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인 5] 페퍼톤스 정규 6집 [long way] 리뷰

페퍼톤스가 전하는 이별과 위로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끝나지 않은 여정
글 입력 2018.06.2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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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인 5]
페퍼톤스 정규 6집 [long way] 리뷰


페퍼톤스가 전하는 이별과 위로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끝나지 않은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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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페퍼톤스가 6집 정규 앨범 [long way]를 발매했다. 수록곡은 총 8곡으로 5집의 14트랙에 비하면 절반 가량으로 줄어든 셈이다. 앨범 발매까지 (중간의 라이브 앨범을 제외하면) 무려 3년 9개월이 걸렸다. 물론 그 동안 멤버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누군가는 아버지가 되었고(신재평), 누군가는 이름 대면 아는 예능왕 뇌섹남이 되었으니까(이장원). 하지만 그 시간이 마냥 아쉽지는 않다. 이번 앨범은 지금까지의 앨범 중 가장 많은 고민이 담겨있으며 완성도가 높은 앨범이기 때문이다.

페퍼톤스는 앨범 전반적으로 통일된 주제와 감성으로 힘있게 전개를 밀어붙인다. 제목 그대로 긴 여행, 여정의 출발과 회귀, 그리고 그 여정을 속의 순간을 담고 있다. 이 덕에 곡이 가진 개별적 화자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옴니버스 영화를 본 듯하다. 앨범의 끝에는 앨범 명과 동일한 'long way'라는 인스트루멘탈 트랙을 통해서 힘차게 이 모든 여정의 막을 내린다. 이 또한 한 장면의 영화 같아서 심지어 각기 다른 7명의 화자가 각자의 위치에서 어딘가로 나아가는 장면을 분할컷으로 담는 만화영화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타이틀곡은 1번 트랙 '긴 여행의 끝'이다. 쟁글쟁글한 기타 사운드와 신재평의 또랑또랑한 보컬, 어딘가 낙천적인 힘으로 힘차게 나아가는 밴드의 연주는 4집과 5집을 걸쳐 만들어낸 페퍼톤스의 상징 같은 사운드로 이 곡에도 알차게 담겨있다. '긴 여행의 끝'은 4집 타이틀곡 '행운을 빌어요'와 이어진다. 이는 앨범 프리뷰를 통해서도 유추할 수 있다. 베이스와 기타를 들고 소나무 숲을 지나 바다로 걸어가는 두 멤버는 결국 바다에 다다르고, 이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기타와 베이스를 들고 찍었던 4집 앨범 자켓과 이어지기 때문이다.

4집 타이틀곡 '행운을 빌어요'는 이별의 이야기다. 밝은 듯 들리지만 사실 가사에서는 떠나는 이에게 행복을 빌어준다. 그리고 6집의 '긴 여행의 끝'은 재회의 이야기다. '행운을 빌어요'의 화자가 '눈물은 흘리지 않을게 굿바이' 상대를 배웅했다면 약 5년이 지나 그 상대가 '낡은 배낭 가득히 담아온 긴 이야기'와 함께 다시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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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ARTH IS NOT MY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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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나긴 여정은 어쩌면 영영 알 수 없을 만큼 멀다. 앨범 전반으로 끊임없이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힌트는 스타워즈를 연상시키는 앨범 티저 영상, 타이틀곡 '긴 여행의 끝'의 뮤직비디오 속 우주복뿐만이 아니다. 뮤직비디오에 담긴 모스 부호는 'EARTH IS NOT MY HOME'이라는 문구이며, 이와 이어지듯 '할머니와 낡은 로케트(with 이진아)'의 화자는 지구인이 아니다. CD에도 우주 속 반짝이는 별들이 인쇄되어 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여행을 떠났던 시간과 거리의 아득함을 상상하게 되고, '긴 여행의 끝'에서 돌아와 멋쩍어하는 화자를 그리게 된다.

앞서 말했듯 이번 앨범에서 돋보이는 것은 하나의 주제의식이다. 5번 트랙 'c a m e r a'를 제외하면 모두 어디론가의 이동성 혹은 이에 관한 감정을 지녔고, 카메라는 여행의 순간을 포착하고 기록하는 매체라는 점에서 이러한 이동의 과정 속 일부가 된다. '긴 여행의 끝'은 돌아감, '카우보이의 바다'는 찾아감, '도망자'는 도망감, '할머니와 낡은 로케트'는 떠나감, '노를 저어라'는 나아감, '새'는 회귀로의 소망이다.

2번 트랙 '카우보이의 바다'는 한번도 바다를 본 적 없는 카우보이가 가슴 속에 푸른 바다의 사진 한 장을 품고 바다를 찾아 떠나는 여정의 노래다. 업스트로크가 강조된 기타 반주와 말 울음소리가 카우보이의 달려가는 기세를 멋지게 그려낸다. 페퍼톤스는 이 곡과 8번 트랙을 함께 강원고등학교 체육관에서 녹음하며, 이 과정을 KBS '건반 위의 하이에나'로 공개하기도 했다. 천장이 높아 탁 트인 곳에서 녹음을 하는 장면은 페퍼톤스의 사운드에 대한 욕심과 함께 그들의 낭만을 보여준다.

락 음악을 하는 페퍼톤스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3번 트랙 '도망자'가 가장 반가웠을 것이다. 5집의 'FAST'를 연상시키는 폭발적인 후주를 포함하여 비교적 긴 전주부터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달려간다. 이 곡은 정확히 특정 장면을 연상시킨다. 보컬에 울리는 듯한 이펙트를 줌으로서 어딘가 좁은 공간을 통과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그리고, '쉿, 조심해' 속삭이는 이장원의 보컬은 서스펜스의 상황을 더한다. '우린 여기까진 가봐, 돌이킬 수 없는 걸'이라는 절규는 상황에 긴박감을 더해 듣는 이로 하여금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한다. 음악을 통해 장면을 완성한, 한 편의 영화같은 연출이다. 6집 앨범에서 가장 락킹한 곡이고 가장 공감각적으로 섬세한 곡이다.

락 음악이 아닌, 과거의 천진난만함이 그리운 팬들이라면 5번 트랙 'c a m e r a'의 순수함을 좋아하지 않을까. 곡 설명에 따르면 'c a m e r a'는 오래된 카메라 속 사진 한 장에 일순간 떠오른 기억들, 그 묘한 기분을 표현한 곡이다. 컴퓨터로 프로그래밍하여 사람이 연주하기 거의 불가능한 이 트랙의 피아노는 아이가 마구 뚱땅거리는 피아노처럼 화음이 맞지 않는다. 그래서 더 사랑스럽다. 명쾌하게 울리는 스네어 드럼과 꾸밈없이 끊어 부르는 신재평의 보컬, 통통 튀는 피아노가 더해져 아이의 순수함이 느껴지는 곡이 되었다. 구성 면에서 보면 기존 세팅에 트럼펫, 퍼커션을 더하고 박수 소리와 손가락 스냅 소리로 박자를 쪼개는 등 다양한 색다른 시도를 선보인 곡이기도 하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다른 곡이지만 뜬금없다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앨범에 흐르는 일관된 주제의식과 그간 보여준 페퍼톤스의 낙천성 덕분일 것이다.

이 밖에도 수록곡 하나하나에 담긴 각각의 개성이 뚜렷하다. '할머니와 작은 로케트(with 이진아)'에는 지구를 떠나는 할머니가 사랑했던 이에게 정체를 드러내며 작별을 고하는 SF 영화 같은 장면이 담겨 있고, '노를 저어라'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가 담겨 있다. '새'는 이번 앨범 속에서 슬픔과 혼란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곡으로, 지친 마음과 함께 이상적인 공간(따뜻한 남쪽 나라)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노래한다. 5집의 '근데 왜'에서도 이장원은 나아지지 않는 지금에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말했었다. 하지만 '새'에서는 '근데 왜'에서 느껴졌던 장난스러움이 빠져 그 감정의 농도가 더욱 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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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톤스의 음악은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1-2집의 일렉트로니카를 거쳐 3집의 과도기, 그리고 4-5집의 밴드사운드까지 그들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내리는 눈으로 겨울의 사업을 꿈꾸던 낙천적인 청년들은 이제 기쁨, 흥분 같은 밝은 감정뿐만 아니라 슬픔, 그리움, 위로 등의 보다 깊은 감정을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앨범 전반에 담긴 작별의 인사와 '끝'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신재평은 유독 이번 앨범 발매 이후 '마지막 앨범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자. 타이틀곡은 재회의 이야기다. '할머니와 낡은 로케트'에서는 '늘 무표정한 이상한 아이를 이토록 긴 세월 좋아해줘서 고마워'라 말한다. 그리고 앨범은 모두 어딘가로 끊임없이 나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이는 감사 인사이자 앞으로의 나아감에 대한 다짐 혹은 약속이다. 계속해서 이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페퍼톤스가 음악으로 보여준 서사와도 일치한다.

우울증을 위한 뉴테라피 2인조 밴드'라는 별명에서 보이듯 낙천적인 즐거움을 바탕으로 노래하던 아티스트는 주제로는 공감과 위로까지, 장르로는 락까지 영역을 넓히며 성장했다. 앨범 발매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페퍼톤스는 백발 할아버지까지 노래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러니 타이틀곡 제목은 '긴 여행의 끝'이지만 페퍼톤스의 여정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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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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