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필수불가결한 우울함들을 위하여- The Blue Day Book [문학]

글 입력 2017.10.28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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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날이 있다. 내면이 우울함의 바다 깊이 잠식당해 버리고 만 그런 날 말이다. 사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순간들을 통틀어보면 꽤 적지 않은 하루들이 우울함의 짙은 파란색으로 물들곤 한다. 그리고 그 심연에는 세상을 가득 이루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만큼이나 다양하고 제각각인 이유들이 있다. 심연을 모두 이룬 뒤에 그 어둡고 짙은 곳에서 올라온 우울은 이윽고 슬픔의 얼굴을 하고서 그렇게 저마다의 순간에 소리 없이 스며들거나, 혹은 마치 거대한 쓰나미처럼 두려우리만치 앞으로 쏟아져 온 마음을 덮치기도 하며 그렇게, 우리를 쥐고 흔든다. 우리가 가진 우울은 그렇다.

 하지만 이렇게 우울이 우리의 곳곳에 번져 내면의 모든 것을 거세게 흔드는 날들이 찾아오곤 할 때, 그것을 애써 ‘잘못 찾아온 손님’ 처럼 대하며 나의 바깥으로 떨치려 할 필요는 없다. 수많은 인생의 날들 중 문득 기쁨이 찾아오는 어떤 하루에 우리가 그것을 기꺼이 환영하며 반가워하듯이, 우리는 우울이 내면을 두드리는 순간에도 기꺼이 그 문을 열어주면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지 못할 곳에 제멋대로 발을 들인 불청객이 아니라, 우리의 생에서 필수불가결하게 마주하고 마는 ‘그냥 어떤 감정’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 순간에 부딪힐 때마다 필자는 작고 얇은 책 한 권을 꼭 꺼내어 읽는다. 바로 작고 얇은 사진 에세이인 'The Blue Day Book' 이다. 제목이 그대로 말해주듯이 이 책의 맨 앞에는 파란 바탕의 표지에, 침팬지 한 마리가 상심한 듯 턱을 괴고 정면을 응시하는 사진이 함께 있다. 필자는 항상 이 책을 집어들 때면 그 사진을 꽤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다가 책을 읽기 시작하곤 한다.

 이 책은 ‘우울한 날에 읽는 사진명상집’을 그 모토로 하고 있다. 그리고 꽤 얇기 때문에 찬찬히 읽더라도 20분 이상 걸리지 않고, 내용 또한 사진이 대부분이고 글은 모든 페이지 당 한 줄씩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평소 줄글로 된 책을 읽기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쉽게 읽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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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윽고 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사진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보면, 왠지 한 장 한 장 쉽게 넘길 수 없는 무언가에 사로잡히게 된다. 동물들은 마치 사람의 표정을 보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또한 그 표정이 담긴 사진들은 짧은 글들과 모두 잘 맞아 떨어진다. 그래서일까, 신기하게도 동물들의 눈에 담긴 그 감정들에 쉽사리 공감하게 된다. 이들이 마치 내게 차분히 말을 건네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되는 것이다.

 사실 꼭 이 책이 아니더라도, 독자에게 위로를 건네고자 하는 주제로 만들어진 책은 셀 수 없이 많고 우리는 그런 류의 책들을 서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이 구입하곤 한다. 필자도 그랬다. 그러나 이 수많은 책들의 대부분은 우울에서 벗어나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해주곤 했고, 그 책들 속에서 우울은 벗어나야 하는 부정적인 감정 중 하나로 일컬어지곤 했다. 그리고 책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애써 우울의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노력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결국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함이 찾아오는 것이 다반사였다. ‘코끼리를 잊어버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자꾸만 코끼리가 생각나게 되어 버린다는 것처럼, 우울을 애써 잊어버리려고 하면 할수록 어쩐지 우울은 오히려 자꾸만 내면 속을 파고들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The Blue Day Book'은 처음 읽었을 때부터 애써 우울을 끄집어 버리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내게 알려주었고, 그것이 필자가 이 책을 우울한 순간마다 꺼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우울에서 한시 빨리 벗어나라고 재촉하기 보다는, 우울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고, 책 제목 그대로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반드시 오기 마련이기에 모든 것이 괜찮다고 심심한 위로를 먼저 건네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세상을 조금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것을 권하며 끝을 맺는다. 나의 우울함을 먼저 ‘인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우울함을 먼저 맞이하고 나면, 곧 언젠가 그것을 대할 용기는 반드시 생기기 마련이다.

 우리는 오늘도 옆구리 한 켠에 모두 우울을 한 조각씩 끼고 살아간다. 그리고 이따금씩 삶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파서 눈물이 나고는 할 때, 그 우울의 조각들은 쿡쿡 옆구리를 쑤셔대며 우리를 괴롭히곤 한다. 문득 그런 날이 찾아와 한없이 힘들고 괴로운 누군가가 있다면, 필자는 이 책을 그런 사람과 함께 나누며 말해주고 싶다. ‘오늘은 마음껏 우울해도 좋다’고 말이다. 내일도 우리는 변함없이 우울 한 조각을 옆구리에 끼고 살아가고 있을 테고, 또 그렇게 기꺼이 살아갈 만큼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꽤나 근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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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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