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허구라는 그릇에 담긴 '진짜'를 찾는 과정

아들러와 깁 @예술공간 서울
글 입력 2018.10.2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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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라는 그릇에 담긴 '진짜'를 찾는 과정"


애들러와 깁
- 우린 그들에게 일어난 가장 아름다운 사건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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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내용에 앞서


와인색 배경에 한 여인의 얼굴과 해골 등 사진으로 콜라주 형식의 오묘한 분위기의 포스터.

이 공연은 preview가 없었던 공연이었기에 공연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적었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서 오늘날의 예술과 소비, 그리고 욕망의 관계를 질문한다는 카피 문구는 난해함을 부추길 뿐이었다.


우리는 진짜를 욕망합니다.
연극이 진짜를 가지는 방식은,
최선을 다해 진짜를 지우고
그 자리에 가짜를 입히는 것입니다.

그런 걸까요?
그것이 연극이 진실을 이야기하는 유일한 방식일까요?
<애들러와 깁>은 이 질문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이 작품의 종착지입니다.

- 손원정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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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사실적 형식에서 사실적 형식으로


연극 <애들러와 깁>은 자신의 예술작품이 자본주의 세계의 소모품이 되는 것을 거부한 예술가와 그 예술가를 '연기'함으로써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유하려 하는 한 영화배우의 만남과 충돌을 다룬다. 주인공 '루이즈 메인'은 오래전부터 '애들러'를 흠모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삶을 영화화한 작품에 주연으로 캐스팅되자 애들러를 완벽하게 연기하기를 갈망한다.

이것이 그녀가 예술을, 그리고 한 사람을 소유하는 방식이다. 루이즈는 '완벽한' 자넷 애들러가 되기 위해, 그녀를 소유하기 위해, 기꺼이 진실을 파헤친다. 진실을 찾으러 애들러의 은둔지를 찾아가 그녀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간 루이즈는 점차 욕망의 괴물이 돼가고, 그 욕망에 가까워질수록 루이즈는 진짜 애들러의 실체와 점점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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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광해, 명성황후, 주몽



'만들어진 진짜'에 관하여


드라마와 연극은 거짓이 현실이라고 이야기하며 모든 거짓을 허용하는 공간이다. 배우들은 자신의 얼굴에 자신이 맡은 역할을 덧대며 자신의 몸짓, 말투 하나하나를 바꿔나간다. 예를 들어 우리는 역사적 인물, 예를 들어 광해군 하면 이병헌, 명성황후에는 이미연, 주몽 하면 송일국이 으레 떠오른다. 실존 인물을 대체하는 배우의 강렬한 이미지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이들처럼 루이즈 역시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애들러가 되고 싶어 한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똑같이 되고 싶어 한 루이즈는 그 사랑이라는 욕망이 파괴적으로 분출된, 그저 '사랑에 빠진 여인'이다. 극 중 첫 등장부터 마지막까지 그녀는 일관된 모습이었다. 자신이 다른 사람이라고 설득하기 위해 점차 비윤리적인 극단은 서슴없이 자행하는 루이즈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은 긍정에서 부정으로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학생 시절의 루이즈는 발표에서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였던 애들러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루이즈가 애들러를 사랑했다는 점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학생 시절의 루이즈와 배우가 된 루이즈의 모습이 순차적으로, 병행적으로 보이는 것이 일치하면서도 일치하지 않는 듯한 그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병렬적 연출이 연극을 더 극적으로 들어주는 장치라고 생각했다.
   

이제 사람들이 자넷 애들러를 떠올리면
나를 생각하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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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ssert: Harmony in Red, 1908 by Henri Matisse


관객은 연극을 볼 때 우리는 여전히 작품이 현실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재현하는가를 평가의 근거로 삼는 경향을 강하게 보인다. 또한 예술가들은 진짜를 작품 안으로 가져와 진짜처럼 보이게 하였을 때 비로소 관객이 더욱 빠져들며 자신의 작품은 더 이상 가짜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둘은 마치 끊임없이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과 집착에 빠진 자본주의자와 겹쳐 보이곤 한다. 이들에게 이 연극의 작가였던 '팀 크라우치 Tim Crouch'의 이야기를 빌려 마티스의 유명한 일화를 들려주고 싶다.

어느 날, 마티스의 작업실을 방문한 어떤 여인이 <붉은 조화> 속의 여인을 가리키며 "어머나! 이 여인의 팔이 너무 길군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마티스는 "잘못 보셨습니다. 이것은 여인이 아니라 그림일 뿐입니다"라며 그림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현실과 똑같아야 할 필요는 없음을 부연 설명했다.

결국 루이즈는 극의 마지막에 여우주연상을 받는다. 그녀는 완벽한 애들러를 연기하였음을 상으로서 인정받는다. 감격하여 울먹이는 루이즈를 바라보며 관객들은 어떤 상상을 하였을까. 그 노력에 대한 박수? 혹은 비난? 어쨌거나 그녀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 애들러로서 기억 되는 것에 성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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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스러운 소녀


공연 중, 한 등장인물 '소녀'에 대해서 극이 끝날 때 까지도 의문스러움을 명쾌하게 해결할 수 없었다. 무대 위 흙에 온갖 소품이자 오브제를 가져다 두고는 별 다른 대사도 없이, 표정도 없이, 특별한 행동도 없이 그녀는 무대 위를 부유한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고. 방관자가 되었다가 애들러가 되었다가.. 그녀는 누구인 것을까. 그녀는 무엇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였을까. 결론을 찾을 수 없었다.

스크린으로는 다큐멘터리, 혹은 영화를 보여주었다. 결국 루이즈가 촬영에 성공한 자신의 작품인 것이 아니었을까. 여우주연상까지 받으며 애들러를 완벽하게 소화한 루이즈의 다큐멘터리 역시 가장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가 아닌가. 진짜가 되고 싶어 하였으면서도 결국 가짜인 작품을 촬영하게 되는 배우의 삶, 루이즈의 삶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그녀는 그 상으로 정말 만족하였을까.


[장혜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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