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의 사색 [기타]

글 입력 2018.06.08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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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할 일은 많은데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은 날이다.

그런 날이 있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진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그런 날.
마음이 감기에 걸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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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에 걸려도 약을 챙겨 먹고 푹 쉬고 나면
몸이 나을 걸 알기에 약을 잘 챙겨 먹는 것처럼
이런 날에는 잠시 할 일들을 멈추고 책을 꺼내 읽는다.
특별한 책을 골라 읽지는 않는다.
소설도 읽고, 에세이도 읽고, 시집도 읽지만
오늘 읽은 책은 김수현 작가님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이다.

딱히,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극적인 울림을 주기를, 그래서 내 마음을 치료해주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그냥 책을 읽는 행위 자체로부터 마음의 안정을 느낄 뿐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물 흐르듯 활자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다 톡. 돌부리에 걸리듯 잠시 생각을 하게 만든 내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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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어른이 될 것


..
김현철 정신과 의사는 헝가리, 일본, 우리나라의 공통점으로
'방황이 허락되지 않은 사회'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 세 나라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는데
바로 높은 자살률이다.
우리나라에서 방황은 인생을 망치는 지름길이자 금기에 가깝다.
오죽하면 방황 청소년이라는 말까지 있을까.
대학 진학, 취업,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등 일련의 과정을
[적령기]라는 데드라인에 맞춰 완수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잠깐의 방황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지 못했다간, 실망하는 부모님과 실패자로 규정짓는 수군거림과
사회적 고립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기 어렵다.
.
(줄임)
.
많은 이들은 높은 행복도를 보이는 북유럽 국가를 이상적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레오 보만스에 따르면 북유럽 국가들의 높은 행복감은
높은 소득이나 복지시스템의 결과가 아니라,
넘치는 자유, 타인에 대한 신뢰, 다양한 재능과 과심에 대한
존중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반대 지점에 있다.
자유의 박탈, 획일적인 삶의 강요, 타인에 대한 불신.


- 김수현,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 방황하는 어른이 될 것>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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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남들이 다 하는데 하지 않는 것. 혹은 남들은 다 하지 못하는데 할 수 있는 것. 이것들은 특별하게 여겨지며 대단한 일 등으로 평가받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다섯 살짜리 꼬마 아이들이 눈앞에 놓인 과자를 참지 못하고 먹을 때 이를 참을 수 있는 것. 혹은 남들은 구사하지 못하는 아랍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것 등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남들이 다 하는데 하지 않았던 것. 그래서 칭찬을 받았던 것 중 하나가 '방황'이었다. 이 이야기를 하면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 안 하실걸?"이라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듣는데, 부모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이니 이에 대한 논란은 넘어가도록 하겠다. 방황을 인생을 망치는 지름길이자 금기로 여기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방황'이 허락되는 시기는 아마 사춘기일 것이다. 방문을 좀 쾅 닫고 들어가도, 학교에서 말썽을 부려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다는 이유로 이러한 것들이 허용되곤 한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10대가 겪고 넘어가는 시기이지만 나는 딱히 '사춘기'라고 부를 만한 시기가 없었다. 나는 남들이 보기에 속 썩일만한 일을 만들지 않고, 선생님과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으며, 꽤 괜찮은 성적으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름 명문대라고 불리는 대학교에 진학한 착실한 학생이었다.

어쩜 그렇게 참하고, 착실하냐고,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시겠다고 해주는 주변인들의 칭찬 때문이었을까. 옛날엔 이게 대단한 건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돌아봤을 때, 들었던 생각은 하나였다. 남들이 다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 남들이 다 하는데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특별한 게 아니라 이상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

착한 딸이자 똑똑한 학생으로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나는 나로 살고 있었는지"를 물었을 때, 슬프지만 자신 있게 아니라고 답할 수 있었다. 참하고 착실했던 과거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좋아하는 것보다는 주어진 일, 해야 하는 일들을 해나가는 삶을 살았다. 어쩌면 청소년의 방황은 어른에 대한 무조건적 반항이 아닌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로 나아가는,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을 텐데 10대의 '나'는 이러한 과정을 겪지 못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방황 좀 하겠습니다.

"아, 오늘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합리화하는 건가"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방황 한 번 해봐야지 싶다.
해야 하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먼저 생각하는
그러다가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에 도달하는 그런 방황 말이다.


[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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