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의 묘약은 어디서 살 수 있나요

글 입력 2018.08.1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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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오페라와 담을 쌓고 살다가 지난 학기에 여러 오페라를 배우게 되었다. 배우며 자연스럽게 직접 오페라를 보고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관람한 사랑의 묘약은 나의 첫 오페라다.



무대


사랑의 묘약은 벽에 빔 프로젝터를 쏴 영상을 그리는 3D Projection Mapping을 사용해 배경을 연출했다. 확실히 빔 프로젝터를 사용하니 좀 더 효율적인 장소 변화와 인물의 감정 표현이 가능했다. 세트 속에서 영상이 부차적인 역할을 하며 스토리텔링에 도움을 주는 공연은 봤어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좋았다.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은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없다. 그런데 공연을 보면서 빔 프로젝터는 무대공연의 이러한 한계를 넘을 수 있는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D Projection Mapping이 이전의 사랑의 묘약 공연들이나 다른 오페라와 차별적인 특징이라고 생각해 기대를 많이 한 만큼 좋았던 점도 있었지만 물론 조금 아쉬웠던 점도 있다.

우선, 배경이 인물들의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 좋았다. 네모리노와 아디나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확신이 점점 커지면서 배경의 두 손가락이 점점 맞닿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네모리노가 아디나를 생각할 땐, 하얀 배경에 푸른색으로 여러 각도에서 본 아디나의 얼굴이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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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마치 테마곡처럼, 인물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을 배경에 넣은 것도 좋았다. 아디나가 등장할 때는 그녀가 입은 옷의 색깔과 같은 흰 색과 푸른색의 배경에 우아한 나무 한 그루가 그려져 있었다. 둘카마라가 등장할 때의 붉은 색 배경과 금색별은 마술쇼를 연상시키며 그의 이름이 적힌 열기구는 하늘로 솟아오르는 환상을 의미하는 듯하다. 벨코레의 배경엔 활을 들고 있는 강인한 전사들이 말을 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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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3D Project Mapping에 관한 여러 영상들을 보고 화려한 영상미를 기대하고 갔다가 공연이 끝난 후 내가 잘못된 기대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경이든 소품이든 의상이든 명분 없이 화려하다면 그 자체로 독이고 이런 모든 것이 극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무조건적인 화려함을 기대했으니 반성할 만하다. 배경의 역할 중에, 극의 분위기를 잡아주며 무대 위의 모든 것을 빛나게 해주는 역할이 있다. 다른 것보다 배경에 눈을 오래 빼앗기게 된다면 좋은 배경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배경에 영상을 넣을 수 있게 되면서 자칫하면 배우보다 배경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대와 배경의 섬세한 융합을 보면 연출가가 화려함의 정도를 조절하는 데에 쏟았을 많은 고민들이 느껴진다. 다만 반복되는 배경이 조금 아쉽고 좀 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디테일한 부분에서 분명 빔 프로젝터로 표현해낼 수 있는 게 많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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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오페라를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공연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어로 진행된다는 생각을 당연히 갖고 있다가 문득 노래뿐만 아니라 대사도 이탈리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자막을 띄우긴 할 텐데, 띄워봤자 구조상 몇 군데밖에 못 할 텐데 그렇다면 공연에 제대로 집중하기 힘들겠다는 걱정을 했다. 그런데 좌석마다 앞에 작은 모니터가 있어서 너무 편하게 언어에 방해받지 않고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자막이 번역체가 아닌 현대적이고 한국적인 느낌의 자막이라 놀랐다. 한 문장 한 문장 다 신경 쓴 느낌이었다. 둘카마라가 사랑의 묘약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이건 식약청에서 검증받은 약이라는 대사와 아디나가 네모리노를 놀리는 장면에 ‘~지롱’으로 끝나는 대사도 재밌었다. 이탈리아어로 공연이 진행되어 관객들이 거리감을 느낄 만도 한데, 농담 부분에서 많은 관객들이 웃을 정도로 찰진 번역이었다.



내용


흥미롭게도 공연을 보기 전과 후에 캐릭터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특히 네모리노. 성실하고 순수한 농부이며 농장 소유주의 딸을 사랑한다는 설정에 나도 모르게 ‘봄봄’의 머슴을 떠올리며 네모리노가 그와 비슷한 성격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네모리노가 아디나의 뒤에서 무심한 척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내는 캐릭터일 거라고 지레짐작하였다. 하지만 네모리노는 무심하기보다 귀엽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또 한 톨의 의심도 없이 둘카마라의 술수에 속는 지나친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효과가 미심쩍어도 한 번 더 묘약을 사기 위해 입대까지 하는 불도저같은 면모를 보여준다.

내용은 사실 공감가지 않는 부분이 몇 군데 있다: 네모리노나 벨코레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아디나가 (벨코레와는 밀당을 하는 듯한 장면이 나오지만 좋아해서 했다기보다 재미를 위해 한 것 같음) 벨코레와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것, 네모리노가 자신을 위해 입대한 걸 알고 결혼식을 취소한 것, 네모리노가 유산을 상속받은 걸 알자마자 모든 마을 처녀들이 그를 유혹한 것. 극은 극일뿐이고, 서사의 신속한 진행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아디나가 극 초반에 네모리노를 향해 사랑하지만 티는 내고 싶지 않은 듯한 감정을 더욱 표현했거나, 그런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대사나 장면이 있었다면 더 깊게 몰입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단순함과 진지함


사랑은 단순함과 진지함, 이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두 단어로 동시에 표현가능함을 네모리노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네모리노는 사랑의 묘약을 한 번 실패해 그 효능을 의심할 법 함에도 양이 부족해서 실패한 거라는 둘카마라의 술수에 한 번 더 넘어간다. 더 많은 묘약을 사기 위한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지 고민하다, 입대하면 200만원을 주겠다는 벨코레의 말에 덜컥 입대까지 한다. 이런 행동은 너무나 단순해 보이지만 사랑에 대해서 진지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행동이며 이 단순함으로 네모리노는 결국 아디나의 마음을 얻는다. (그리고 아디나는 네모리노의 입대 계약서를 다시 돈 주고 사온다.)

단순함과 진지함으로 동시에 설명되는 단어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문득 프리뷰를 쓰며 봤던 공연 홍보 멘트가 생각난다. 이 공연을 보면 진정한 사랑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된다는 멘트였는데 이 멘트가 나에겐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 되어서 다행이다. 진정한 사랑이 뭔지에 대해선 좀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네모리노의 사랑에 빠진 표정은 오래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사랑의 묘약은 싸구려 포도주가 아니라 네모리노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마음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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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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