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시 읽는 수능 국어지문 - '패강랭'과 '복덕방'_이태준[문학]

시대와 세월에 뒤쳐진 자들의 비애
글 입력 2018.04.2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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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세월에 뒤쳐진 자들의 비애
「패강랭」과 「복덕방」 _이태준


이태준의 작품들은 중·고등학생이 읽어야 하는 단편소설집 및 교과서에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이태준의 작품 중에는 단연 단편소설이 돋보이는데, 그 중「패강랭」과 「복덕방」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자 한다. 패강랭은 식민지 치하 예술가의 고뇌를 드러내는 이야기이며, 복덕방은 가난에 시달리는 한 노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두 소설의 주인공들은 시대와 세월에 뒤쳐진 이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패강랭」의 현은 소설가로, 오랜만에 고향인 평양에 와 김과 박을 만나게 된다. 평양에 도착한 현은 고향을 떠나기 전 퍽 아름답다 생각했던 여자들의 머릿수건 문화가 십년만에 사라진 것을 보게 된다. 현은 편리성을 이유로 사라져버린 머릿수건이 안타깝다. 한편 현과 김과 박은 술을 먹다가 옛날에 함께 놀았던 기생 ‘영월’을 만나게 된다. 김은 돈만을 쫒는 인물로 현은 김과 대화를 통해 예술을 쓸모없다 여기는 김에게 화가 난다.
 
“흥! 지기 싫어서가 아니라 기생이란 조선에 국보적 존잴세. 끄러안구 궁댕이짓이나 허구, 유행가 나부랭이나 비명을 허구, 그게 기생들이며 그게 놀 줄 아는 사람들인가? 아마 우리 영월인 딴쓸 못할걸세.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할걸?”
“이 자식? 되나 안 되나 우린 이래 봬두 예술가다! 예술가 이상이다. 이자식······.”

현은 영월을 동류의 목적을 추구하는 예술가로서 바라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10년 전 만난 영월을 기억하고, 그녀에게 애정을 가지는 듯하다. 그러나 동류의 목적을 추구하는 존재라 생각했던 기생 영월 역시 변해있었다. 현의 기대와는 달리 영월은 시대의 요구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손님이 원한다면 평양말 대신 서울말을 쓰고, 유행가에 맞추어 댄스를 춘다. 영월에, 실속을 차리는 글을 쓰라는 김의 말에 현은 분노하고 대거리를 하지만, 밖에 나와서는 ‘이상견빙지······ 이상견빙지····(서리를 밟을 때가 되면 얼음이 얼 때도 곧 닥친다는 뜻으로, 어떤 일의 징후가 보이면 머지않아 큰일이 일어날 것임을 이르는 말)’ 읊으며 씁쓸함을 느낀다. 현은 돈보다는 아름다움을 쫒는 종류의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그에게 방향전환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된다 말한다.

복덕방이라는 공간은 안 초시, 서 참의, 박희원 영감이 모여 화투장도 떼고, 담배도 피고, 술도 마시는 곳이다. 이들은 모두 세월에 뒤쳐진 이들이다. 달리 할 일도 없어 그저 복덕방에서 시간만 죽인다. 서 참의는 합병 전에 무관이었지만, 지금은 복덕방 영감으로 누가 사글셋방 하나 보여 달라고 하면 네-하고 따라 나서야 하는 만인의 심부름꾼이 되었다. 박희완 영감도 대서업 허가를 기다리며 복덕방에서 속수국어독본이나 읽고 있는 존재이다. 세 늙은이 중 가장 초라하며 중심적으로 다루어지는 인물은 안 초시이다. 안 초시는 셔츠 한 장, 담배 한 갑을 사기 위해선 고민을 자존심을 굽혀야 할 만큼 돈에 쪼들리는 인물이다. 게다가 안 초시는 이전에 사업을 하고 넉넉하게 살았기 때문에, 가난으로 인해 느끼는 수치와 절망을 더욱 크게 느낀다. 기필코 다음 추석엔 녹두전을 부쳐 먹겠다는 일념으로 박희완 영감이 전해준 축항지에 딸의 돈으로 투자를 하지만, 결국 사기를 당하며 파국을 맞는다. 친자 간의 정까지 잃은 안초시는 자살을 택하고 만다. 오십 전에 일희일비했던 생전과는 달리 안 초시의 영결식은 제법 잘 차려져있다. 서 참의가 딸을 협박하여 죽어서야 호사를 누리는 안 초시의 말로는 그의 죽음을 더 서글프게 느끼게 한다.

현과 안 초시는 시대와 세월에 뒤쳐진 사람이다. 현이 쓰는 글은 사람들이 보아주지 않으며, 안 초시는 복덕방에서 화투나 떼는 쓸모없는 늙은이다.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그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은 도태되는 법이다. ‘돈’이 절대 가치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아름다움은 소용이 없고 친자 간의 의리도 배추 밑동 자르듯 한다. 「패강랭」과 「복덕방」의 주인공들은 이에 발맞추지 못했으므로 현과 안 초시의 비애는 해결되지 못하며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김'과 안초시의 딸 '안경화'처럼 현실에 잘 적응할 줄 아는 이들의 삶은 바람직한가? 이들은 시대의 흐름에 감각을 곤두세우고 이를 맹목적으로 쫒는다. 작가는 시대에서 잘 살아남아 성공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인 그들을 결코 긍정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이태준은 「패강랭」과 「복덕방」에서 시대와 세월에 뒤쳐진 두 인물을 연민하고 있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는 내팽겨쳐지는 이 시대를 안타까워 하면서.


[김새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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