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홀로코스트 :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영화]

순수한 어린이의 눈에 비춰진 나치즘과 유대인의 비극
글 입력 2017.07.1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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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치는 1933년 독일을 이끄는 수상이 된 아돌프 히틀러가 이끌던 정당의 이름이다. 나치의 기본이념은 인종주의, 민족주의, 패권주의를 지향하는 것 이었다.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은 패배 후 엄청난 보상금으로 인한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전쟁의 폐해로 인해 사회가 전반전으로 뒤숭숭했다. 이 때, 독일 나치는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그 외의 민족을 하대 취급하기 시작한다. 파시즘이라 불리는 이 민족주의 논리는 그 중에서도 유대인을 인종의 쓰레기라 칭하며 모든 유대인을 제거할 것을 주장한다. 그 결과 600만명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역사적 사실을 남겼다.

 영화 ‘줄무늬 파마자를 입은 소년’ 에서는 이러한 홀로코스트(Holocaust : 제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를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려내고 있다.




 

"The Boy In The Striped Pajamas"
- 순수한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홀로코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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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차려입은 옷을 입고 등장하는 소년 브루노. 늘 밝고 탐험심 강한 브루노와 달리 그의 아버지는 엄격한 나치의 사령관이다. 브루노 가족은 나치 사령관인 아버지의 업무로 인해 시골 외딴 곳으로 이사를 간다. 새로 이사한 집과 꽤 멀리 떨어진 곳, 큰 농장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살고있고, 그 곳에서는 가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들은 브루노처럼 평범한 옷이 아닌, 숫자가 써져있는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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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험을 좋아하던 브루노는 집 밖에는 무엇이 있을까에 대한 호기심으로 집을 탈출한다. 숲을 지나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농장. 농장은 철창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브루노는 철창 안쪽에서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파자마를 입은 한 소년을 발견한다. 소년의 이름은 슈무엘. 두 순수한 소년은 철창을 사이에 두고 우정을 쌓아나간다. 유대인 수용소에 같힌 소년과 나치 사령관을 아버지로 둔 독일인 소년의 우정이 오래 지속되기는 힘들 것임을 영화를 보는 우리들은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그들이 처한 현실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눈으로 영화가 진행되고 있기에 더욱 더 안타깝고, 잔혹함이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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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루노의 누나 그레텔은 인형놀이를 좋아하는 평범한 12살 소녀였다. 일주일에 두 번씩, 가정교사의 방문으로 역사 수업을 받게 된 브루노와 그레텔. 인형을 좋아하고 순수했던 12살의 소녀는 반 유대주의를 주장하는 사상에 영향을 받아 유대인들을 비하하고 혐오하는 지경에 이른다. 방을 채우고 있던 인형들을 지하실에 던져버리고 그 빈자리를 나치 관련 포스터로 채우는 등, 완전히 나치즘에 물들어 버린 듯 한 모습을 보인다. 뿐 만 아니라 다정하던 누나의 성격은 나치즘의 영향으로 인해 폭력적으로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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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결말은 내게 있어 엄청난 반전이었으며 쉽게 잊을 수 없는 여운을 오래도록 남겼다. 순수한 어린아이의 마음과 우정으로, 사라진 슈무엘의 아버지를 함께 찾아주기 위해 수용소에 들어가는 브루노, 그 곳에서 브루노는 유대인의 대량 학살을 위한 창고에 들어가게 되고 결국 죽음을 맞는다. 나치 사령관을 아버지로 둔 독일인 아이가 유대인들의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결말은 굉장히 아이러니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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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낮은 채도의 영상미를 가진다. 낮은 채도는 잔잔하면서도, 우울하고 비참한 수용소 속 유대인들의 모습을 잘 표현해주는 듯하다. 나치가 무엇인지 모르는 브루노의 눈에는 그저 수용소가 농장으로, 그들이 입은 죄수복이 줄무늬 파자마로 보인다. 브루노의 이러한 순수함이 결말을 더욱 더 가슴 아프면서도 잔인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치 사령관 아버지를 둔 브루노가 유대인 수용소에서 유대인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 마지막 장면은, 특수한 음색이나 효과 없이 잔잔하고 조용하게 그려지면서도 엄청난 비극을 선사한다. 그러나 눈을 찌푸리게 하는 그 어떤 잔인한 장면도 등장하지는 않는다. 단지 순수한 어린이의 눈으로 당시 사회의 모습을 그려냈을 뿐이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당시 나치의 만행과 유대인 학살의 현장. 영화 속 주인공인 두 어린아이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무지하지만, 영화를 보는 우리들은 그 모든 사건의 내막을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영화의 내용이 더 비극적이며 , 잔인하고, 슬프게 다가오는것이 아닐까?
 



 
영화를 보고난 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란 없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독일인들은 히틀러의 나치시대 이후, 자신의 조상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나치시대와 관련한 교육 및 전쟁범죄의 역사를 신랄하고 객관적으로 교육받고 있다. 조국의 부끄러운 과거를 그저 덮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집중적으로 교육받음으로써 반성하는 행동은 어쩌면 당연한것이다.

수없이 반복되던 전쟁의 역사 속, 독일 뿐 만아니라 많은 국가들이 다른 민족, 다른 나라에게 씻어낼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안겨주었다. 해당 국가들 역시도 자신들의 과거를 덮으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조국의 과거에 대해 객관적인 태도를 겸비하여 더욱 더 자세히 배우고, 인지함으로써 반성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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