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평범한 인간들의 몸부림을 생각하다 [문학]

평범함과 특별함에 대하여
글 입력 2017.03.31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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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 한 살 나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평범함과 특별함에 있다. 유독 그 주제를 많이 생각한다. 아직까지 나는 특별해지고 싶은 사람이다. 뻔한 삶은 싫고, 남과 다른 나만의 인생을 살고 싶다. 나의 인생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삶을 살고 싶다. 항상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아무 것도 아닌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다. 대부분의 어린 아이들은 자신이 특별하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통령도, 연예인도 얼마든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사춘기 때가 되면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상상 속의 관중’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이 오면,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두가 내 편은 아니며, 세상에는 자신보다 빛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서서히 ‘어른’이 된다. 어른의 몸을 하고서 여전히 자신이 세상 속에서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  평생을 위대한 세일즈맨의 꿈을 품고 자신과 아들도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 믿어온 아버지에게 아들 비프가 울부짖는 장면이다.



BIFF Pop! I’m a dime a dozen, and so are you!
      (아버지! 저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에요. 아버지도 마찬가지고요!)

Pop, I’m nothing! I’m nothing, Pop. Can’t you understand that?
(아버지, 저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이해하지 못하시겠어요?)



 이 세상에는 위대한 사람들이 많다. 아시아와 유럽 전역을 넘나들었던 정복자, 수 억 명의 신도들이 있는 종교의 창시자, 세상을 바꾼 혁명가, 고통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예술가, 세기의 발명을 해낸 과학자, 세계적 기업의 CEO… 그들의 이야기는 신화가 되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며 동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에게도, 혹은 자신의 자식에게도 그런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은 특별한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그래서 세상 곳곳에는 세일즈맨처럼,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의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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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 문학이라는 장르에는 위대한 영웅들의 이야기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서사시라는 서양 전통의 문학 장르는 고귀한 인물들이 탄생하고, 모험하는 내용을 다룬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라는 장르가 서양에서 등장한 것은 의외로 문학사에서 매우 최근의 일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등,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들이 벌이는 그럴 법한 이야기들이 대중에게 읽히게 되었다. 특별함에 대한 평범함의 승리일까? 글쎄, 소설 속 인물들이 엄밀히 말해서 진짜 ‘평범한’ 사람인지에 대해 의문이 간다. 오히려 평범함을 가장한 사람들이 특별한 인생을 사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대중들을 더욱 현혹시키는 것 같다. 2016년 <피프티 피플>이라는 책을 출간한 정세랑이라는 작가가 있다. 50명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이 책의 작가는, 소설 속에서 사람들의 평범함을 묘사하는 것이 오히려 얼마나 어려운 지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른 예술도 그렇지만 소설은 특히나 편집의 예술이잖아요. 다양한 재료들을 압축해서 인물도 만들고 이야기도 만드는데, 그 압축의 과정을 좀 느슨하게 해보고 싶었어요. 보통 6-7명의 매력적인 인물들을 제가 현실 속에서 만나게 되고, 그 조각조각들을 모아서 독특한 한 명의 인물을 만들거든요. 그런데 분산의 방향으로 가보면 어떨까, 생각이 든 거에요. 일종의 실험이었는데, 어렵더라고요. 주인공에게 멋지고 독특한 삶을 살게 하는게 차라리 쉽다니…

-창비 네이버 블로그 <피프티 피플> 정세랑 작가 인터뷰 http://blog.changbi.com/220888094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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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집어 생각해보면 특별한 삶을 사는(산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평범함을 갈망한다. 인간의 마음 속에는 남과 다르고 싶은 욕망과 남과 다르고 싶지 않은 욕망이 뒤섞여 있는 것 같다. 사실, ‘남다름’을 얻는 데에는 그만큼의 대가가 따른다. 누군가에겐 자신의 특별함이 평생의 짐이자 상처일 수 있다. 또 곰곰히 생각해보면 인간 사회에서 평범함과 특별함을 구분 짓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인간의 머릿속으로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광활한 우주와 시간 속에서, 덧없고 미미한 존재일 뿐인 인간 사이에서 우열을 정하는 게 무슨 소용이랴. 


 스물 한 살, 내가 하는 고민들은 나만의 것이 아닐 테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고심해왔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거다. 그만큼 평범함과 비범함, 의미와 무의미, 완전함과 불완전함, 숭고함과 미천함, 기억과 망각, 같음과 다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문학을 비롯한 예술 작품들도 넘쳐난다.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닐까?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의미한 일은 없는 걸까? 인간 존재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는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오늘 밤에도 몸부림을 친다.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국어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문학질문사전>
‘사람들은 언제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나요?’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180616&cid=47319&categoryId=47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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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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