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끝을 마주할 때 더욱 선명하게 감각되는 사랑, < 블루베일의 시간 > [도서]

글 입력 2018.07.0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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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마주할 때 더욱 선명하게 감각되는 사랑
책 < 블루베일의 시간 >을 읽고



블루베일의시간.jpg


<블루베일의 시간>
KBS 블루베일의 시간 제작팀 지음
윤이경 엮음


마음이 저려서 눈물이 막 났다가, 마음이 담담하게 가라앉다가……. 이런 마음으로는 쉽게 잠들 수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쉽게 잠들 수 없다면 나의 ‘죽음에 대한 묵상’을 글로 옮겨보려 한다.





다니엘 페나크의 장편소설 <몸의 일기>에서는 ‘매번 잠에서 깨는 건 다시 잠들 거라는 약속이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보통 아침에 일어나면 피곤해서든 눈이 건조해서든 인상을 찌푸리면서 일어난다. 그러다가도 가끔은 의아스러운 얼굴로 눈을 뜰 때가 있다. 아침에 눈을 뜬 것이 새삼 신기해서 그렇다. 자고 일어나니 새로운 하루가 나에게 다시 주어져 있다.


어느 날 경포를 걷는데 한 가족이 제 곁을 스치고 지나갔어요.

여섯 살쯤 된 작은 아이가 공교롭게도 제가 지나갈 때 묻더라고요. “엄마 아빠, 죽음이 뭐야?” 그러니까 엄마가 “죽음은 안 깨어나고 계속 자는 거야” 이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러자 아빠가 덧붙여서 “죽음은 깨어나지 않는 잠이고,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그것이 죽음이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이 굉장히 가슴에 남더라고요.

- 로사 수녀 (209p)


매번 잠에서 깨고, 다시 잠들 거라 약속한다. 잠든 후 영원히 깨지 못한다면 이것은 영면(永眠)이 될 것이다. 영면은 죽음을 달리 표현하는 말로 알고 있다. 자는 동안 꿈을 꾼다 해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꿈을 꿨다는 사실조차 말할 수 없다. 죽음 이후의 상황에 대해 영면한 자는 어떤 말도 해줄 수 없다.

*

<블루베일의 시간>은 강릉 갈바리의원을 배경으로 한다. 갈바리의원은 한국 최초, 동양 최초 호스피스 시설이다. 환자와 그 가족들, 진료원장님과 수녀님들은 ‘임종이라는 관문을 통해 죽음과 만난’다. 죽음과 용감하게 마주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동시에 삶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 이야기들을 엮어낸 책이 바로 <블루베일의 시간>이다.


큰딸과 작은딸이 담담하게 아빠에 관해 얘기했다. 담담한 목소리 안에 심지처럼 슬픔이 박혀 있었다. 슬픈 건 슬픈 것이다. 너무 슬퍼할 필요 없다는 얘기는 소용없다. 슬픈 감정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 갑작스러운 임종은 상처가 될 수 있으나, 준비된 사랑으로 함께한 임종은 훗날 치유된다.

(69p)



(사람의 죽음이라는 것을 의료진 입장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질문에)

어렵네요. 죽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도 하고요. 학자가 아니라서 철학적인 견해 같은 건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냥 제가 환자를 보면서 느낀 점을 말씀드릴게요. 죽음을 삶과 떨어뜨려서 생각하면 두렵고 어둡게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삶의 끝자락에 오는 것이 죽음이고, 어쩌면 삶의 일부거든요.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죽음은 삶이 완성되는 시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순환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고, 한 세대가 가고 또 다음 생애가 이어지잖아요.

- 박희원 진료원장 (165p)


한 분 한 분의 이야기. 각각은 생략되고 압축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분들 인생의 아주 작디작은 부분을 글을 통해 본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작은 이야기의 조각들에 압도당했다.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들이 책을 통해 기꺼이 풀어준 이야기는 삶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게 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삶에 집착하느라 놓쳐버린, 혹은 의도적으로 회피해버린 죽음을 마주하게 해주었다.


가감 없이 솔직하고 겸손하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해요. 내가 이랬을 때 당신한테 잘못했고, 이럴 때 나는 기분이 좋고 행복했는데 그런 표현을 많이 못 했다, 이런 것들 있잖아요. 삶을 얘기하면서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겸손하게 바라보면 죽음도 잘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죽음을 자아의 포기이고 욕망의 포기라고 생각해요. 돌아가신 분들이 가장 가난한 사람이고 겸손한 사람이지 않나 싶어요.

- 스텔라 수녀 (195p)


죽음이라는 건 욕망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살고 싶은 건 본성이잖아요. 본성적인 걸 내려놓는 과정이 자아 포기와 비슷한 것 같아요. 죽음도 자아 포기와 일맥상통하고요. 수도원에서 살아가면서 자아 포기란 소리를 제일 많이 듣게 되는데, 저한테 제일 어려운 게 포기인 것 같아요. 포기하고 싶지 않은 어떤 것을 포기해야 된다는 것. 제일 어려운 포기가 살기를 포기하는 것, 즉 죽음이죠. 그래서 누가 저에게 죽음이 뭐냐고 물으면 한마디로 말해서 자아 포기라고 대답할 것 같아요.

- 스텔라 수녀 (204p)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즉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 하루를 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 말대로라면 나는 일분일초를 분주하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내 몸속 에너지가 남아나지 않을 것은 당연한 수순이겠다. 그렇지만 적어도 두 가지 정도는 기꺼이 시도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우리 삶의 마지막에는 죽음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꾸준히 떠올리기. 둘째, 삶과 죽음은 서로 하나이고 또 인생을 이루는 과정이라는 사실 알기.

나의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나에게 오긴 온다는 분명한 사실을 인지하는 것.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매일을 소신껏 살아가는 것. 이를 성실히 행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삶의 과정을 꾸려온 만큼 내 삶의 마지막도 꾸릴 수 있을 것만 같다.

*

이렇게 생각은 해도 당장의 나는 자아도 강하고 욕심도 많다. 모두 내려놓고 비우고 포기하기엔 한참 부족하다.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운명이 너그럽게 기다려주면 좋겠다. 물론 이 또한 욕심이겠지만, 아직까지는 나의 어리고 어리석은 마음을 핑계 삼아서라도 욕심내고 싶다. 마지막은 천천히 평화롭게 찾아오기를, 그래서 더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를.


[심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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