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 존재의 상실-2부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문학]

글 입력 2017.01.1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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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존


  세계대전 이후 과학과 기술문명의 발달은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인간의 주체성을 말살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는 실존주의의 배경에 큰 영향을 미쳤고, 기술문명과 관료기구 그리고 객관주의에 대한 항변으로 이어졌다. 또한 산업사회에서의 조직화로 인한 인간소외에 대한 거부로서 실존주의는 태어나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 실존주의란 19세기와 20세기의 특수한 역사상황을 반영하는 동시에 문명의 비인간화에 대한 반항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짐작하듯 실존주의는 “존재” 특히나, “인간존재”에 대해 고찰하는 철학이다. 실존주의 철학에서 주로 주시하는 것은 자유를 가진 개인이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유한성과 우연성을 의미하는 인간의 형태를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존재란 본질을 앞선다”라는 말은 실존주의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말인데, 이는 하나의 사물이 어떠한 특징을 내포하고 있다고 해석하기 전에 이미 그 사물은 사물로서 존재하므로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과 독립된 물질세계나 우주는 어떤 의미나 목적도 갖지 않으며 사람의 운명이란 과학과 철학, 결정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외부 세력이나 계획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닌 자유의사에 의한 선택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행동에 대해 개인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실존이란 “자유”이자 “책임”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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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다음 이미지)


 헤겔은 인간의 이성이 세계를 움직이는 중심이라는 이성주의와 관념론, 계몽주의 사상을 강조하며 인류의 역사는 정반합을 통해 발전한다고 하였다. 실제로 근대시대에는 인간이성을 통해 과학기술과 산업혁명을 실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곧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되돌아와 인간의 이성에 비소를 날렸다. 이러한 헤겔의 이성주의에 대해 실존주의 철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키에르케고르는 “헤겔의 생각과 철학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전쟁으로 인한 수많은 죽음과 자본주의의 심화가 불러온 물질만능주의 속에서 인간들은 모든 것의 주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들로부터 박탈당했다. 인간소외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인간이 소유하는 것들이 그 소유를 벗어나 인간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것. 인간소외는 아주 빠르게 인간들을 배척하고 인간들을 인간이란 “존재”에서 박탈시킨 뒤, 본래 인간들의 자리를 빼앗았다. 자본이 모든 것을, 심지어는 인간까지도 소유하게 된 지금 인간의 이성이란 얼마나 이기적인 어리석음인지 우리는 삶의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다음으로 우리는 인간이 박탈당한 면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조세희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2. 인간소외의 그림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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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KBS)


 조세희 작가의『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70년대 산업화에 조화되지 못하고 밀려난 도시 빈민의 이야기를 다룬다. 또한 소설은 빈민층부터 사회의 부조리에 불만을 품는 중산층까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화자로 세워 난장이 일가의 비참한 삶과 죽음을 보여준다. 소설 속에서 “난장이”는 자기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자본주의의 도구적 이성을 비판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윤리각성을 요구한다. 동시에 이는 빈민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을 직시하고자 하는 계몽의 정신을 갖는다.



나는 혼자 돌아왔다.
나는 그날 밤 아버지가
그린 세상을 다시 생각했다.

 아버지가 그린 세상에서는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버리고,

바람도 막아버리고,
전깃줄도 잘라버리고,
수도선도 끊어버린다.

그 세상 사람들은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비도 사랑으로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사랑의 바람을 불어
작은 미나리아재비꽃줄기에까지 머물게 한다.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인간이 물질보다 먼저인 세상. 소설은 이 세상에 대한 희망의 끈을 잡고 버틴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서 지칭하는 ‘그들’이란 소설 속 난장이 가족을 칭한다.) 여전히 불행하고, 미약한 존재들이다.



“방금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사나이는 몇 초 후에야 지섭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가 말했다.
 “삼십일까지 철거를 하게 돼 있었죠?
시한이 지났어요.
행정집행법에 따라 철거 작업을 했습니다.
더 이상 할 이야기도 없습니다.”

 사나이가 돌아서려고 했다.
지섭이 재빨리 말했다.
 “지금 선생이 무슨 일을 지휘했는지 아십니까?
편의상 오백 년이라고 하겠습니다.
천 년도 더 될 수 있지만.
방금 선생은 오백 년이 걸려 지은 집을 헐어버렸습니다.
오 년이 아니라 오백 년입니다.”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과 규칙들은 더 이상 인간을 보호하지 않는다. 인간의 재물, 어디까지나 인간이 소유한 재물에 대해 보호해야 할 법까지도 인간이 목적이 아닌 재물에 대한 목적으로 그 법의 목표를 바꿔버렸다. 우선돼야 하는 “인간”이란 더 이상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총탄이나 경찰곤봉이나
주먹만이 폭력이 아니다.

우리의 도시 한 귀퉁이에서
젖먹이 아이들이 굶주리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도 폭력이다.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이
없는 나라는 재난의 나라이다.
누가 감히 폭력에 의해 질서를 세우려는가?’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폭력이 재창조한 땅 위에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인간의 이성이 오만에 젖어 사회를 움직이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인간”은 점점 소외되고 마침내 지워져 버렸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인간이 사라진 물질의 세계(자본주의의 세계)에서는 부의 정도에 따라 소외되고 우선되는 인간들이 태어난다. 인간의 존엄성보다 인간의 부나 재산이 우선되고, 마침내 물질들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 우리는 이미 인간이 소외된 물질들의 완벽한 세상을 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돌아볼 차례다. 우리가 진정으로 “존재”하는 “인간”이었는지에 대해.


[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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