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단어'에 관하여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글 입력 2018.05.25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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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많이 한 일은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예술 이론을 전공으로 삼은지 3년이 되자 대부분의 수업은 비평문을 써오라는 과제를 주었고, 덕분에 나는 매 주 노트북을 붙잡고 지금처럼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소설책은 많이 읽었지만 전문적인 글쓰기를 연습하는 과정은 다르기도 많이 달랐다. 글의 구성, 문체, 내용을 풀어나가는 방식도 중요하지만 가장 어려웠던 것은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특히 예술 이론에서 많은 단어들은 영어나 유럽어에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고, 한국어로 번역한다 해도 그 의미를 잘 담기 어려워 한국인인 내가 공부하고 글을 쓰는데 난점이 많았다.
또한 계속해서 생겨나는 새로운 예술들과 이에 뒤따라오는 많은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개념들을 포함하기에 기존의 단어들을 활용하는 것은 분명 부족함이 있다. 그래서 예술계에서는 이미 그러했듯 많은 단어들을 새로 만들어낸다.

그러나 새롭게 만들어진 단어들은 처음엔 아무도 알 수 없다. 많이 쓰이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잊혀지기 마련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차연(Différance)라는 단어를 만들어 글을 썼는데, 교정 편집자가 이를 오타로 알고 모두 Différence로 고쳤다는 일화가 있듯이 말이다. 언어란 소통하기 위한 것이기에 소통이 안되면 그 기능을 상실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어떤 단어가 생성되고 확산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어떤 단어들은 대중으로부터 시작해 쉽게 퍼지곤 하지만, 아닌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단어들은 사전 한 구석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불과 십 수년 이내로, 디지털 사전이 익숙해지면서 종이로 된 사전은 점점 쓰이지 않게 되었다. 모르는 단어를 찾는 데에는 인터넷 검색이 훨씬 편하겠지만, 새로운 단어를 발굴하는 데에는 종이 사전만큼 좋은 것이 없다.
한 예로 어릴 적 몇몇 소설가들이 자신의 묘사를 더 정확한 단어로 표현하기 위해 종이 사전을 옆에 두고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나도 집에 있는 거대한ㅡ성인 남자도 전체를 한 번에 들 수 없을 정도의ㅡ 국어사전을 펼쳐보았었다. 초등학교 6학년의 나에게 꽤나 놀랐던 점은, 보통의 영한 사전의 5배가 넘는 웅장한 사전에 내가 알고 있던 단어는 10%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보았던(읽었다고 말할 수 없다) 한글 학회의 <우리말 큰사전>도 현재는 수정하고 추가해야할 부분이 차고 넘칠 것이다. 언어의 자의성, 사회성, 창조성은 세상에 무궁무진한 단어를 내놓는 이유가 되고, 작년엔 없었던 말이 올해 국어원에서 공식으로 등록되는 계기가 된다.

이 쯤에서 우리는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국립국어원은 기계나 AI가 아니라 사람이다. 이들은 어떻게 사전을 만드는 걸까? 어떤 분류 기준과 등록 과정을 통해서?
물론 궁금하긴 하지만 우리가 그 복잡한 체계를 하나하나 뜯어보고 싶진 않을 것이다. 책을 볼 여유도 흥미도 없는 이 시대에서 말이다. 고맙게도 코리 스탬퍼는 사전 편집자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에세이로 담아 출간했다. 원제로 라는 이름의 이 책은,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꽤나 재미있을 것 같다. 공개된 몇 줄의 내용 중 이런 부분도 있다.


내가 『메리엄 웹스터 대학 사전』 11판을 위해 'take'를 손보는 데 한 달 가량이 걸렸다고 말했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학자 한 사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와." 피터 길리버가 입을 열었다. "저는 'run'을 수정했지요." 그는 조용히 말하고, 미소 지었다. "아홉 달이 걸렸습니다." 테이블 곳곳에서 "세상에!" 하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220p


이 책은 사전은 아니지만, 단어에 대해서, 그와 밀접한 글쓰기에 대해서 이해하는 하나의 과정이 될 것이다. 문법에 관하여, 정의에 관하여, 어원과 발음에 대하여 등 흥미를 끄는 목차들을 보니 영어로 작성된 이 책을 역자가 어떻게 번역하였는지도 궁금해진다. 이 책, 많은 글쓰는 이에게 공감과 도움을 가져다 줄 책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WORD BY WORD

평면 표지.jpg
 
지은이 코리 스탬퍼
옮긴이 박다솜
펴낸곳 윌북
가격 16,500원



[황인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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