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가 '불한당'인가 [영화]

글 입력 2017.07.08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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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불한당'인가


믿었던 이의 부정(不正)을 확인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 사람에게 기대했던 가치가 거짓이었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그 가치의 투명성이 훼손되었을 때, 그 허망함의 몫은 온전히 그를 믿던 개인의 것이다.
아무도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호감을 가진 상대에게서 좋은 모습을 발견하려 애쓰고, 나쁜 모습을 쉽게 외면하는 것은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실수 중 하나다. 믿음에 대한 배신이 꼭 가까운 지인을 통해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사적으로 전혀 알지 못하는, 스스로 멋대로 유대감을 형성해버린 누군가의 부정이 몇 배는 허탈하다(실제로 이 경우가 훨씬 많기도 하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를 향한 동경과 믿음, 나를 제외한 누구도 강요한 적 없던 믿음이었기에 멋대로 시작한 짝사랑의 배신은 더 아프다.

‘악마가 부른 천사의 노래’, 쳇 베이커의 음악과 그의 삶 중 더 유명한 것은 어느 쪽일까. 연약하고, 불안하지만 분명하게 아름다운 그의 음악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평온을 얻는다. 조용한 밤, 많은 이들의 내면에 안정을 선물한 창작자의 자기파괴를 넘어 아내마저 마약 중독자로 만들어버린 삶을 떠올릴 때의 아이러니. 그는 분명 위대한 음악가였지만, 동시에 엄청난 쓰레기이기도 했다.

위대한 감독이자 작가, 배우 우디 앨런의 영화를 통해 그의 유머와 사색, 낭만에 감탄한 후 그의 아동 성추행 기사를 발견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은 아니기에 그의 팬으로써 한 번 눈을 감아보지만, 35살 어린 자신의 양녀와 결혼한 로맨티스트에게 그의 영화를 통해 느꼈던 감동에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칸이 사랑하는 남자, 홍상수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 할 수 없는 것 역시 가슴 아픈 일이다. 간통죄 폐지로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그들의 사랑이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정서에서 그의 스캔들은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낯선 이 앞에서 그의 영화를 향한 애정을 숨기지 않을 때, 우리는 이제 마주앉은 이의 의미심장한 눈빛을 감수해야할지 모른다.

음악, 영화, 어떤 창작물을 통해 깊은 울림을 느낀 후 그 창작자의 부도덕함(혹은 그런 논란이 있던)을 마주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감동이 퇴색되기도 하고, 그 가치를 부정해야 하는 것인지 혼란에 빠진다. 감동을 지킬 것인지 논란과 함께 그 가치를 부정할 것인지는 온전히 개인의 선택이다.

그런데 그 선택의 기회마저 박탈된 이가 있다. 시간이 좀 지나면서 논란의 대부분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졌다. < 불한당 > 변성현 감독의 이야기다. < 불한당 >은 감독의 과거 SNS 글들로 인해 영화 자체보다 외적인 이야기로 시끄러워야 했다. 개봉 첫 날 실시간 예매율 1위를 차지할 만큼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았으나 감독을 향한 논란과 함께 영화의 보이콧을 외치는 이들이 늘어났고, 개봉 7주가 지난 지금 불한당은 누적 관객 수 약 93만 명을 겨우 넘어섰다. 논란은 대부분 오해로 밝혀졌다. 같은 것을 보아도 저마다의 다른 해석이 있기에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것은 변성현 감독은 진짜 홍어를 좋아하는 홍어 매니아이고, 3년 동안 세월호 추모 팔찌를 착용했으며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다는 것이다.

칸에서 7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은 영화다. 한국에서는 93만 명이 조금 넘는 관객만이 스크린을 통해 < 불한당 >을 느꼈다. 좋은 영화인지 과대 포장뿐인 별로인 영화인지 보여주려던 사람도 보려던 사람도 그 기회를 빼앗겼다. 영화는 소수의 극장과 스스로를 ‘불한당원’이라 칭하는 팬들의 모금에 의한 상영관 대관을 통해 스크린 상영을 이어가고 있다. 이례적인 사랑에 영화 관계자와 배우들은 직접 상영관을 찾아 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아름답지만 안타까운 일이다. 오해의 이름으로 무책임하게 던진 돌에 맞은 상처는 너무 깊었고, 사과하는 사람은 없었다.

< 불한당 >과 변성현 감독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일에 우리는 너무 쉽게 분노하고, 너무 쉽게 판단하며 너무 쉽게 상처 입힌다.

부디 나의 생각을, 나의 판단을 조금씩만 더 경계해주길. 조금씩만 더 자신 없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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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 < 불한당 > 스틸컷


[김우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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