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거대한 폭력 앞에 선 : 정용준, ‘벽’ [문학]

글 입력 2016.12.05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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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다 보면 언제건 종종 먹먹해질 때가 있다. 그 먹먹함은 주로 머리로는 가늠이 되지 않는 것들 앞에서 내게 찾아온다. 크거나 깊거나 축축하거나 눅눅하거나,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그것들은 아름다움에서도, 슬픔에서도, 애틋함에서 찾아오기도 했지만 때로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폭력에서부터 역시 오기도 했다. 그러니까 도저히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폭력성 앞에서, 나는 망망대해 앞에서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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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용준의 <벽>은 내게 그런 기분을 선사해 준 소설들 중 하나이다. <벽>은 그의 소설집 《가나》에 실린 단편소설이다. 《가나》의 표지는 아름답지만 자세히 보면 그건 누군가 물속으로 가라앉는 모습 같기도, 시체가 물 위로 떠오르는 모습 같기도, 사람의 형상이 산산이 흩어져 사라지는 모습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게 어떻게 보든 사라지는 것 같은 사람의 모습처럼 <가나>는 폭력에 의해 지배된 염전 섬노예들의 세계를 다룬다. 나는 이 소설을 통해 그 세계를 처음 알았다. 



9는 더 이상 염전 너머를 보지 않는다. 보게 되면, 보고 싶은 것이 생긴다. 보고 싶은 것이 생기면,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없는 현실이 괴로운 법이다. (…) 어떤 이에게는 희망이 살아갈 힘을 줄지 모르지만 이곳에서의 희망은 마약과도 같다. 희망은 거짓 기대와 헛된 욕망을 만든다. (…) 9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그 어떤 것도 희망하지 않는 무감한 마음을 갖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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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의 폭력과 모멸은 인간으로 하여금 삶의 의미를 앗아간다. 죽음이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곳에서는 죽는다는 것이 의미를 갖지 못한다. (…) 하지만 본능은 다르다. 때리면 맞지 않으려고 몸을 웅크린다. 본능은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가장 정직한 반응 중 하나인 것이다. (…) 몰아붙일수록 삶의 포기는 선명해지고 생존 본능은 강해진단 원리는 사내의 생각 중 가장 창의적인 것이었다.



<벽>에서 폭력에 의해 사라진 건 희망이다. 폭력은 희망을 앗아간다. 폭력은 처음에는 인간을 격하게 끓어오르게 만들지만 저항할 수 있는 정도를 벗어난 폭력은 인간을 무감하게 만든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감당할 수 없는 폭력 앞에서 삶을 포기하지 못하면, 정도 이상의 폭력은 인간을 인간 아닌 것으로 만든다. 그러니까 ‘벽’으로, 숨쉬는 무생물로 만들어져 살아 있는 폭력의 증거물은 섬에서 일꾼들에게 역사한다.

폭력은 문명 속에 남아있는 비문명의 잔재이고, 인간이 공들여 쌓아올린 문화의 바벨탑을 무너뜨리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다. 그리고 그래서 그 폭력이 ‘폭력의 문화’를 만들어 ‘제도’로서 작용할 때 폭력은 가장 두려워진다. 인간이 제도와 문화의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폭력에 저항하는 노력과 용기의 수백 배 수천 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된 폭력에는 저항하기보다는 차라리 굴복하는 게 편한 것이다. 그것은 굴욕이지만,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굴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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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소설을 읽은 얼마 후 공중파 뉴스에 신안 섬노예 사건이 나오는 것을 보았을 때 내 머릿속에는 소설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때 나는 이 소설이 생각보다 내 머릿속에 깊게 박혀 있었단 걸 알았다. 폭력은 이렇듯 알지 못해도 낙인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이 내게 심어지는 걸 막을 방법이 없었고, 나도 어쩌면 이 사회의 폭력을 용인하는, 그러다 폭력의 주체가 될지도 모를 숫자 N번일지 모른단 걸 아는 순간 두려워졌다.

숱하게 사라진 희망들과 폭력에 희생당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소설 속이 아니라 이곳에 실재했는데, 그렇다면 그들의 것이어야 했던 삶은 어디에 버려졌을까. 이렇듯 세상에 폭력이 존재한다면 나 역시 언젠가 그들이 되는 것이 아닐까.  먹먹해졌던 것이 막막해지는 것은 그때문이었다. 가늠할 수 없는 폭력은 다스릴 수조차 없어서, 거기에 내가 휩쓸리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되뇌인다. 깨어 있자. 내가 폭력이 되지 않게, 폭력으로부터 깨어 있는 사람이 되자고.

 
[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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