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의 시간은 절반만 거꾸로 간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원작과 영화 비교
글 입력 2018.07.27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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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새로운 감정을 불어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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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의 원작은 현실적이다. 가끔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우스꽝스러운 서술들이 곳곳에 등장하고, 시간을 거꾸로 사는 주인공에게 주위 사람들은 마냥 따뜻하지 만은 않다. 출생의 묘사에서부터 주인공 벤자민은 갓 태어났다는 사실을 무색하게 만들며 다 큰 노인의 모습으로, 직접 말까지 건네며 아버지를 맞이한다. 뒤이어 서술되는 그 둘의 대화 장면이나 아버지가 벤자민의 옷을 사러 가는 작품의 초반부는 그의 기이한 출생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나 사유보다는, 매우 현실적이어서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감정들을 앞서 제시한다. 이어져 서술되는 그의 일생 역시 시간의 문제를 극복할 만큼의 강력한 감정들이 등장하기보다는, 주로 외부적이고 사회적인 시선 속에서 맞닥뜨리는 그의 내외적 갈등들이 단편적 사건들로 서술되는 방식이다.

반면, 영화는 보다 대중적이다. 다르지 않은 제목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시간을 거꾸로 사는 남자의 일생’이라는 설정은 유지했지만 내용상 많은 차이를 보인다. 원작에는 나타나지 않는 한 여자와의 깊은 사랑 이야기, 영화에서 벤자민이 친아버지에게 버려 짐에 따라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인 흑인 어머니 퀴니, 그리고 주인공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눈먼 시계 공 이야기까지, 이 모든 새로운 이야기들은 일종의 ‘장치’로서 영화 작품에 새로운 감정을 불어 넣는다.



가장 대중적이고 강력한 감정,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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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병실에 누워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는 데이지와, 그녀의 곁을 지키는 딸 캐롤라인의 모습으로 첫 장면을 시작한다. 곧이어 본격적으로 주인공 벤자민을 등장시키기 전, 영화는 한번 더 새로운 이야기를 제시한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한 아들을 그리워하며, 거꾸로 가는 시계를 만든 시계 공의 이야기이다. 시간이 되면 사랑하는 어머니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고, 또 사랑하는 아들은 전쟁터에서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이 두 이야기는 비교적 단순히 ‘거꾸로 흐르는 시간과 그로 인한 갈등적 사건’들을 단편적으로 서술한 원작 소설과 달리, 시간의 흐름에 관한 문제와 함께 ‘사랑’을 중점적으로 다룰 것임을 강력히 환기하며 각인시킨다.

영화에 등장하는 가장 강력한 사랑 이야기는 벤자민의 연인이자 아내인 데이지를 통해 드러난다. 원작에서도 벤자민은 힐데가르드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지만 이 둘의 사랑 이야기는 영화에서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권태로움과 점점 벌어지는 둘의 관계에 결국 사랑을 종결하는 원작의 사랑 이야기는 벤자민이 겪는 다른 여느 사건들과 같은 비중만을 차지할 뿐이다. 극복은 없다. 시간문제에 있어 비교적 일대일 대응적인, 그래서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면이 돋보인다.

그러나 영화가 그려내는 벤자민과 데이지의 사랑은 작품 전체를 무겁게 관통하는 주요 소재다. 마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데이지는 벤자민을 사랑하고, 결국 시간 차이의 문제로 둘은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지만 그의 마지막 순간에는 그녀가 함께한다. 영화는 벤자민과 데이지의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 나이가 서로 일치하는 때를 기다렸다는 듯 더욱 아름답게 그려낸다. 기다려온 그 시간이 잠깐임을 그들도 알고 우리도 알기에, 이 애절한 사랑은 강력한 대중적 공감을 끌어낼 수밖에 없다.



더 길고 풍부하게, 부담은 적게


분명 영화는 원작 소설이 그리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새로이 포함하여 작품의 길이와 깊이를 더해낸다. 원작이 단순히 ‘거꾸로 가는 시간과 그로 인해 겪게 되는 다양한 갈등적 사건들’을 서술하는 것에 그친다면, 영화는 나아가 사랑 이야기를 더하고, 주인공을 보다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로 그려내며, 다른 인물들의 삶과 죽음까지 비교적 상세히 조명하여 단순히 시간의 문제가 아닌 운명, 사랑, 그리고 죽음의 문제까지 폭넓게 담아낸다. 그러나 영화의 새로운 변화들은, 거꾸로 흐르는 시간’을 살아가야 하는 주인공의 불편함과 부담감을 보다 쉽게 덜어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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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와의 사랑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벤자민이 버려 짐에 따라 새로 등장하는 흑인 여성인 퀴니는 어머니의 역할을 통해 모성애적 사랑으로 그의 기이한 운명과 그로 인한 불편함이나 갈등을 강력히 극복해낸다. 원작에서는 가족에게조차 인정을 받지 못하고 외부에서는 조롱을 받기 일쑤였던 본래의 벤자민과는 달리, 영화에서의 그의 운명은 양어머니의 존재를 통해 격려되고, 따라서 보다 쉽게 받아들여진다. ‘모두는 각자의 운명이 있으며, 너는 남과 다르지 않다’는 어머니의 대사는 주인공의 문제를 ‘극복하고도 남을 대상’으로 여겨지도록 만들며, 그를 다른 사람들과 같은 선상에 올려놓는 데에 강력히 일조한다. 덧붙여 영화가 노인인 채로 태어난 벤자민의 모습을 원작과 같이 다 큰 노인의 몸이 아닌 그저 피부와 건강 상태만 노화된 ‘아기의 모습’으로 그려낸 것을 보면, 확실히 그의 모습과 운명을 그려내는 데 있어 불편함과 부담감을 덜어내고자 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남윤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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