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공인, 죽음, 자살 - 샤이니 종현을 추모하며 [연예]

글 입력 2017.12.19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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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시작에 앞서 몇 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째로, 이 글은 종현을 포함해 떠나간 공인들에 대해, 또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모든 사람들에 대해 감히 왈가왈부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님을 알아주길 부탁드린다.

둘째로, 이 글은 민감한 주제를 다루기에 거부감이 느껴진다면 돌아가 주시길 죄송한 마음으로 말씀드린다.

셋째로, 이 글에 부적절한 말, 고인들에게 예의가 지켜지지 않은 말이 있다면 거부감 없이 말씀해주시길 부탁드린다.

마지막으로, 만약 이 글이 상처가 되거나 마음에 폐를 끼치는 글이 되더라도 민감한 주제를 처음 다루는 필자의 부족함을 조금은 너그럽게 봐주시기를 부탁드린다. 그리고 그렇게 느낀 감정들에 대해 사과를 드린다.





 인기 검색어들이 샤이니의 종현을 향하고 있다. 음악과 영상으로 만날 수 있으면 항상 있을 것만 같았던, 그래서 당연히 살아있다고 생각했던, 그러기에 누군가에게 웃음과 행복이 될 수 있었던 아이돌의 죽음. 이제는 기억 속에서만 이야기될 그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어떤 존재가 되는 것일까.

 최근에 접했던 공인의 죽음이 언제였는지 생각을 해보았다. 메이저리그를 즐겨보는 사람으로서 기억 속 가장 최근의 죽음은 로이 할러데이의 죽음이다. 메이저리그를 접하게 해주었던,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 중 처음으로 좋아했던 전설적인 투수의 죽음을 처음 접했을 때에 몇 번이나 기사를 확인했다. 바로 그 1주일 전쯤에는 배우 김주혁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밥을 먹다가 같이 먹던 친구에게 소식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인들의 죽음은 죽음이 우리의 곁에서 떠나지 않도록 붙잡는다. 인간이라면, 생물이라면 죽음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죽음을 접하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아직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나이도, 몸도 아닌 필자이기에 그런 것 일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설사 죽음을 접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지라도 이별은 언제나 마음에게 비용을 청구한다. 그러기에 죽음은 언제나 남은 사람에게 마음의 비용을 청구한다.

 애도는 살아남은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의 시간 축에 남아있는 사람은 과거에 있다가 없어진 존재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 빈틈을 자신의 기억으로 땜질한 다음 일상에 잘 숨어들어갈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애도가 아닐까. 공인들의 죽음은 특별하다. 사실 공인들과 우리와 직접적인 접점은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 속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공간은 크다. 그러기에 그 빈틈을 채우는 데 많은 기억들을 요구한다. 팬이 아니더라도 그렇다. 필자는 샤이니라는 그룹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었고 따라서 그 멤버인 종현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없었지만 필자에게 종현은 샤이니라는 그룹의 멤버로, 그리고 라디오 프로그램 ‘푸른밤’의 DJ로 남아있다. 샤이니의 노래가 들릴 때, 푸른밤을 들을 때 느껴지는 그 빈자리를 기억으로 채워나갈 것이다. 그렇게 잊고 있다가도 불현 듯 빈틈을 채우기 위한 애도를 하게 될 것이다.





 자살. 스스로 세상의 시공간축에서 벗어나는 길을 택하기까지의 시간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죽음 직전의 그 사람이 상상되면서 가슴이 고통스러운 죽음들이 있다. 세월호 소식을 들었을 때엔 들어오는 물과 다가오는 죽음을 보면서 느꼈을 공포에 질려버렸다. 2015년 파리 테러나 미국의 총격사건들을 들을 때도 그랬다. 옆 사람이 죽어가는 광경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극한의 공포는 상상 속에서 나를 묻어버렸다. 자살들도 그렇다. 그때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의 시간을 보낸 것일까, 새로운 시간들이 계속 펼쳐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웠기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 그러기에 자살을 접할 때 느껴지는 상상 속 공포는 위의 두 사건과 비슷하다. 죽음이 바로 앞에서 다가오는 공포를 그들은 다가오는 미래에서 느낀 것이 아닐까. 죽을 만큼 힘든 시간이 계속 펼쳐져 있다는 공포에 그래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 감히 그런 기분을 알 것 같다고 말할 수가 없다. 살아있다는 것이 죽음과 같은 극한의 감정을 어떻게 공감할 수 있을까. (자살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살까지 이르도록 만든 그들 속의 공포에 대해 가슴 아파하는 것임을 알아주기를 부탁드린다.)

 언제나 있을 것이라고 믿어지던 아이돌의 자살이기에 그 공포가 더 아프게 느껴진다. 우리의 기억 속에 그가 있을 동안 우리는 그의 마음에 무엇을 해주었던가. 비록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더라도 기억 한편에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이기에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우리가 그의 공포를 왜 알아주지 못했는가. 알 수 없었음에도 그런 공포를 알아주지 못했음이 가슴 아프다. 그렇게 공감할 수 없는 것을 공감하지 못했음에 사과를 표하며 애도를 표한다.

 남아있는 사람으로서 조의를 표한다. 애도를 한다. 그 빈칸을 기억으로 메꾸고 일상 속에 잘 숨어들어갈 때까지 기다린다. 비단 샤이니 종현뿐만 아니라 모든 빈칸에 그렇게 하려 한다. 특히 이번 기회를 빌어서 스스로 삶을 저버린 사람들의 마음에도 아픔을 표한다. 그리고 더 이상은 그렇게 아픈 사람이 없기를, 삶이 죽음의 공포와 같다고 느끼는 사람이 없기를 기원해본다. 그리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리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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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MBC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김찬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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