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브람스를 좋아해요. [도서]

글 입력 2018.10.2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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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몽의 사랑



'시몽’은 ‘폴’에게 헌신적이다. 로제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다는 것을 목격하고도 절대 폴에게 말하지 않는다. (물론 폴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그 사실을 알고 폴이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한다. 자기 입을 통해 그녀에게 나쁜 소식이 전해지는 일 같은 건 결코 없을 거라고 했다.


폴은 시몽과 폴의 14살이라는 나이 차이에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애써 모른 척하고, 시몽은 그런 폴을 알아차린다. 나이 차이로 인한 주변의 시선에 무너지는 폴을 기꺼이 이해할 수 있고, 또 그쯤은 충분히 극복할 만큼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이것이 시몽의 사랑이다. 여자와의 관계에서 책임감을 가지는 것에 겁을 먹고 두려움을 가졌던 시몽이, 폴을 만나고서는 달라진다. 시몽은 자신이 사랑하는 폴에 헌신적이고 무한한 사랑을 주지만, 절대 자신을 잃지 않는다. 폴의 마음속에 집요하게 매달려 있는, 뽑아버릴 수 없는 ‘로제’의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그런 마음을 가진 폴 그 ‘자체’를 사랑했다. 자신을 밀어내는 폴을 떠나보냈을 때도 “당신이 저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해서 제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열심히 폴을 사랑하면서 최선을 다했고,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과연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진다. 특히 이 작품 속 시몽처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지는 더더욱 그렇다. 내가 있는 그 자체로의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렇게 열렬히 사랑하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세상에서 몇이나 되는 사람들이 저런 사랑을 하고 있을까. 사랑에는 정답이 없음에도, 나는 감히 ‘시몽’의 사랑을 정답이라 하고 싶다. 누군가의 사랑을 부정할 자격도, 그럴 생각도 없지만 그래도 나는 시몽의 것과 같은 사랑을 꿈꾸며 살고 싶다. 그게 받는 것이든 주는 것이든 말이다.




폴의 사랑



처음에는 폴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좋은’ 남자와 ‘나쁜’ 남자가 명확한 둘의 사이에서 왜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렸는지 말이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폴의 선택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 폴이 미웠는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폴은 ‘로제’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고, 나와 로제는 ‘우리’이고, 절대 시몽과는 ‘우리’가 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녀의 이 독백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폴은 로제를 사랑한 것이 맞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사랑이라는 것이 안정과 익숙함이기 때문에, 다른 여자들을 품에 안는 로제를 뻔히 알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옆으로 돌아올 그를 기다리는 것이 중요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으면서 ‘행복’해지는 것보다 말이다. 폴은 ‘시몽이 언제까지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그 흔한 고민도 하지 않았다. 10년 후의 자신은 로제의 옆이거나 아니면 혼자일 거라고 진작 답을 내렸기 때문이다.


책의 시작과 끝에는 폴의 첫 연인이었던 ‘마르크’와 폴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20살의 폴은 지금과 달랐다. 그 시절의 그녀는 행복을 찾아 나섰다. 그런 그녀는 마르크를 사랑하지만, 어느덧 그의 얼굴에서 사랑의 표정 대신 조롱이 자리하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마르크와의 관계가 끝이 난 그녀는 그 이후 자신의 삶이 일하는 여성의 생활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물질적인 어려움, 그리고 침묵. 그녀의 삶은 송두리째 달라졌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폴은 마르크와 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아이를 하나 낳아서 자기 삶의 의미를 찾았을 것이라는 이 말이, 시몽에게는 곧 이별을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사랑에는 분명 그 관계가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있다. 당연히 사랑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하지만 그 ‘안정감’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폴이 마르크와 헤어진 것을 후회한 이유는, 혼자 남겨졌을 때 세상을 살아갈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일을 해야만 했고 그런 여자에게 세상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잃은 폴은, 다시는 관계를 잃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시몽 대신 ‘로제’를 택했다. 그런 자신을 보면서 폴은 늙어간다고 말한다.



그녀는 좀 더 울고 싶기도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싶기도 했다. 익숙한 그의 체취와 담배 냄새를 들이마시자 구원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울러 길을 잃은 기분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폴’의 사랑을 한다. 내 주위의 사람 중에도 지금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사랑의 어떤 가치보다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도 물론 나름의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폴의 사랑에 비관적인 이유는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지켜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여성이 사랑에 있어서 이러한 안정과 멀어지기를 바란다. 대개 이렇듯 상황이 주는 안정감은 내가 상대에게 종속되어 있으므로 받는 ‘안정’이 대부분이다. 나를 편안하게 해주지만, 언젠가는 내가 벗어 던질 수 없는 족쇄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족쇄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결국, 또 함께 저녁을 먹지 못 할 거 같다는 로제의 전화처럼, 그 족쇄는 쉽게 변하지도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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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고 물었지만 사실 브람스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그것은 시몽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폴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이 소설의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소설의 제목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아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여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폴이, 그리고 많은 여자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어려움 없이 대답했으면 좋겠다.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가지고 살면서 이 정도 질문은 문제도 아닌 것처럼 쉽게 대답했으면 한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을 헷갈리지 않고,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나’를 절대 잃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다.





[조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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