술에 대해 다양한 글을 쓰면서 공연이 주는 감정이나 의미를 깊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많아졌고 글감을 얻기 위해 스쳐 가는 생각을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다. 예전 같았으면 흘려보냈을 공상이나 사소한 감정 같은 것들이 메모장을 가득 메웠다. 언젠가 이루어질 꿈을 상상하는 시간을 줄이고 일상에서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에 집중하는 시간을 늘리면서, 일상 속에서 에너지를 얻고 현재의 감정을 바라보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공연 예술은 언젠가 이루어내야 할 꿈일 때보다는 지금 당장 끝까지 파고들어 깊게 음미할 때 훨씬 빛난다는 점을 깨달았다.


어쩌면 나는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삶’에 너무 집착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지금 당장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 집중하지 못했다. 공연이 주는 감동과 설렘, 슬픔과 같은 수많은 일상의 감정과 생각 같은 것들. 꿈은 기약 없고 일상은 계속된다. 타인의 시선이나 미래의 실체 없는 희망 때문에 살아가기에는 그 뒤에 이어지는 삶이, 책임이 너무 무겁다. 내게 4달간의 아트인사이트는, 꿈을 버리고 현재를 얻는 연습의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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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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