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06. '일반적인 것'에 대한 고찰

글 입력 2018.10.28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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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수많은 단어 중에 간혹 성별이 포함되는 경우가 있다. 남성과 여성. 하지만 이러한 이분법적인 구분은 차별을 간과한 폭력일 수 있다.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은 태어날 때 지닌 생물학적 성체성과 본인이 생각하는 성별의 일치 여부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시스젠더(Cisgender)는 생물학적 정체성과 본인이 생각하는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는 경우를, 트랜스젠더는(Transgender)는 생물학적 정체성과 본인이 생각하는 성별 정체성이 반대인 경우를 뜻한다. 성지향 정체성(Sexual Identity)은 자신이 이끌리는 성 또는 젠더이다. 성적 지향의 분류에는 크게 반대 성에 이끌리는 이성애자, 같은 성에 이끌리는 동성애자 그 외에 양성애자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차별을 논하기 위해서는 용어를 정확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용어를 정리했으니 오늘의 사각지대 주제로 들어가 보자. 앞에서 언급한 용어들로 인해 눈치를 챘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사각지대는 영화 <탠저린>과 <어바웃 레이>를 통해 트랜스젠더가 살아가는 사회를 바라보고자 한다.




일반적인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다, 영화 <탠저린>



'탠저린(일명 감귤)'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이는 곧 트랜스젠더를 비유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성전환 수술을 하고 가발을 쓴 배우들의 모습을 통해 제목은 트랜스젠더의 생물학적 정체성과 본인이 생각하는 성별 정체성이 반대인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이는 나의 편견이었다. 션 베이커 감독이 제목에 대해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해 이 영화는 아이폰으로 찍었다. 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 촬영 톤에서 오렌지 사탕 느낌이 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닌, 과일과 색깔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느낌과 감각을 나타냈다는 감독의 말에 내가 오히려 확대하여 해석해 그들을 바라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탠저린은 그저 '귤' 그 자체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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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성 소수자, 특히 트랜스젠더가 살아가는 현실을 가벼운 톤으로 보여준다. 대부분의 장면을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사실 영화가 말하는 본질, 즉 트랜스젠더가 살아가는 세상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 특히 중심 인물인 신디와 알렉산드라는 TWOC(유색인종의 트랜스젠더 여성) 성 노동자들로, 영화 속에서 코믹하게 비추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가장 배척당하는 집단이며 차별과 억압의 대상이다. 마지막까지 모르는 사람에게 오줌 세례를 받으며 배척당하는 신디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은 그들이 비참한 현실을 살아간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영화는 차별을 가하는 대상에게 한 방을 날리지도, 신디와 알렉산드라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는다. 단지 그들이 서로를 의지하는 모습을 뒤로 한 채 막을 내려버릴 뿐이다. 이처럼 <탠저린>도 여느 영화처럼 해결점이 보이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주는 의미는 생각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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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많이 본 편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봤던 트랜스젠더를 소재로 한 영화는 그들의 고난과 역경, 사회의 차별적인 시선에 저항하는 스토리로 이뤄졌다. 대부분 사회로부터 격리되거나 자신의 성을 지키기 위한 대상으로 소비된 것이다. 하지만 영화 <탠저린>은 그들이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 그저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을 '보통'의 사람들로 만들어준다. 더 나아가 단순 성적 요소에 초점을 맞췄던 기존 트랜스젠더 영화에서 벗어나 그들의 '일반적인' 삶을 관객이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영화는 그들의 삶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을 통해 그들도 일반적인 삶을 살아감을 사회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영화 <어바웃 레이> 그리고 '일반적인 것'에 대한 정의



<탠저린>이 트랜스젠더의 일반적인 삶을 그대로 보여줬다면, 영화 <어바웃 레이>는 '일반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생물학적 성은 여성이지만 성별 정체성은 남성인 레이와 그를 둘러싼 그의 가족에 대해서 다룬다. 싱글맘 매기, 레즈비언 외할머니 도도, 그리고 외할머니의 여자친구로 이뤄진 이 가정은 '일반적인 가정'과는 거리가 멀어 보여 막장 드라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반적이지 않은' 가정이라는 기대감 때문일까, 영화를 보면서 레이가 성전환 수술을 받는 과정은 평탄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레이가 '진정한 자신'을 찾는 과정은 쉽지 않다. 평생을 레즈비언의 권리를 위해 싸워온 할머니 도도는 누구보다도 레이를 잘 이해해줄 것만 같지만 '그냥 레즈비언으로 살면 안 되는 거냐'며 본질을 흐리는 질문을 한다. 무조건 내 편일 것 같은 엄마 매기 또한 레이가 자랑스럽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막상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오자 동의서에 서명하는 것을 망설인다. 이처럼 영화는 일반적인 틀에 갇혀있다고 이해가 어려운 것도, 일반적인 틀에서 벗어나 있다고 이해가 쉬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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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일반적인 것'이란 무엇일까. 일반적인 것이란 남들과 달라 보이지 않는 것, 즉 튀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것이라는 자체가 틀린 것이 아닐까. 레이는 일반적인 삶을 살고자 수술을 선택했지만 그 과정에서부터 일반적인 삶에서 벗어났고, 과정이 끝났다고 하더라도 그는 사회가 정한 일반적인 틀에 들어가기 어려울 것이다. 아직까지 시스젠더이자 이성애자인 사람이 일반적인 세상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것에 대한 정의의 기준이 개인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나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것을 깨는 것은 어렵다.


최근 내가 속한 학과 영상 학회에서 후배들이 만든 영상을 봤는데, 이는 성 소수자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다큐멘터리였다. '친구가 당신에게 커밍아웃을 한다면?', '형제자매 중 한 명이 당신에게 커밍아웃을 한다면?', '자녀가 당신에게 커밍아웃을 한다면?' 등의 질문이 주를 이뤘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상을 보고 뒤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성 소수자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영상이 던지는 질문들에 단 하나도 확신을 갖고 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의 기준은 강력하다. 그리고 이 기준을 깨려고 하는 개인은 한없이 나약하다. 그런 점에서 레이의 엄마가 겪었던 혼란과 갈등을 마냥 비난할 수 없다. 아직도 사회는 소수자들에게 각박해, 그들에게 일반적인 것을 알아서 쟁취하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는 엄마 매기가 중심을 잡았을 때 결국 레이의 문제도 해결된다. 이를 통해 영화는 쟁취하는 과정에서 함께 해주고, 대상을 믿어주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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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는 머리는 알아도 몸은 실천할 수 없는 형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다큐의 질문들에 대해 하나도 답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사회의 틀을 깰 용기도 부족한 내가 과연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들자고 외칠 자격이 있을까. 잘 모르겠다. 단지 가상의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답을 할 수 없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 이 주제에 대해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 사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도 어쭙잖게 사회가 제시한 일반적인 틀에 맞는 정체성을 지녔다고 일반적인 틀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꼴이 될까 겁이 난다.


먼저 사회의 틀을 깨지는 못해도 당신이 사회의 틀에 부딪히고 있을 때 옆에서 함께 소리 내고 싶다. 그 과정에서 다큐의 질문에 확신을 가지고 답을 하고, '일반적인 것'에 대한 정의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용기를 배워나갈 수 있길 바란다.



[조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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