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서재에 초대 합니다 [도서]

글 입력 2018.10.14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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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이곳은 에디터 배지원의 서재입니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천천히 둘러보세요.


재생하면서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모두 보시기엔 시간이 걸릴 테니, 몇 칸만 보여드릴게요.


서재모음.jpg
실제 서가배열과는 무관합니다.


정리가 덜 되어서 부끄럽네요. 최근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책들을 많이 뺐는데도 언제나 서가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몇 년 전에는 이야기 책, 문학전집, 역사책 등이 100여권 정도 있었는데 공간의 문제로 전부 기부했어요. 좋은 분들이 많이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읽고 싶은 책이 많아 보통은 도서관과 전자책을 이용하는 편이에요. 종이책을 더 선호하지만 일단 사람 먼저 살고 봐야 하니까요. 당신은 도서관에서만 책을 읽는 타입인가요? 아니면 꼭 사서 읽는 타입? 언젠가 같이 만나서 책에 대한 감상을 나눠 봐도 재밌을 것 같네요.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구경해봅시다.


1번 -> 상상이 가득한 세상
2번 -> 나의 초창기 관심사들
3번 -> 어렵고도 흥미로운
4번 -> 잡서라고 부르지 마세요

원하시는 곳으로 이동해주세요




1번
만화, 소설

이전 오피니언을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저는 만화와 장르소설을 좋아해요. 가리지 않고 책을 읽지만 뚜렷한 취향 중 하나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환상문학 자체를 즐겨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빠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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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은밀하게 위대하게, 우상 창백한 말, 우하 죽음에 관하여)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영화화되기도 해서 아마 아실 수 있겠지만 작가 HUN님의 작품은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다음 웹툰으로 가셔서 완결된 전작들을 한 번 읽어보세요. 작품 별로 메시지가 뚜렷하고, 특히 초기 작품들이 긴박하게 진행되는 편이어서 금방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같이 항해2를 기다립시다.

‘창백한 말’은 아르누보 양식이나 알폰스 무하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취향 저격입니다. 신화적으로 형상화한 이미지가 ‘마녀’라는 이야기와 만나며 로즈라는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냈습니다. 로즈는 순결하고 착한 여주인공이 아니라 뱀파이어 모티브로 탄생한 캐릭터지만 힘이 없이 아름답기만 해서 여러 수모를 겪고 그럼에도 살고 싶어서 비참한 마녀입니다. 이야기가 어디로 갈지 궁금한 웹툰 중 하나라서 연재중단만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죽음에 관하여’는 웹툰 계에서 이전에 시도된 적이 있었을까 싶은 파격적인 포맷이었습니다.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에피소드 주인공의 삶 속에서 솔직하게 풀어주었기 때문에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아요. 사람마다 각자 가지고 있는 사연들이 삶의 끝에서 다시 한 번 정리되는 것이 좋았습니다. 사형집행과 젊은 공자, 친구들과의 사진은 여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입니다. - Square의 OST와 함께 보시면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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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십이국기, 중 패스파인더, 우 나무를 담벼락에 끌고 들어가지 말라)


이번엔 소설로 넘어가 볼게요. ‘십이국기’는 10대 후반쯤에 읽은 일본 판타지 소설인데 90년대부터 유행했던 차원 이동물의 일종입니다. 세계관이 뚜렷하고 방대한데다가 선택받은 왕이라는 설정을 풀어가는 방식이 주인공 마다 달라서 지루하지 않습니다. 구판 11권과 ‘마성의 아이’라는 외전까지 다 본지 몇 년이 흘렀건만 이야기의 끝은 언제쯤 찾아올까요.

소설 연재 사이트 조아라에서 유일하게 소장본으로 구매한 ‘패스파인더’도 차원 이동물인데 여기서도 주인공이 많이 구릅니다. 말하다보니 취향이 드러나네요. 사실 저는 주인공의 고난과 시련을 좋아하고 극도 희극보다 비극을 선호한답니다! 그런 의미에서 1부의 개연성과 현실성이 마음에 들었어요. 기존의 작품들에서는 없었던 신선한 뒤통수도 짜릿했습니다.

‘나무를 담벼락에 끌고 들어가지 말라’는 작가님이 자체 출판한 1부와 출판사에서 출판한 1부, 1.5부, 2부까지 소장하고 있으며 리디북스에서 연재중인 3부도 꼬박꼬박 결제해서 볼 정도로 팬입니다. 3부가 연재되기까지 2~3년 기다렸던 것 같아요. 1부 연재 시절부터 함께 했기 때문에 애정이 남다른 소설입니다. (자랑 : 1부 소장본 구매자는 외전 특전이 따로 있습니다.) 기본 뼈대는 상처 입은 여자와 상처 있는 남자가 만나는 이야기지만 각자의 상처를 서로 어루만지는 방식이 정말 섬세해요. 1부 내용 전체가 두 사람의 감정이 엮이는 내용에만 할애되어 있습니다.

사고 싶은 책이 참 많아요. ‘룬의 아이들’ 애장판, ‘하얀 늑대들’ 애장판, ‘스피릿 핑거스’, ‘선천적 얼간이들’, ‘계룡 선녀전’ 등. 오늘도 참아봅니다.



2번
학문

어린 시절부터 흥미 있었던 갈래는 인문 쪽이에요. 생각을 언어로 끄집어주는 것이 좋아서 청소년용 도서들로 찾아 읽었습니다. 이후에 학부 공부를 하면서 개인적으로도 철학, 심리학, 사회학에 빠져있었어요. 공부용 책들은 산 것보다 빌려서 읽은 것이 많아, 취향 파악을 위해 추가적인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저는 F. W. N의 팬입니다. 새내기 때 샀던 과잠에도 당당하게 적혀있어요. 바로 니체! 고3 겨울방학 때 만나 제 머리 속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던 철학자입니다. 그의 뼈저리는 말들은 지금도 제 사고의 중요한 축을 담당합니다. 국내에서 니체에 대한 책은 들뢰즈나 박찬국 교수가 쓴 것을 읽는 것을 추천 드려요. 참고로 저의 입문작은 동녘 출판사에서 이수영님이 쓴 ‘명랑철학’입니다. 제목 정말 센스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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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를 꿈꾸던 그대


초기에는 니체가 하지 말라고 했던 방식으로 그를 무작정 따랐지만 지금은 많이 벗어났습니다. 진짜 마약 같은 사람이라 조심해서 취급해주세요. 한 번 빠지면 헤어나는 데 오래 걸립니다. 니체에 대해서 정말 할 말이 많아서 오피니언 한 편을 적을 수 있지만, 지치실까봐 참겠습니다. 잠시 차 한 모금 더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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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들만 검색해 봐도 재밌어요.


학교 들어가서 잠시 빠져 지냈던 것은 인도철학과 신화였어요. 보통 퍼-런 피부, 수많은 팔과 머리를 갖춘 신들이 나오며 신성한 이미지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지요. 인도의 종교는 다신교이며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가 힌두의 트리니티입니다. 기독교의 유일신이 익숙했던 제가 니체를 만나고 나서 한번 관념이 깨지고 나니까, 이런 철학이 신기하고 재밌더라고요. 인도는 종교-철학-신화가 서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문화 속에 녹아있는 흔적들을 같이 보면 두 배로 재밌습니다.

좀 더 공부해보고 싶어서 철학과에서 인도철학 강의를 수강했는데, 당시 교재로 썼던 ‘학파로 보는 인도 사상’이 힌두에 대해 철학적으로 정리가 잘 되어 있어 참고하시기 좋습니다. 비슈누파와 시바파가 제일 흥미진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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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융 : (근엄)


학부에서 구조주의를 배우며 롤랑 바르트를 파고, 미학으로 넘어가서 진중권의 책도 읽다가 융 심리학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프로이트는 익숙한 학자이고 그의 개념들도 쉽게 들을 수 있지만, 융은 못 들어보신 분이 더 많으실 겁니다. 아무래도 정신구조에 대해서도 프로이트에 비해 덜 명확하고 상징에 대한 말이 많아 신비주의처럼 여겨질 수 있어요.

하지만 신비주의는 결코 아니고, 개성화 과정에 대한 이해가 결국 인간의 내적 성장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 금방 빠지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념과 용어에 대해 조금만 공부하셔서 자신의 꿈일기를 분석해보면 은근 재밌습니다. 기억에도 오래 남고요. ※ 맹신금지

융을 읽다보면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도 읽고 싶어지고 아니마-아니무스 개념이 또 힌두의 남신-여신에 대한 생각으로도 이어져서 즐겁습니다.

니체, 힌두, 융 외에도 라캉이라거나 푸코라거나 보드리야르, 시몽동, 아도르노, 벤야민, 바우만 등등 같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지만.. 다음 서재 초대 때, 마저 이야기 나눠보도록 할까요?



3번
시, 평론

분명히 알려드리지만, 시를 많이 읽어보지도 않았고 잘 모릅니다. 아직도 외우고 있는 시는  오르텅스 블루의 ‘사막’뿐.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사막-


한 때 류시화 시인이 엮은 시집을 많이 읽기는 했어요. 시라기보다 이야기라는 느낌이 더 강했던 것 같습니다. 다들 집에 한 권쯤은 있을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속 시들은 하나같이 따뜻하죠.

언젠가는 릴케가 궁금해서 한번 읽어보기도 했고 지인들에게 추천받은 안현미, 심보선, 기형도, 홍정선, 지금은 문체부 장관이 된 도종환 시인의 시를 읽기도 했습니다. 우울할 때 시를 읽으면 의외로 차분해집니다. 따뜻한 시 말고, 같이 우울한 시로 읽으세요. 언어의 극한을 추구하는 것 같은 현대시들은 따라갈 수가 없어 평론에 의지합니다.

최근에는 김봄 작가님에게서 신철규 시인과 박소란 시인을 듣게 되어서 오랜만에 다시 시집을 구매해볼까 합니다. 시집은 공간을 적게 차지하니까 부담이 덜 해요.

저는 평론을 찾아 읽지 않고 소설 뒤에 수록되어 있는 정도만 보는 보통의 사람이지만, 신형철 평론가는 괜찮았습니다. ‘느낌의 공동체’로 처음 만났는데 비평에 대한 선입견을 깨어줬거든요. 문학에 대한 애정이 문외한인 제게 보일 정도라서 읽다보면 같이 행복해져요. 평소 평론에 거리감을 느끼셨다면 이 책으로 좁혀보는 것은 어떨까요?

더불어 ‘몰락의 에티카’는 ‘느낌의 공동체’에 비해 난이도가 있는 책입니다. 기본적으로 철학에 대한 학습이 되어 있어야 읽다가 책을 덮지 않으실 거예요. 저는 여기서 소설과 시의 차이, 시를 보는 눈에 대해 맛볼 수 있었고 여러 좋은 시들을 만나보기도 해서 조심스럽게 권해드립니다.


나에게 비평은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아름답게 말하는 일이다.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할 때 나는 절박하다. 나는 부조리하고 이기적이며 무책임한 사람이다. 많은 상처를 주었고 적은 상처를 받았다. 이 불균형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 오로지 나의 삶을 나의 글로 덮어버리기 위해 썼다.
문학이 아니었으면 정처 없었을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을 혐오하지 않으면서 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진실이 있다면 이것이다.
나는 문학을 사랑한다. 문학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어쩔 수가 없다.

-몰락의 에티카-




4번
실용서, 잡지, 프로그램 북

실용서는 잘 안사는 편이지만 요리에 대한 욕심으로 기본 요리책을 한 권 구매한 적이 있습니다. 다들 그렇지 않나요? 어차피 요리는 하지 않겠지만 괜히 책장에 꽂혀있는 요리책을 보면 배부른 느낌이 드는 경험, 해보셨을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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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뉴필로소퍼 우 우먼카인드


잡지는 최근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발견한 ‘뉴필로소퍼’와 ‘우먼카인드’가 좋았습니다. ‘뉴필로소퍼’는 철학 잡지이지만 무겁지 않고 각 호의 주제에 대해 다각도로 성찰합니다. 기념으로 당시 창간호를 샀고 2호, 3호도 하나하나씩 모아갈까 고민하고 있어요. ‘우먼카인드’는 호주에서 시작한 잡지로 네, 페미니즘 잡지입니다! 기존 여성 잡지 노선에서 벗어나 묻히고 깎아 내려졌던 여성의 언어와 여성의 가치에 대한 글을 싣습니다.

2번에서 다루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로 저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고 할 말도 많습니다. 지금의 페미니즘 과도기에서 여러 문제점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결국 옳은 것이기에, 포기하거나 무시하는 것보다 사회 구성원들이 끊임없이 얘기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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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음직스런 고기파이


프로그램 북은 2016년부터 모으기 시작했고 뮤지컬이 가장 비율이 높습니다. 소장가치도 있고 볼 때마다 뿌듯한 기분이 듭니다. 제일 특이한 책은 ‘스위니토드’에서 냈던 러빗 부인 요리 레시피 컨셉의 작은 프로그램 북입니다. 큰 것보다 오히려 더 알찬 구성이고 디자인도 뮤지컬 분위기에 잘 어울려요.

‘피맛골 연가’로 시작했던 뮤지컬 생활, 제대로 빠진 것은 이번 ‘웃는 남자’부터지만.. 덕심이 연차가 중요한가요. 사랑으로 대동단결 아닙니까. 더불어 저는 이번 11월 ‘지킬앤하이드’ 보러갑니다. 이번에 작정한 캐스팅 때문에 회전문을 돌리게 될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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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둘러싸인 곳으로


언젠가는 움베르트 에코처럼 큰 책장을 두고 읽은 책, 읽고 싶은 책을 꽉꽉 눌러 담고 싶습니다. 제대로 된 서가를 위해 돈을 벌고 싶어요. 서재에서 친구들과 토론도 하며 노후를 보내면 참 즐거울 것 같지요?

1번부터 4번까지 모두 읽으신 분이라면 타인의 독서 취향에 지대한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을 위한 마지막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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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견한 다음 웹툰으로 캐릭터들과 독자들을 보는 데 아주 흐뭇합니다. 전형적인 독서중독자의 이미지로 그려진 독서모임 멤버들과 새롭게 들어온 그리스 비극 신입, 번번이 퇴짜 맞는 자기계발서 입부희망자, 그리고 그들을 보고 있는 모든 익명의 독서중독자들.

그 은밀한 컬트 의식에 당신을 다시 초대합니다. - 초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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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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