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타포르테] 05. 못생김이 전성하는 시대

고프코어, 패션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다.
글 입력 2018.01.3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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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s/s paris fashion week ‘Ugly Shoes’


 신발장 한 편에 놓인 철 지난 운동화, 울룩불룩 투박한 아버지의 등산화, 재고가 남아 아울렛 매대에 마구잡이로 진열된 촌스러운 운동화. 혹시 버릴까 말까 고를까 말까 고민한다면, 일단 과감히 신어보자.

Why?

 드디어 못생김이 전성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혹시 ‘놈코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놈코어는 Normal+Core의 합성어로,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스타일’을 일컫는 패션을 말한다. ‘무심한 듯 시크하게’라고 불리던 바로 그 패션이다. 아웃도어를 입어도 인 듯 아닌 듯 착용한 스타일말이다.

 그런데 ‘놈코어’의 연장선상이자 대척의 개념인 ‘고프코어(Gorpcore)’가 등장했다. ‘Gorpcore’는 ‘어글리 시크(Ugly Chic)’, ‘프리티 어글리(Pretty Ugly)’라는 단어들로 설명할 수 있다. 즉 못생긴 디자인이 시크하고, 못생긴 디자인이 예쁘다는 것이다. 양말에 스포츠 샌들, 정장바지에 목양말과 등산화를 착용하는 외출 차림인 ‘아재패션’과 비슷한 맥락이다.

 고프코어에 숨겨진 의미도 재미있다. 고프는 그래놀라, 오트, 건포도, 땅콩의 약자인 ‘G.O.R.P’로 불리기도 하고, 잘 익은 건포도와 땅콩(Good Old Raisins and Peanuts)의 줄임말이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두 의미 모두 하이킹이나 사이클링을 할 때 챙겨가는 견과류들을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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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는 “저걸 누가 입어?” 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코프코어 스타일도 나름의 매력을 갖고 있다. 어느 한 군데를 우스꽝스럽게 과장하여 표현한 ‘어글리 시크’의 의미에서 한층 더 나아가, 마치 어디서 본 듯한 촌스러운 패션을 ‘재해석’하여 멋스럽게 표현하는 것이 ‘고프코어’의 완성이다. 개성이 있다면 못생겨도 매력적이라는 거다.

 도대체 유행의 선두는 누가 이끌었을까? 대중들이 말하는 ‘아재패션’에는 썩 긍정적인 의미가 들어가 있지 않은 것 같다. 아재패션이 고프코어의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 있게 된 데는 아마 디자이너들의 영향이 컸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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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작은 '발렌시아가'의 남성복 패션쇼에서 찾을 수 있었다. 메인스트림에 자리 잡은 브랜드들이 매 분기별로 선보이는 컬렉션은 당연히 기대가 클 수밖에 없는데, 2017 f/w를 기점으로 발렌시아가가 제시했던 컬렉션들은 자칫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는, 그러면서도 레트로 무드를 한껏 뽐낸 안티패션의 향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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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가 17 f/w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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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가 18 s/s 캠페인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스타일은 어딘가 웃겨보일 수 있다. 아웃도어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아재패션을 어쩐지 발렌시아가가 ‘모방’하는 격이다. 하지만 모방은 또 다른 창작을 이끌어 낸다. 그들은 패션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 또 하나의 스타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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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발렌시아가' 검색 결과


 어글리 슈즈부터 볼캡, 통이 넓은 청바지, 힙색이라 불리는 ‘패니  팩’까지.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눈에 익은 것들이다. 이는 셀럽들이나 인스타 인플루언서들의 개인 SNS 계정에 오르내리며 입소문을 타고 유행으로 번지기도 했다.

 ‘이게 이렇게나 유행한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없어서 못 판다는 정도라니, 고프코어 패션에 있어서만큼은 발렌시아가가 원조이자 주류라는 인식을 떠오르게 할 만큼 패션계와 대중에 신선한 충격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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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트로 무드와 맞닿아 있는 고프코어 스타일은 구찌와 베트멍 브랜드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원색을 과감히 조합하여, 맥락 없고 촌스러운 코디네이션이 돋보인다. 사람들은 ‘못생김’ 또한 그 자체로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보다보니 익숙하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는 못생김, 추함의 재발견이자 반란이다.

 고프코어 패션은 예전에 없던 스타일이기에, 그것만으로 새로운 세대로의 전환을 이끌었던 것이다. 과연 신선하지 않은가? 전에 볼 수 없던 평범하지 않은 못생긴 옷들이 새로운 시도와 트렌드의 변혁을 만들어내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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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조'의 고프코어 패션


 이러한 취향을 두고 어떤 이들은 아름답지 않다며 고개를 젓기도 한다. 하지만 저마다 갖고 있는 각자의 ‘미적’ 기준은 다르지 않던가. 우리는 모두 ‘나’ 자신만의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움의 기준은 규정되어 있지 않다. 가치는 상대적이고 모호하며, 늘 변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생각했을 때 재밌는 패션, 내가 입었을 때 편한 패션, 내가 시도하고 싶은 패션이면, 그걸로 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유행에는 늘 옳고 그름이 없었다.

 ‘못생긴 것’ 또한 못생겨 먹은 대로 각각의 매력이 있을 것이고, 이러한 유행 현상은 호와 불호의 개념에서 나아가 이것이 ‘틀리다, 아니다’ 보다는 ‘다르다’는 취향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못생김이 전성하는 시대에서, 좀 더 확장하여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어떤 것이든 그 존재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발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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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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