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소설과 연극을 동시에 만나다_연극 이방인

글 입력 2017.09.1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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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원작’, ‘웹툰 원작’ 기존 작품을 재구성하는 일은 짜임새를 갖춘 완성된 창작물을 재료로 한다는 점에서 쉬워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대중이 스토리에 빠져들도록 하는데 있어 강한 추동력이 되는 ‘앎에 대한 욕망’이 이미 충족되었음에도 원작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에 매력을 느끼도록 하는 일은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원작이 고평가 받은 경우엔 그 장벽이 배로 높아지는데, 이미 원작 소설이나 웹툰을 본 독자들의 기대치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전 세계에 모르는 사람이 드문 <해리포터> 조차 각각의 시리즈가 원작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원작을 있는 그대로 베꼈다는 이유로 질타를 받기 일쑤니 말이다. 인지도, 그리고 완성도를 갖춘 ‘원작’의 존재가 한편으로는 족쇄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원작을 충실히 구현해야하는가? 아니면 재생산의 장르와 제작자의 취사선택에 따라 변형이 마음껏 이루어져도 되는가? 지나치게 주관적인 문제이기에 그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려 한다. 다만 연극 <이방인>에 대해서는, 소설과 연극을 같은 시공간에서, 동시에 조우하는 일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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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알제의 선박 중개 사무소에서 일하는 뫼르소는
어느 날 양로원에 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고 가서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다.
 
그는 예전 직장 동료였던 마리를 다시 만나
유쾌한 영화를 보고 해수욕을 즐기며 사랑을 나눈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뫼르소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 레이몽과 친해진다.
 
레이몽은 변심한 애인을
괴롭히려는 계획을 세우고,
뫼르소는 레이몽의 뜻에 이끌려
이 계획에 동참한다.
 
며칠 후 뫼르소는
레이몽과 함께 해변으로 놀러 갔다가
그들을 미행하던 아랍인들과 마주친다.
그 아랍인들 중에는 레이몽 옛 애인의 오빠가 있다.
 
싸움이 벌어져 레이몽이 다치고 소동이 마무리되지만
뫼르소는 답답함을 느끼며 시원한 샘으로 간다.
그곳에서 우연히 레이몽을 찌른 아랍인을 다시 만난 뫼르소는
자신도 모르게 품에 있던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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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방인을 읽다


 일전 프리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극단 산울림은 원작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인공 뫼르소의 독백을 그대로 살리고자 노력했다. 연극이 소설과는 전혀 색다른 면모를 보여준다면 몰라도 원작에 충실했다고 고백하고 있었기에 원작과 연극의 공통점, 그리고 차이점을 극명히 느껴보고자 소설을 살짝 훑어보았다. 실제 공연이 시작되었을 때, 예상 외로 굉장히 낯설었다. 책 속에서 활자로 구현되었던 묘사와 독백, 대사가 무대 위에서 살아나고 있었다. 단순히 내용뿐만 아니라 무대 위 배우들도 마치 책 속에서 튀어나온 사람들처럼 의도적으로 딱딱하게 발화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둘 사이의 간극이 생각보다 좁아서 그 긴밀함이 아이러니하게도 당혹감을 자아냈던 것이다.
 
 이렇게 하면 소설을 편집한 것과 뭐가 다른 거지? 굳이 연극을 봐야 하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걸까? 일순간 머리를 복잡하게 헝클어놓았던 질문들은 이내 그것이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깨닫는 것으로 잠잠해졌다. 소설을 연극으로 바꾸든, 웹툰을 드라마로 바꾸든 일련의 전환 과정 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지향점이다. 두 콘텐츠가 서로 얼마만큼 닮았고 얼마만큼 다른가는 사실 핵심이 아니다. 서로 다른 연애 방식을 지닌 네 명의 남녀를 통해 인생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드러내는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영화 <프라하의 봄>에서는 체코 근대 역사의 격동기를 살아가는 네 남녀의 몽환적이고도 불안정한 사랑과 관계에 관한 것으로 탈바꿈했고, 결과적으로 책과 영화 모두 자신만의 가치를 인정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원작과 원작의 재창조물이 같은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면 둘은 얼마든지, 어느 수준으로까지라도 닮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느 수준으로까지라도 달라질 수도 있었다. 소설 <이방인>과 연극 <이방인>이 죽음이라는 공통된 결말을 가진 모든 인간의 삶에 대해 실존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면, 이를 위해 부조리한 재판 속에서도, 차가운 감방 바닥 위에서도 끝없이 이어지는 뫼르소의 독백을 옮겨온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연극> 이방인을 보다


 실제로 뫼르소의 독백은 일면 연극 속에서 더욱 생동감 있게 살아났다. 알베르 카뮈의 문체는 굉장히 딱딱하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전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기자처럼, 1인칭 시점의 독백임에도 불구하고 뫼르소의 말투는 숨 막힐 정도로 담담한 데가 있었다. 이렇듯 무미건조한 내면의 목소리는 책으로 읽을 때보다 무대 위 배우들의 입으로 전달될 때 더욱 관조적이었고, 그래서 가끔은 거북스러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죽음이 눈앞으로 다가왔을 땐 글씨 속에 억눌려있던 공포와 부질없음이 폭발음처럼 터져 나왔다. 개인차가 있겠으나 소설과 연극 중 가슴을 거세게 후려치고 지나간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필자는 연극이라고 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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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르소의 재판 


 이 외에도 연극은 원작의 의미를 충실히 담아내면서도 극만이 활용할 수 있는 장치들을 적극적으로 동원했다. 원형 무대는 공간을 집에서 장례식 장으로, 해변에서 감옥으로, 어디 장소로든 전환하기에 적합했고, 뫼르소가 아랍인을 죽이던 순간에 흘러나오던 연기와 따사로운 조명은 '햇빛때문에 죽였다'는 그의 아찔한 기분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해 보여주었다. 우수에 젖은 기타 선율 역시 스토리 전체를 감싸 안기에 적합했으며 반달 모양의 객석과 관객을 배심원이라 지칭한 배우들 덕분에 뫼르소의 죄목을, 그리고 재판 상황을 각자가 나름대로 심판하고 고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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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이방인>을 보고 나오는 길에, 함께 갔던 친구와 길고 긴 공방전을 벌였다. 필자는 프리뷰를 통해 작품의 의도를 알고 연극을 봐서 그런지 ‘어머님 장례식 때 카페오레를 마셨다’ 라든가 ‘평판이 좋지 않은 레이몽의 친구’ 라든가 하는 것들이 사사로운 것들이 심판의 기준이 되는 것을 쉽게 주목하고 못마땅해 했다. 하지만 친구는 달랐다. 어쨌든 그는 살인을 저질렀으며, 그가 이전에 보여준 생각, 그리고 행동에 미루어 판단을 내리는 건 어느 정도 타당하다는 것이었다. 좀처럼 시각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고, 우리는 각자의 결론대로 연극 <이방인>을 기억하기로 했다. 직접 얘기해보진 않았지만, 우리는 있지도 않은 정답을 찾아내려는 과정 자체가 의미있다는 것에 대해서 만큼은 합의했던거 같다. 그 날 밤, 같지만 다른 두 가지 <이방인>을 모두 만났다는 사실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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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소극장 앞에서 


공연정보

작 ㅣ 알베르 카뮈

번역, 각색, 연출 ㅣ 임수현

장소 ㅣ 소극장 산울림

기간 ㅣ 09.05 - 10.01

시간 ㅣ 평일 오후 8시, 주말 오후 3시, 월요일 없음

 소요시간ㅣ  110분

티켓 ㅣ 전석 4만원

문의 ㅣ 소극장 산울림 02-334-5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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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로운 이야기:)

수요일 밤이어서 그랬는지, 홍대 거리는 한적했습니다.
아기자기한 밥집과 술집, 고양이카페, 각자의 스타일을 가진 옷가게들덕분에
심지어는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홍대가 처음이 아닌데도.
산울림 소극장에 도착하자 건물 안에 쏙 박혀있으면서도 환하게 뚫려있는 카페가 보였습니다.
근처엔 한때 기차 건널목 차단기가 '땡땡'하고 울렸던 땡땡거리가 있습니다.
근처에서 맛있는 밥 한 끼를 먹고 이 거리를 산책하다 올걸,
일찍 와서 차라도 한 잔 마실걸 싶었습니다.
혹 이곳을 찾는 분이 있다면, 저 대신 해주셨으면 해서 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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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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