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계절이 떠나가는 봄, 밤에 [기타]

글 입력 2018.04.30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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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하늘이 흐르며 별자리가 바뀔 것이다. 소리없이 또 다시 여름이 오고 있다. 오롯이 푸르른 계절을 위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달리 말해보면, 끝끝내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봄의 일들이 스치듯 또 우리를 지나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선명하게 한 계절이 떠나가고 있다. 유독 짧았던 올해의 봄날들, 어느덧 벚꽃 잎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고 말았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봄과 이별하고 있다.

 다만 사람의 이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우리는 봄과 다시 만날 것을 따로 기약하지 않는다. ‘순리’라는 것이 계절의 일에서라면 반드시 영원할 것이므로, 그리고 그렇다면 이 다음에도, 그리고 그 다음에도 이 계절은 다시 올 것이므로. 그래서 오늘 적는 나의 작은 글은 내가 그 아득하고도 짧았던 봄밤을 지나가는 길에, 혹은 봄이 꿈결처럼 나의 삶을 스쳐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러 쓰는 방명록과 같은, 두서 없는 단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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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는 일은 봄과 같다고

 요즈음의 우리 가족들은 모두 저마다의 동심원을 하나씩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들어가 서 있다. 다섯 개의 원들이, 다섯 개의 과도기가 서로 맞물리면서 한 집에서 살아가고 있다. 모두는 네모가 아닌 탓에 서로 모서리에 찔려 상처 받지 않고, 또한 상처를 주지도 않으면서 사이 좋게 맞물려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암묵적으로 서로의 동심원 안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안다. 뭉뚱그려 말하자면 대체적으로 가족의 무게, 삶의 무게. 뭐 이런 것들이다. 입시와 취업, 가족과 타인에 관한 일들은 누군가가 삶을 사는 가운데 저절로 둥그런 나이테를 그려낸다. 누구나 겪어야 할 일들, 그러나 예외없이 힘든 일들. 그건 곧 여든을 넘긴 할머니와, 중년의 한 가운데를 지나가고 있는 부모님과, 청춘의 가운데에 놓여진 나와, 곧 미숙한 어른이 될 동생의 일들이다.

 며칠 전, 마주 앉아 늦지 않은 저녁밥을 먹었을 때 할머니는 종종 그러하셨듯이 ‘사는 일’에 대해서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밥을 먹으며 그것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할머니는 자신만의 오래된 언어로 오늘날의 ‘사는 일’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그것을 곧 알아듣기 쉬운 보편적인 문장으로 옮긴다면 이러하다. “사는 일이 어째 점점 더 어려워 지는 것 같다. 그렇지만 어렵다고 해서 무서워하지는 마라. 사는 건 꼭 봄철 지나가는 것만 같으니까.”

 나는 그날 밤이 되자, 그 문장을 다시 나의 언어로 적당히 옮겨 온 가족들에게 들려주었고 곧 다섯 개의 원들은 둘러앉아 잠시 서로의 선들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에게 사는 것은 곧 ‘봄의 일’이 되었다. 물론 할머니께서 말씀하시는 그 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온전하게 깨닫는 데에는 아주 오랜 날들이 필요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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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떠나는 일들, 사소한 응원들

 올해의 나에게는 같은 시간에서 봄을 함께 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부쩍 많아졌다. 그들은 서로 다른 시간, 그리고 다른 공간에서 사는 멋진 경험을 하고 있다. 어떤 친구는 미국에서, 또 어떤 친구는 유럽에서, 그리고 중앙아시아에서 각자의 봄을 맞이했고 떠나 보내고 있다.

 요즘 나의 사는 낙 중 바로 하나가 그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주고 받는 것이다. 통화를 걸어 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도록 일상을 공유하고 웃고, 떠든다. 통화를 하며 나는 이어폰 너머의 공기를 들이마신다.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을 보기도 한다. 내가 일상을 잡고 휘두르는 것인지, 아니면 일상이 나를 잡고 이 곳 저 곳에 채이게 하는지 도통 모를 요즈음의 날들에, 친구들과의 통화는 분명 크나큰 즐거움이다.

 익숙한 곳을 떠나 도착한 머나먼 곳에서, 혼자 낯섦을 견디며 발을 디디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것이 하루이든, 한달이든, 아니면 일년이든 그 자체로 힘들고 고독한 일이다. 그건 운 좋게 곁에 누군가가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인 일이다. 인간이 고독에 잠기고 나면 마치 태어날 때부터 세상에 ‘홀로’ 존재해 온 것과 같은 기분을 곧장 느끼게 된다. 중요하지만, 어려운 감정이다.

 특히 미국에서 지내고 있는 A는 요새 들어 부쩍 때로는 이유가 있는, 또 때로는 이유가 없는 외로움에 휩싸여 있는 듯 보였다. 그런 친구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시간이 날 때마다 함께 일상을 공유하고 내가 담을 수 있는 최대한의 진심을 덧붙인 위로를 건네곤 하는 것이다. 서로 밤낮이 뒤바뀐 다른 시간 속에 있으면서도 우리의 대화에는 쉬지 않고 사소한 응원들과 위로들이 오간다. A가 맞이하는 밤이 건넨 응원이 나의 아침에 닿아 용기가 된다. 또 내가 맞는 아침이 주는 위로는 A의 밤에게 일말의 힘이 되기도 할 것이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이렇게 우리는 응원과 위로를 방법으로 계절이 지나가는 일을 버티고 있다. 나는 멀리 있는 친구들에게서 오늘도 ‘떠나가는 일’을 배우고, 사소한 응원과 위로를 전하고, 또 다시 사소한 응원과 위로를 받는다. 아득했던 봄을 스쳐 보내는, 우리만의 생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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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도 또 어떤 사람은 가고, 어떤 사람은 온다고 한다. 내가 매순간 그러하듯이, 내 곁의 많은 이들이 각자의 배낭을 꾸린다. 각자의 땅으로 간다. 혹은 오기도 한다. 학교로, 군대로, 직장으로, 곧 인생으로. 끝없이 끝이 없이 삶의 바다로. 그리고 나는 점점 그 모든 이들에게 넉넉한 마음으로 위로를 건넬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 진다. 그들은 결코 ‘영영’ 떠나가는 것이 아니므로. 그들이 떠나간다는 것은, 곧 계절의 순리와 같은 의미일 테니까. 적어도 나는 그것을 아직까지 믿을 줄 알기 때문이니까 말이다.





(사진 제공: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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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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