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목_책 속 한마디에 밑줄 긋기 [문학]

박완서의 《나목》을 읽고
글 입력 2017.02.20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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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표현에 감탄하면서 읽은 작품. 우리네의 삶을 그리고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는 색다른 참신함이 묻어 있었다. 그 마음과 행동에 절절히 공감하면서도 그것을 풀어내는 문장문장에 놀라 몇 번을 다시 읽어 본 구절들을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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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둘러싼 이 우울한 외로움에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었다. (중략) 나는 아직도 그때만큼이나 쬐그매져서 고독이란 검은 거인 앞에서 측은하도록 심한 낯가림을 하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숫제 고독을 천성처럼 타고나서 남보다 신비스럽게 돋보이기도 하고 그렇지는 못할망정 액세서리처럼 달고 다닌다거나 또는 가끔 알사탕을 꺼내 핥듯이 기호품의 일종처럼 음미하기도 하는데 나에게는 그런 편리한 재간이 없었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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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남자가 이루는 풍경, 거기엔 적어도 춥지 않은 무엇이 있었다. 저들도 춥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랑을 할지도 모른다. - p.35
차분한 분위기에 쾌적한 온도와 맛난 냄새와 사랑하고픈 사람에게 시중드는 시간을 나는 마치 섬세한 유리그릇처럼 소중히 다루고 있었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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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좋았지, 이런 투로 시작되는 따분하고도 길고 긴 넋두리를 난 얼마나 주워들었던가. (중략) 청소부 아줌마들에서 잡역부들에게 이르기까지 찌들은 사람들의 그 허망한 넋두리(그때야 이렇지는 않았지……. 그때가 좋았지 좋았구말구), 과거에 대한 망상은 미래에 대한 망상보다 듣기에 구질구질하고 때로는 처참하게조차 느껴져 끝내 들어줄 수 있는 참을성이 나에겐 없었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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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자꾸 까다로운 소리를 할 것 같아 성가셨다. 나는 나와 상관없는 일로부터 놓여나 피곤한 몸을 마음껏 흐느적대며 내 일을 생각하고, 별과 상가의 불빛을 보고, 그 다음은 어둠과 추위에 나를 팽개쳐야 하고, 꼭 나 혼자만 해야 할 일들로 난 꽤나 바쁜 몸이었다. - p.158

혼자가 된 나는 배에 힘을 주고 고개를 오버 깃 속에 깊이 묻었다. 그리고 비로소 시선을 내 내부로 돌렸다. 고개를 딱지 속에 처넣은 달팽이의 시계(視界)만큼이나 어둡고 협소한 나의 시계. 그러나 내 옹졸한 시선은 그런 좁디좁은 시계에서만 당황하지 않고 안식을 누릴 수 있었다. - p.162

모두 조금씩 자기 일에 싫증을 내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감히 자의로 자기의 궤도를 이탈할 것 같지 않다. (중략) 점점 나는 내가 뭔가 저지르고 싶어서 견딜 수 없어졌다. 내가 기껏 내 자의로 저지를 수 있는 일이란 뻔하다. 물구나무를 서서 매장을 휩쓸고 싶다든가 중앙 계단에 올라서서 마음껏 아우성을 쳐보고 싶다든가. 그러나 그것도 생각뿐이지 실지로는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음을 나는 너무도 잘 안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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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렷이 말했으나 이내 섬뜩했다. 내가 그에게 사랑이라는 말을 써보긴 이번이 처음인데 그 말이 내 귀에 하도 공소하게 들려서였다. 역시 사랑이란 말은 하도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느라 옥희도 씨를 향한 내 지극한 열망을 담기에는 너무도 닳아 있었다. - p.21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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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결인 상태, 그 몽롱하고 무책임한 상태가 주는 휴식이 지금의 나에게는 필요했다. - p.353

(그림 출처 : Google)


[이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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