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 느낌, 그 맛, 그 분위기,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 [문학]

글 입력 2017.07.2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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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지난 주, 장마로 인해 따분한 하루를 방 안에서만 보내고 있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질 때면, 우리 가족들은 하나같이 파전을 찾곤 했다. 그 날의 나도 그랬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두툼한 파전들을 파는 골목이 있다. 딱 그런 파전과 시원한 술이 생각나는 날씨였다. 하지만 실천으로 옮기기엔 참 귀찮았다. 그러던, 장마 어느, 오전이었다.

문 앞에 무언가가 턱,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혼자 살다보니, 그런 소리가 들려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기다리는 편이다. 그러다 문득 잠이 들었는데,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저녁이었다. 장대같이 쏟아지던 비는 조금 줄어들었고, 배는 참으로 출출해졌다. 장을 보기로 결심했다. 그때가 돼서야 잊고 있었던 문을 열어보았다. 문 밖에는 책이 도착해 있었다.

아트인사이트에서 문화초대를 통해 문화를 향유한지 벌써 9개월정도가 되어가지만, 지금껏 도서는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공연이나 전시장을 찾아가는 것과는 약간 다른, 두근거림이었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택배를 기다리며, 그리고 그 도착한 택배를 뜯으며, 이미지로만 보던 책을 눈으로 접한다는 것은! 허겁지겁 택배를 문 안으로 집어넣어두고 서둘러 장을 보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밀맥주 두 캔도 장바구니에 함께 했다. 저녁을 해먹고 맥주를 따며 책을 처음 펼쳤다.


“25년이 지난 아와모리 소주도 맛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물처럼 가벼운 투명감이 아니라 인공적인 손길이 더해져 만들어낸 투명감이 느껴진다. 그 때문인지 가벼움과 예리함과 순수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묘한 맛이 풍긴다. 그리고 몸속으로 퍼지는 순간, 뿌듯한 충족감이 온몸을 감싼다.”
(152p)

“접시 위에서는 짧게 토막이 난 낙지의 다리가 한 마리 긴 애벌레처럼 여전히 꿈틀거린다. 블랙유머 같은 느낌이 든다. 이렇게 신기한 음식은 본 적이 없다. 살아 있는 도미 회나 홍콩에서의 생새우 회도 멋진 경험이었고 가나자와에서는 그릇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투명한 빙어를 산 채로 먹어본 적도 있지만 그보다 몇 배는 더 유머를 느끼게 하는 음식이다.”
(179p)


이 책의 문장문장을 사실 무엇으로 표현해야할지 몰라서 리뷰를 조금씩 미루어왔다. 책이 술술 읽히는 게, 마치 부드러운 맥주가 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 같았는데.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하고, 조금 망설였다. 그렇다고 이 책은 정말 완벽해! 칭송할 것도 아니었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경험은 물론 술에 대한 지식이었는데, 사실 이 책은 거의 술 감상문에 가깝기 때문이다. 작가는 사진작가답게 그때그때의 모습들을 사진 찍듯 글로 옮겨 적어 놓았다. 그 느낌, 그 맛, 그리고 그 때의 분위기까지 말이다. 내가 지금 영국인지, 한국인지, 이탈리아인지 헷갈릴 정도로 시원시원하게 묘사되어있다. 가벼운 문장이 쏜살같이 읽히는 것도 맛이 좋았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 참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이렇게 행복하게, 자기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누리며 살 수 있을까? 그 느낌, 그 맛, 그 분위기를 수놓은 문장문장이 더 와닿는 이유는 대리만족을 비롯한 부러움에 있었다.

책을 읽으며 몇몇 국가에는 포스트잇 표시를 해두었다. 꼭 누리고 싶은 그 느낌, 그 맛, 그 분위기가 있었다. 부럽다는 생각, 대리만족으로는 그칠 수가 없었다. 꼭 그 곳들에 가서 그 느낌, 그 맛, 그 분위기를 누리리라. 그 때는 문장이 아닌 내 눈과 내 귀와 내 코와 내 입과 내 모든 감각으로. 그런 다짐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참으로 묘한 재주가 있는 책이다. 맛있는 술이 너무나 마시고 싶은 날, 어딘가 떠나고 싶은 날,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시원한 맥주 한 잔과 함께 안주로 하기 딱 좋은, 그런 책이다.





차례

프롤로그 수줍은 남자의 40년 술사랑 이력

제1장 유럽 편-스콜! 슬론체! 상테!
스카치를 마시며 송어 낚기-스코틀랜드*스카치(Scotch)
퍼브에 죽치다-영국*맥주(Bitter)
쓸쓸한 우유빛깔, 리카르-프랑스*리카르(Ricard)
오늘 저녁 키스는 사양-스웨덴*아콰비트(Aquavit)
그리스 감색 바다, 문어와 우조-그리스*우조(Ouzo)
타파스는 셰리와 함께-스페인*셰리(sherry)
정어리 1다스는 13마리-포르투갈*와인
가슴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는 노래 ‘파두’를 들으며-포르투갈*포르토(Porto) 와인
피에타처럼 투명한 그라파에 곤드레만드레-이탈리아*그라파(grappa)
가죽부대를 들고 한손으로 들이켜다-이탈리아*와인
베니스는 비-이탈리아*드라이 마티니(Dry Martini)
민들레 술-이탈리아*민들레 술(Dandleion Wine)
혀와 몸이 기억하도록 마시고 또 마신다-이탈리아*와인

제2장 아시아 편-건배! 요우! 마부헤이!
고압전류가 흐르는 듯한 라압의 여운-타이*메콩위스키(Mekong Whiskey)
바나나 숲속 센미 음식점-타이*라오 카오(Lao Khao)
무더운 방, 안타까운 거리감-필리핀*산미구엘(San Miguel)
꿈틀거리는 하얀 벌레와 함께 야자주를 “꿀꺽!”-인도네시아*뚜악(tuak)
부화 직전의 오리알 ‘빗론’을 먹다-베트남*비아 허이(Bia Hoi)
코끝이 찡, 독쏘는 맛이 일품 베트남 쌀 막걸리-베트남*르우껑(Ruou can)
술 익는 마을 오키나와 아와모리의 풍요로움-일본*아와모리(泡盛)
염소찌개는 정말 맛있어!-일본*워커(Walker)
장마철에는 소금뿐인 우루카-일본*니혼슈(日本酒)
나도 “막걸리”하고 외치고 있었다-한국*막걸리
생일날 꼭꼭 씹어먹은 산낙지회와 미역국-한국*소주
마귀를 쫓는 술, 마유주-몽골*마유주(馬乳酒)
노주 향기 가득한 곳, 소흥을 가다-중국*소흥주(紹興酒)
왕희지의 ‘난정’은 소흥에 있다-중국*소흥주(紹興酒)

제3장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편-치어스! 비바비바! 살루!
“파티에 오십시오”-오스트레일리아*맥주
3년 만의 재회, 5분 간의 침묵-뉴질랜드*와인
간발의 틈을 주지 않고 마신다-미국*버번위스키(Bourbon Whiskey)
커다란 글라스, 세 개의 빨대-미국*마가리타(Margarita)
맥주에는 감자튀김이 최고-미국*맥주
갓잡은 무지개송어로 푸짐한 안주를-캐나다*위스키(Whiskey)
마실수록 마음이 가라앉는 ‘카바의식’-피지*카바(Kava)

에필로그-맛있는 술과 안주가 인격을 육성해 준다
추천의 글-세계 술맛에 취하다-우메다 미카
찾아보기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
- 일본 최고 맛객의 음주 충동 -

글, 사진 : 니시카와 오사무(西川治)
옮긴이 : 이정환
펴낸곳 : 나무발전소
분야 : 여행에세이
규격 : 신국판 무선
쪽 수 : 266페이지
발행일 : 2011년 3월 2일
정가 : 13,000원
ISBN : 978-89-962747-6-6(13980)
문의 : 나무발전소 02-333-1962



[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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