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변산 > Home, Bittersweet Home [영화]

글 입력 2018.07.0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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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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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이의 영화라는 건 참 신기하다. 얼굴도 한번 본 적 없는 배우나 감독에게 나혼자 의리와 믿음을 쌓아서 스크린 앞에 불러앉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양날의 검이다. 의리와 믿음은 깊이가 깊을 수록 쉽사리 깨지기 마련이니까. 영화 <변산>이 믿고 보는 이준익 감독과 박정민 배우의 뒷통수는 아니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든 생각은 '만들 때 재밌었겠다’는 거였다. 그러면 볼 때는 재미가 없었냐하면 것도 아니다. 볼 때도 재미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이 어물쩡거리는 느낌은 뭘까. '보고 나서 쓰려니 막막한 영화'라는 것. 그런 영화가 있다. 분명 재밌었는데? 거 참 도무지 할 말이 마땅치가 않다. 키보드에서 손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어물쩡이에게 이름을 붙여보자. 휘발성 재미인가. 가끔 일어나는 영화후 실어증같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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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과 아버지, 랩과 시, 과거와 현재, 쌈마이와 가족애가 고루 버무려져 있다. 랩에 뜻이 있어 서울로 떠난 학수. 학수 입장에서 한마디 해볼까. 쇼미더머니 장수생이고 본선 3라운드때마다 징크스처럼 떨어진다. 그놈의 징크스. 이번엔 6년간 칼 갈아서 대충 해도 잘 될거라는 가사와는 별개로 어머니란 제시어에 무너졌다. 랩은 다 준비했는데 어머니는 그에게 생각만으로도 아픈 존재라서. 목이 메어서 말을 잇지 못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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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 보기도 싫지만 편찮은 아버지 때문에 돌아왔다. 지긋지긋한 고향 변산. 망할 아버지. 엄마 돌아가셨을 땐 딴 여자랑 노닥거리면서 온데 간데 없더니 진심 양심은 어디에 두고 오셨는지. 변산은 그대로다. 동창회하는 기분이다. 첫사랑 미경이는 음, 여전히 예쁘고, 오히려 나를 좋아했던 선미는 얼라라, 같은 병실이다. 사실 못 알아봤다. 10년만에 만나서 얼굴을 잊은 건 아니다. 미경이 얼굴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으니까. 기억력이 나쁜 게 아니라 ‘선택적 기억력’이 발달했을 뿐.  시 노트(표지는 Rap is my life지만) 훔쳐간  교생 선상님도 계시네. 도둑놈의 자식. 얼마 있지도 않았는데 벌써 소문이 파다하다. 학수가 돌아왔다고. 왜 이렇게  빠른걸까. 하, 변산 바닥이 좁아서일 수도, 사람들의 '소셜 네트워크'가 활발해서일수도.

뜻대로 풀리지 않는 건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별 거 없는 변산에 태어난 것도, 아버지가 조폭인 것도, 어머니가 암으로 일찍 돌아가신 것도, 좋아하는 미경이가 학수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학수의 시를 훔쳐 다른 이가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걸 따지지도 못하는 것도, 쇼미더머니에 6번째나 떨어지는 것도, 어깨 펼 만큼 성공하지도 못한 채로 변산에 돌아온 것도. 아버지 이거보세요, 아버지가 버리고도 전 잘 살아요, 할 만큼 잘 살고 아무렇지 않은 게 복수인 거 아는데 그냥 비뚤어지고 싶어지는 거. 이러면 아버지보다 나을 거 없는 거 아는데도 머리랑 마음이 따로 노는 거. 다, 학수에겐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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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수의 가장 큰 상처가 아버지인데 다가오는 죽음이 면죄부라도 되는 건가. 선미의 큰그림 덕분에 아버지와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그녀가 한 말, 학수가 아버지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말은 큰 충격이자 상처였을 것이다. 제일 듣기 싫은 말이라 경종을 울렸겠지만. 아버지나 어른인 건 전혀 상관하지 않고 학수가 빈정거리며 이죽거렸대도 그가 패륜아라거나 너무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제 와서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는 상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겐 아무 말하지 못하고 혼자였던 시간에 대한 분풀이가 좀 필요했다. 화가 쌓여있단 건 상처와 두려움이 쌓여있다는 것이다. 화가 더 아픈 건 상대가 진심으로 미안해할 때 그걸 받아 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와서, 너도 아파보라며 듣지 않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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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 3라운드. 왜 그에겐 징크스가 있었을까. 본격적인 판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판에서 그의 발목을 잡은 건 상처와 두려움에 쌓인 그 자신이었다. 무척 뛰어나고 이번엔 잘할 거라는 자신감이 가득찬 초반 라운드 랩은 라임이 적절하게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때의 랩이 더 좋았다. 어머니, 변산으로의 금의환향 같이 그를 주춤거리게 하는 것들이 그의 실력을, 그 자신을 보여주지 못하게 했다. 그는 머리만 헝클이며 좌절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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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이 좋다. 학수의 랩 중 와, 이거다, 비트를 씹어먹고 발라버렸다, 싶은 취향저격 가사는 많지 않았지만 그의 랩이 점점 좋아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랩은 너네들은 다 내 발 밑이고, 다 루저고 나만 돈을 싸그리 벌어제낄 유일한 승자라는 내용은 아니다.(물론 우울할 때 들으면 온 세상 멋지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랩이 좋은 건 어느 비트에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가득 담아 속 시원히 말할 수 있다는 것. 때로 시 같고 소설같으며, 나를 위해, 혹은 모두를 위해 외치는 노래이자 대사 같기 때문이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아버지가 학수를 기다릴 서 있는 시간이 더 있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모순적인 생각이긴 하다. 죽을 날을 받아두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학수를 찾지 않았을 거고, 학수 역시 아버지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아서 화를 내다가도 아버지를 결국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니까. 그래도 좀 더 시간이 있었으면 했다. 부모자식 간에 싸움이 칼로 물베기라 생각하지 않으니까. 소중한 사이일수록 어렵더라도 사과는 정중하고 마음의 매듭을 풀 시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길 바라니까. 물론 알고도 우린 늘 서로에게 가벼이 상처를 내곤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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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은 변산도, 아버지와 학수도, 학수의 친구들도 변하게 했다. 어릴 적 힘세고 잘나갔다고 지금 꼭 그러리란 법도 없어서 그때의 을이 지금의 갑이 되기도 한다. 사람 일 모르니 상처주지 말고 친절하게 사는 게 만사 편하다. 안그럼 산낙지 빨판으로 얼굴 마사지를 받거나 갯벌에서 멋이라곤 하나 없는 전신 머드팩 싸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노을이라고 변하지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그 시절의 노을은 오늘 보고 느끼는 노을과 감정도 다르다. ‘내 고향은 폐항’ 같은 표현은 고딩때나 나올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의도치도 않게 산통깨는 건 미세먼지. 미세먼지 지수가 나쁜 날은 감성까지 메마르게 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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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주제의식은 선미의 입에서 나온다.  학수가 피하고자 했던 것을 마주하게 한 것 역시 그녀다. 이게 그녀가 학수에게 던지고 학수가 물어버린 미끼라면 속는 셈 치고 걸려볼 만한 ‘좋은’ 미끼다. 변산에 데려와 아버지를 만나게 한 것도, 자존심 강해 아픈 걸 숨기는 아버지와 안 아픈 줄 알고 더 모질게 구는 학수의 갈등의 실마리를 주는 것도 선미다. 너는 모르지만 아버지가 곧 돌아가신다면서 학수 부자간의 갈등을 해소할 단서도 알려준다. 도피하듯 못되게 구는 그에게 매몰차게 후지게 살지는 말라며 그가 다시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도록 다그친다. 학수가 잃어버린 시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 밖에 없네’를 학수의 시로 알아주는 유일한 이다.

고향을 마주하지 않는 학수에게 선미는 또 한마디한다. 사투리가 남아 있단 건 고향이 아직 그에게 남아있다는 거라면서. 사투리를 정체성으로 해석한다면 벗어나려 해도 이미 자신의 일부인 것이다. 학수는 부정하려하지만 그의 랩에 남아 있는 은근한 사투리. 선미에게 첫사랑이자 끝사랑이 된 노을, 그녀의 글 노을 매니아. 얼렁뚱땅 웃긴 상황 속에 킬킬거리다 보면 어느새 결론에 다다른다. 좁게만 느껴지고 여전히 미운털이 콕콕 박힌 변산. 후지게도, 멋들어지게도 살았던 작은 역사가 담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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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 고향 사랑, 고향으로 꼭 돌아오라는 말이 아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처럼 고향에 기를 쓰고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이미 고향은 우리의 조각이니까. 우리는 우리의 조각을 , 우리 자신을 받아들이는 시간만 있으면 된다. 변산은 집이라는 공간이지만 우리가 보낸 시간이기도 하다. 찾아갈 수 있는 눈에 보이는 곳이면서도 나도 모르게 나를 만든, 보이지 않는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변산은 즐거운 곳에서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이 뿐이라며 두 팔 벌릴 곳은 아닐 것이다. 즐거움과 슬픔, 달콤함과 씁쓸함이 공존하는 곳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하늘을 꽉 채우던,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노을처럼 말이다.





*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쓰다보니 길다. 비가 쏟아지니 말이 쏟아진다. 지고지순한 학수바라기 선미가 학수 뺨을 때렸다가 친구랑 싸울 땐 다칠까 조마조마해하고(그럴거면 귀한 학수 뺨은 어떻게 때렸대), 욕을 했는데 알고보니 반했던 게 재밌었다.
* 학수가 마주하지 못한 것들은 보이는데 내가 마주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 개인적인 명대사는 ‘라면 먹고 갈래’ 보다 결과적으로 학수를 관통해버린 ‘노을 보러 갈텨’.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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