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담(畵談)] 제 2.5 화(畵) : 슬픔, 다르게 화(化)하다

글 입력 2017.11.05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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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우리는 유리처럼 나약해



우리는 유리처럼 나약해 곧잘 깨져서는 서로를 할퀴네
절망처럼 검은 밤이면 서로의 체온 속을 파고들면서도

덩굴처럼 얽혀서 가시 돋친 꽃을 피우지
상처 입고 상처 입히면서
눈물을 먹고 자라는 가시 돋친 꽃의 이름을
행복이라 부르지
행복은 아름다워

서로의 품 안에서도 우리들은
외로워서 괴로워서
언제나 누군가가 어딘가가 무언가가
그리워서 두려워서
때로 노래가 사라지고 깊은 어둠이 오면
아무도 아무것도 남지 않고

우리는 유리처럼 나약해
곧잘 깨져서는 자신을 할퀴네
그저 한 숨의 위안을 얻으려
가장 소중한 것을 내보이며 웃네

미로처럼 얽혀서 어디 서있는지는 몰라도
살아있으니까 살아가고
언젠가는 무언가를 찾으리라
자신을 위로하며 매일을 이어가지
인생은 아름다워

- 김윤아 ‘유리’ 가사 일부





1. 외로움 : 에드가 드가, 압생트


언제나 누군가가 어딘가가 무언가가
그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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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gar Degas, Dans un café(L'Absinthe), 캔버스에 유채, 1875-1876 >


 술잔을 앞에 두고 있는 한 여자. 초점을 잃은 눈동자, 어딘가 허술해 보이는 옷차림, 축 늘어져있는 어깨, 힘없이 벌어진 두 발. 옆에 앉아있는 남자와는 처음 만난 걸까?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사이인 걸까? 분명한 것은 저 거리감을 좁힐 의사가 양쪽 모두에게 지금은 없다는 것. 여자는 앞에 놓인 압생트를 마실 것이다. 술기운이 오르면 그녀는 눈물을 흘릴까? 옆에 있는 남자에게 말을 걸까? 술 취했을 때의 행동은 모르겠다. 다만, 술이 깼을 때 그녀는 여전히 외로울 것이다.

 에드가 드가는 19세기 후반 유럽 도시의 모습을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근대화 시대의 도시인들 중 일부는 그림의 남녀처럼 저렇게 구석으로 몰려있었을 것이다. 당시로서는 단어조차 생소했을 ‘산업혁명’의 이름 아래 부(富)를 꿈꿨건만, 여전히 외로운 인생 속에서 그들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바로 옆의 사람에게서조차 위안을 꿈꾸지 않는 지독한 외로움이 여자의 얼굴에 서려있는 듯하다.

 압생트는 프랑스에서 많이 마셨던 술이다. 주조에 사용된 향쑥에 포함된 성분 때문에 상습적으로 마실 경우 환각을 비롯한 부작용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문제가 있을 때 술을 찾는다. 해결이 아니라 감정의 해소를 바라고 찾는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감정은 경계가 흐려지고 과도한 분출이나 망각을 통해 ‘잠깐’ 무뎌진다. 술에서 깨어나면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은 채 나를 보고 있다. 술이 깼을 때 그녀는 여전히 외로울 것이다.
 



2. 방황 : 움베르토 보초니, 마음의 상태Ⅲ - 머물러 있는 사람들


미로처럼 얽혀서 어디 서있는지는 몰라도
살아있으니까 살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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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mberto Boccioni, States of Mind Ⅲ(Those Who Stay), 캔버스에 유채, 1911 >


 초록에서 연상되는 숲. 그 사이를 헤매는 사람들의 형상.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아니, 자신들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는 것일까? 숲속을 헤매는, 숲속에 남겨진 이들의 불안은 뚜렷이 보이지 않는 그들의 표정과 일치되지 않는 시선에서 드러난다. 초록은 그 불안을 심화하며 그림 전반에 걸쳐 우울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움베르토 보초니는 이탈리아의 대표적 미래주의 예술가다. 미래주의는 진보, 속도, 역동성 등을 찬양하며, 과거의 예술을 부정하는 형태의 예술 사조였다. 미래지향주의적인 성향과는 반대로 이별의 정서를 회화에 담는 것을 보초니는 즐겼다. 그림의 원제는 ‘States of Mind Ⅲ - Those Who Stay’. 해석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내가 읽은 책에서는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해석했다. 저들은 머물러있는 것일까? 남겨진 것일까? 주위는 빠르게 변하는 데, 여전히 숲 속을 헤매는 사람들의 방황이 꼭 지금의 나만 같다.




3. 눈물 : 오귀스트 로댕, 다나이드


상처입고 상처 입히면서
눈물을 먹고 자라는 가시 돋친 꽃의 이름을
행복이라 부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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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din, Danaid, Marble, 1889-1890 >


 한 여인이 힘없이 바닥에 엎드러져 있다. 여인은 한껏 웅크려 있고, 정리되지 않은 팔다리는 꼬깃꼬깃 접혀있다. 표정이 정확히 보이지 않지만 등 위로 두드러진 날개뼈와 척추는 이유모를 연민을 느끼게 한다. 그 옆을 뒹굴고 있는 물동이 하나. 여인의 머리를 적시는 것은 담겨 있던 물일까? 그녀의 눈물일까?

 ‘다나이드’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다나오스의 딸들이다. 50명의 다나이드는 다나오스의 쌍둥이 형인 아이깁토스의 50명의 아들들과 약혼한 사이다. 다나오스는 다나이드에게 남편을 죽이라 명하고, 49명의 딸은 그 명령을 실행한다. 다나이드는 남편을 죽인 죄로 밑 빠진 욕조에 영원히 물을 채우라는 형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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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양, 욕조 01>


 저 조각을 보고 얼마 전 ‘당신’을 통해 인터뷰한 일러스트레이터 하양님의 그림이 떠올랐다. 때로 적절하게 슬픔을 풀어내지 못하면, 생각하곤 한다. 스스로가 눈물을 한가득 머금고 있는 스펀지와 같다고. 나라는 한 사람이 눈물로 가득 차 있어서 내 눈물에 내가 빠져죽을 것만 같다고. 여자의 머리를 적시는 눈물과 욕조를 가득 채운 눈물을 보며 나는 나의 눈물을 생각한다.




4. 슬픔


 외로움, 방황, 눈물로 화한 슬픔들 중 어떤 슬픔이 가장 공감됐나? 나는 방황의 슬픔이 와 닿았다. 20대 중반의 나이, 사회는 청춘, 꿈, 목표 등의 단어를 이야기하며 나에게 어떤 삶을 요구한다. 내가 바라지 않는 삶을 누군가가 자꾸 제시하며 내 삶을 부정하는 것만 같다. 주위에서 취업에 열을 올리는 친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만 철없는 망상에 빠져 뒤처지고 있는 건가?’ 하는 근원 모를 불안이 엄습하기도 한다. 미래를 알지 못하니 평생 동안 이런 고민에 휘청거리겠구나 싶을 때는 아찔하기까지 하다. 초록의 숲을 헤매는 사람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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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畵)의 첫 소제목은 ‘슬픔이의 승리가 의미하는 것’이었다. 처음의 질문을 다시 생각해본다. ‘인사이드 아웃’의 결말에서 기억저장소에서 복귀한 ‘기쁨이’는 ‘슬픔이’에게 핵심기억을 맡긴다. ‘라일리’는 슬프게 울기 시작한다. 추억이 가득한 장소를 떠나 낯선 곳에 적응하는 일이 사춘기 소녀에게는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기쁨만을 느끼게 하던 유년의 기억은 슬픔이 덧씌워지며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버럭이’의 가출이 아니라, ‘슬픔이’의 눈물을 통해 ‘라일리’는 자신의 상실을 인정하게 된다. 이후, 붕괴된 ‘라일리’의 ‘성격섬’은 이전보다 더 크고 화려하게 재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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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일단 나는 아니다. 내가 슬프다는 건 내가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는 말이니까. 상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슬픔은 사라지지 않고 내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지인들에게 이런 일이 있어서 슬펐다고 털어놓거나, 혼자서 시원하게 울어버리거나 어떤 방법으로든 인정해야한다. 우리는 크건 작건 무엇인가를 항상 잃어버리게 마련이다. 잃어버리지 않는 삶은 없다. 슬픔은 평생 나를 따라다니다가 불쑥 고개를 디밀 것이다. 그러니 인정하자. 슬플 때는 무엇인가 잃어버렸음을 인정하자. 빈손에 어떤 것을 다시 담을 것인지 생각하자.



눈물을 먹고 자라는 가시 돋친 꽃의 이름을
행복이라 부르지
행복은 아름다워






[참고]

그림이 그녀에게, 곽아람, 아트북스
내 영혼의 그림 여행, 정지원, 한겨레출판





[ 다음 화(畵) 예고 - 제 3 화(畵) 분노, OO으로 화(化)하다 ]




[김마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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